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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무것이나 잘 먹을 수 있는 이 시간의 삶이 많이 고맙습니다. 키가 훤칠하게 큰 것도 아니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것도 아니고, 잘 생겼다는 말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는 몸뚱이지만 크게 아프지 않고 일상생활을 하는데 커다란 장애가 없는 내 몸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이 책이 읽고 난 소감이라기보다는 저자의 삶이 고마운 마음이 들도록 견줘줍니다. 무감각했던 건강이 고마움으로 울컥 거리고, 느껴보지 못했던 감사함이 가슴에 철렁이니 다시 한 번 더 고맙습니다.

정신과 전문의의 통증과 우울증 극복기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지은이 임세원 / 펴낸곳 (주)시공사 / 2016년 5월 20일 / 값 13,800원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지은이 임세원 / 펴낸곳 (주)시공사 / 2016년 5월 20일 / 값 13,800원
ⓒ (주)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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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지은이 임세원, 펴낸곳 (주)시공사)의 저자는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자 강북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입니다.

이쯤 되면 자식들에게 금수저를 물려 줄 수 있을 만큼은 출세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자는 의대 6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을 공부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됐습니다. 환자들은 종종 "선생님은 이 병을 몰라요"라고 했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은근히 부아가 치밀기도 했습니다. 감히 날 어떻게 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하는 생각도 들었을 겁니다.

잘 나갔습니다. 운도 좋았습니다. 해외연수를 앞둔 2012년 6월 어느 날, 원인을 특정할 알 수 없는 통증이 불청객처럼 찾아왔습니다. 점점 심해지고 쉬 사라지지 않는 통증은 일상을 어둡게 하는 우울증이라는 그림자로 다가왔습니다. 

그동안 자신을 찾아온 환자들이 "선생님은 이 병을 몰라요" 할 때, 저자는 그 병, '우울증'을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우울증 와 우울증을 겪어보니 머리로, 의학 지식으로 알고 있던 우울증은 더도 덜도 아니고 환자들이 말하던 '선생님은 이 병 몰라요' 딱 그거였습니다.

이 책은 우울증과 맞닥뜨린 저자가 우울증과 맞서며 일상을 극복해 나가는 여정입니다. 수술을 하고 약물 치료를 해도 사라지지 않는 통증, 영혼을 잠식해 가는 불안, 자살을 답으로 선택하게 하는 생각…, 이런 극단적인 생각을 덧씌우는 게 그동안 환자들이 '선생님은 이 병 몰라요'라고 말하던 우울증의 실체였습니다. 

알아차림, 통증과 우울증과 맞설 이런 힌트 저런 해법

우울증에 시달리던 저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MBSR(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알아차림'에 기반을 둔 스트레스 완화 프로그램)에 입문합니다. 저자가 참여한 프로그램은 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코스로 하루 14시간 동안이나 지속되는 아주 고된 일정입니다.

저자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통증과 우울증에 맞설 수 있는 이런 힌트와 저런 해법을 챙깁니다. 통증이 당장 사리지고, 죽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그늘진 우울증이 싹 사라지는 건 아니었지만 분명 효과가 있었고 도움도 됐습니다.

의사로서 환자들에게 들려주던 말을 자신에게 들려주며 스스로를 위로할 줄도 알게 됐습니다. 환자들이 하는 질문에,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답할 수 있을 만큼 지혜로운 여유도 생겼습니다. 환자들이 '선생님은 이 병 몰라요'라고 말할 때, "이제는 저도 그 병, 잘 알아요"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우울증의 실체도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저자의 병은 아직 완치되지 않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어떤 날은 무딘 칼날이 발가락을 후벼 파는 것 같은 고통이 찾아오고, 어떤 날은 뱀파이어를 잡을 때나 쓸 것 같은 커다란 철제 송곳을 망치로 다리에 두드려 박는 듯한 고통에 시달리면서 지냅니다.

아직도 그렇게 시달리고 있지만 돌다리를 건너듯 고통스러운 순간을 건너고, 양파껍질을 벗겨내듯 스며드는 우울증을 한 꺼풀 두 꺼풀 벗겨내며 극복하다 보니 현실에 감사할 수 있는 순간도 다가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상태가 안정되어 퇴원을 하게 됐을 때, 나는 작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보통의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걸, 나 스스로 화장실에 가서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고 시원하게 용변을 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기쁘고 소중한 일인가. - 245쪽, '마치는 글' 중에서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였던 사소한 일상, 보통의 밥을 먹을 수 있음에, 화장실엘 혼자 갈 수 있는 있음을 소중한 기쁨으로 느낀다는 저자의 삶이, 아무것이나 먹을 수 있고, 일상생활을 하는데 커다란 장애가 없는 필자의 삶을 고마움과 감사함으로 대비시켜 줍니다.

정신의학과 전문의인 저자가 한 움큼의 진통제를 더 먹고 그저 다시 잠들 수 있기만을 바라는 현재진행형 삶은 머리와 지식으로는 새길 수 없는 고통입니다. 눈물을 찔끔 흘릴 만큼 비참한 현실,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없는 통증과 맞서고 우울증을 극복해 나가는 여정은 우여곡절 파란만장입니다.

아울러 작은 바람이지만, 삶의 어느 순간 찾아온 불행으로 인해 힘겨워하는 누군가에게 이 책을 읽으며 작은 도움이라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울증이나 자살 생각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그러한 문제가 자신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것임을 깨닫고, 스스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 249쪽, '마치는 글' 중에서

별다른 통증도 없고, 자살을 생각하게 하는 우울증도 없지만 지금 이 순간의 삶을 고맙게 생각하게 하고, 지금 이 상태의 내 몸에 감사해 줄 내용이기에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해피 키워드가 될 거라 기대합니다.

덧붙이는 글 |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지은이 임세원 / 펴낸곳 (주)시공사 / 2016년 5월 20일 / 값 13,800원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임세원 지음, 알키(2016)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임세원#(주)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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