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김선호 기자 = 인도양에서 조업 중이던 부산 선적 참치잡이 원양어선에서 발생한 선상 살인사건은 선장이 제공한 양주 2병을 베트남·인도네시아 선원 10여명이 나눠마신 뒤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살인사건이 난 광동해운 소속 광현 803호(138t) 항해사인 이아무개(50)씨는 20일 <연합뉴스>와 위성전화 인터뷰에서 "어장 이동을 위해 하루 쉬는 중 선장이 '그동안 수고 많았다'며 선원들에게 양주 2병을 나눠줘 마시게 했다가 사건이 터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항해사는 "당직 근무 후 선실에서 쉬고 있는데 '선장이 죽었다'고 베트남 선원이 말해 놀라서 갑판(브릿지)으로 나갔다"며 "선장이 얼굴과 몸에 피투성이가 돼 숨져 있었고 기관장은 침실에서 피를 흘린 채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갑판에는 다른 선원들이 보이지 않았다"며 "살인사건이 나자 베트남 선원 2명 외에는 모두 자리를 피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갑판에 누워있던 베트남 선원 2명 중 1명은 잡은 고기를 처리할 때 사용하는 길이 30㎝의 칼을 들고 있었고 얼굴 등에는 피가 묻어 엉망이었다고 이 항해사는 기억했다.
그는 "흉기를 빼앗으려 하자 베트남 선원 2명을 동시에 달려들었다"며 "베트남 선원이 몸집이 작고 술에 취한 상태여서 흉기를 뺏을 수 있었지만, 피가 묻어 미끈거리는 흉기를 뺏는 과정에서 나도 조금 다쳤다"고 말했다.
이 항해사는 흉기를 빼앗긴 베트남 선원들이 힘이 빠졌는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다른 선원들에게 선실에 감금하도록 지시했다.
선실 밖에서 문을 잠가, 살인사건을 저지른 베트남 선원 2명이 다시 난동을 부릴 가능성은 낮은 상태라고 이 항해사는 전했다.
이 항해사는 "선장 등을 죽인 베트남 선원이 평소 일도 잘하고 말도 잘 듣는 편이었다"며 "불만을 표출하거나 일이 힘들어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한 적도 없는데 도대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 베트남 선원들이 평소 술을 마시면 다혈질이 돼 다른 선원들이 술을 같이 마시지 않으려고 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며 "베트남 선원에게 왜 살해했는지는 물어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 항해사는 "조업 중간에 맥주 1캔씩 선원들에게 준 적은 있지만, 양주를 준 적은 드물었다"며 "선원들 수고한다고, 격려해 주려 한 것이 이렇게 돼 버려 무척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양주 2병이라고 해봐야 선원 15명이 1명당 몇 잔밖에 나눠 마시지 못할 양인데도 베트남 선원 2명은 비틀거리고 술에 취해 보였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10일 출항해 인도양 등지에서 참치를 잡아온 광현 803호는 두 달 뒤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20일 오전 2시께 인도양 세이셸군도 인근 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광현 803호에서 베트남 선원 B(32)씨와 C(32)씨가 선장 양아무개(43)씨와 기관장 강아무개(42)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살인사건이 난 뒤 바로 배 방향을 돌린 광현 803호 선원들은 약 4일 뒤 세이셸 군도로 입항해 한국에서 급파된 해경 수사팀의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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