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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퇴근해서 죄송합니다." 매일 퇴근할 때마다 교무실을 나서며 동료 교사들에게 건네는 인사말이다.
"먼저 퇴근해서 죄송합니다." 매일 퇴근할 때마다 교무실을 나서며 동료 교사들에게 건네는 인사말이다. ⓒ pixabay

"먼저 퇴근해서 죄송합니다."

매일 퇴근할 때마다 교무실을 나서며 동료 교사들에게 건네는 인사말이다. 주어진 방과 후 수업이 없다 보니 다른 이들보다 퇴근 시간이 한두 시간 더 이른데, 괜히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거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일반계고에서는 국영수를 비롯한 수능 교과의 경우 대부분 교사가 의무인 것처럼 정규 수업 외에 매일 한두 시간씩의 방과 후 수업을 하고 있다.

"그저 부러울 뿐이네요.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지난여름에는 제대로 된 수업은커녕 서 있을 힘조차 없더라고요. 퀭한 눈의 아이들도 지친 기색이 역력해, 이게 수업인지 고문인지 헛갈릴 때가 많아요. 관행대로 방과 후 수업을 하긴 하지만, 서로 시간만 허비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가겠죠."

시작종이 울리자 한 동료 교사가 방과 후 수업 교재를 주섬주섬 챙기며 건넨 대답이다. 피곤에 절어있는 그의 얼굴이 언뜻 가엾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점심시간 이후 6, 7교시 정규 수업에다 8, 9교시 방과 후 수업이 연이어져 있어 특히 힘든 날이라면서, 방과 후 수업은 많은 교사들에게 잡무만큼이나 부담스럽고 힘든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학교마다 방과 후 수업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잘 모른다. 일반계고의 경우, 그저 과거의 보충수업과 심화수업 등이 이름만 바뀌어 그대로 유지돼온 것쯤으로 알고 있다. 하도 오래된 관행이라, 야간자율학습과 더불어 방과 후 수업이 없는 고등학교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어느덧 아이들에게도, 교사들에게도 대학입시를 준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처럼 여겨지게 됐다.

그런 탓인지, 일반계고의 방과 후 수업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낮은 편이다. 교사들의 수업 부담은 차치하고라도, 수능을 대비해 문제풀이 수업 위주로 편성돼 있다 보니 아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못해 싸늘하다. 수업 교재만 교과서에서 문제집으로 바뀌었을 뿐, 방식도 내용도 정규 수업과 다를 게 하나 없다며 대놓고 불만을 토로하는 아이들이 많다.

아이들의 탐탁지 않은 반응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은 방과 후 수업에 대해 대체로 불만이 없다는 눈치다. 어차피 일찍 하교해봐야 자녀들이 학원이나 독서실을 전전해야 할 텐데, 가능한 한 학교에서 끝까지 책임지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많은 가정이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없는 현실에서 학교는 교육기관이기에 앞서 당장은 '탁아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방과 후 수업의 질이 여느 사교육 못지않다면야 더 바랄 게 없겠지만, 거칠게 말해 '웬만하면 문제 삼지 않겠다'는 뜻도 있다. 학부모의 입장에서 방과 후 수업에 대한 학교의 방침을 거스를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이는 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이 대세로 자리 잡는 마당에 교사가 자녀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어찌할 방법이 없어 선택한 방과 후 학교... 그렇지만

 기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집이 학교고, 학교가 집이다.
기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집이 학교고, 학교가 집이다. ⓒ pixabay

기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집이 학교고, 학교가 집이다. 이 또한 오래된 관행이라 그다지 놀랍지도 않지만, 잠자는 시간을 빼면 아이들이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은 고작 3시간이 남짓에 불과하다. 아침에 눈 뜨면 식사도 거른 채 허겁지겁 등교하기 바쁘고,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귀가하면 얼추 밤 11시다. 저녁에 가족들과 모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는 건 애초 꿈같은 소리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업'이라지만, 이쯤 되면 교사는 부모와 하등 다를 바 없다. 교과 수업과 생활 지도, 입시 상담에다 행정적인 잡무에 이르기까지 '일인 다역'을 소화해내야 한다. 요즘 들어서는 숫제 점심, 저녁 급식 시간 때 밥상머리 교육까지 교사들의 몫이 됐다. 가족들과 주중엔 하루에 단 한 끼도 함께 먹지 않는다는 아이들이 여전히 적지 않은 마당이니 당장은 어찌할 방도가 없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방과 후 수업을 '수업'이 아닌 '잡무'로 여기는 이유다. 개중엔 봉급과 별개로 주어지는 수당 때문에 내심 바라는 이들이 아예 없진 않겠지만, 기실 일과가 마무리되는 그 시간은 아이들과 상담을 하거나 수업 준비를 해야 하는 때다. 당연한 말이지만, 방과 후 수업은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을 빼앗고 정규 수업의 질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교사들 사이의 우스갯소리 중에 '에너지 총량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교사도 수업을 하건, 상담을 하건 아이들에게 쏟는 열정이 화수분처럼 끝없이 샘솟진 않는다는 거다. 말하자면, 매일 한두 시간씩 방과 후 수업이 주어지면, 정규 수업 때 쏟아야 할 '에너지'를 아껴두었다가 그때마다 나눠 사용한다는 뜻이다. '수업 뺑뺑이'에 대한 나름의 자구책인 셈이다.

방과 후 수업은 방학 중에도 이어진다. 방학은 아이들에겐 잠시 '배움을 쉬는' 시간이고, 교사들에게는 다음 학기를 준비하며 연수를 받고 공부를 해야 할 시간이어야 하지만, 현실은 '세 번째 학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에게 방학의 설렘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여서, 딱히 방학식도 없고, 방학 숙제 같은 것도 없다. 일과가 학기 중과 별반 다를 게 없는 탓이다. 방학 중에도 방과 후 수업은 '상수'다.

시민단체에서조차 아이들의 인권을 앞세우면서도 온전한 방학을 보장하라는 주장은 쉽사리 꺼내지 못한다. 고작 방학 중 방과 후 수업 시수를 줄이자는 요구가 사실상 전부다. 전가의 보도처럼 방학 중 사교육비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지만, 그보다는 지금껏 아이들이 단 한 번도 방학을 가족과 함께 보낸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하긴 맞벌이 부부가 태반인 마당에 방학 때 오롯이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자녀가 집에 혼자 남겨지는 걸 두고 못 보는 부모의 선택은 명약관화다. 지역사회는 아이들을 받아 안을 준비가 안 돼 있고, 학교마저 문을 닫는다면 그들이 도움을 청할 곳은 오직 사교육밖엔 없다. 아무리 미덥지 못하다고 해도 결국 학교가 대안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돌고 돌아 공은 다시 학교로 넘어오지만, 할 수 있는 거라곤 늘 그렇듯 수업뿐이다. 거칠게 말해서, 우리나라의 고등학교 교사들은 '수업만 하는 기계'다. '윤활유'가 없어도 '연료'가 부족해도 관성에 따라 아무 때나 별 탈 없이 돌아가는 기계다. 학교에서 '수업만 하는 기계'는 결과적으로 '공부밖에 할 줄 모르는 기계'들을 양산하게 된다. 교사들이 행복하지 않은데 아이들이 행복할 리 없다.

'아이는 온 마을이 키운다' 서울시의 정책에 주목하는 이유

얼마 전,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반가운 뉴스 하나가 전해졌다. 초중고의 방과 후 수업 운영을 학교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도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시행에 앞서 다양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방과 후 수업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겠지만, 정착되면 일선 교사들의 업무 부담이 줄어 정규 수업의 질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지역사회에 학교의 문턱을 낮추는 효과도 기대된다. 지금껏 학교는 마을과 동떨어진 채 외따로 존재하는 섬 같은 존재였다. 학부모들이 학교 찾아가는 걸 꺼리듯, 마을은 웬만해선 학교의 일에 간섭하지 않았다. 자유학기제가 시행되고 있는 중학교와는 달리, 고등학교의 경우 마을과 손잡는 때는 고작 1년에 한두 번 아이들이 각자 진로체험활동을 할 때뿐이다.

학교가 공간을 제공하고 마을이 주도적으로 방과 후 활동을 운영하다 보면, 학교는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당당히 거듭나게 될 것이다.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아이들은 학생에서 시민으로, 교사들은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자신의 역할을 깨닫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나아가 학교 교육의 근본적인 변화를 끌어내고, 마을에 활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일 수 있다.

물론,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는' 우리 교육의 현실을 도외시해선 곤란하다. 자칫 방과 후 수업이 대학입시를 위한 획일적인 사교육의 '꽃놀이패'로 변질될 가능성도 있다. 수많은 보습 학원들이 학교 교실로 버젓이 '이사'를 해오는 경우다. 수능을 앞둔 아이들의 막연한 '불안감'은 방과 후 수업 선택의 폭을 제한시킬 수밖에 없다.

모쪼록 서울시교육청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마을과 함께하는 방과 후 학교' 방안에 큰 기대를 건다. 부디 대학입시를 위한 교과 위주의 수업이 아니라, 마을 내 다양한 자원들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아이들 각자의 특기와 적성이 발현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이번 시도가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금언을 우리 모두가 절실하게 깨닫는 첫 단추가 되길 소망한다.


#서울시교육청#방과 후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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