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은 '미덕'이다?야근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야근과 관련된 기사를 찾아보던 중 꽤 흥미로운 제목의 기사를 발견했다.
"야근이 미덕인 시대는 끝났다." 이는 근무시간은 줄였지만, 오히려 수익은 높인 일본 IT 기업의 사례를 소개한 기사였다. IT 업계의 고질적인 야근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시 퇴근을 하면 야근 수당을 주는 제도를 도입해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게 독려한 이 기업의 사례는 매우 놀라웠다. 그것도 아시아권 국가에서 이런 일이 가능하다니! 하지만 과연 이 기사 제목처럼 우리 한국 사회에서도 '야근이 미덕인 시대'가 막을 내릴 수 있을까?
나는 4년 정도를 다니던 회사를 새해의 시작과 함께 그만두고 현재는 일을 쉬고 있다. 하지만 일을 하고 있는 주변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의 근로자들은 야근이 미덕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업(業)의 종류와 관계없이 근로자들은 '칼퇴'를 위해 항상 업무 시간 내내 집중하며 열심히 일한다(물론 중간중간 동료와 함께 담소도 나누고, 휴식도 취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근 시간 30분 전 울리는 전화 또는 다양한 추가 업무 요청 때문에 퇴근 시각이변화하는(늦어지는) 현상을 수없이 겪어 봤을 것이다.
나 또한 업무가 손에 익기 시작했던 2~3년 차 이후부터는 업무 시간 내내 물 마실 시간도 없이,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집중력 한번 흐트러트리지 않고 일을 했다. 그러다가 오후 6시가 넘어 울려오는 추가 업무 요청 전화를 받게 되면 자연스럽게 '야근'이라는 선택을 했다.
자발적일 때도 있었고, 강제적일 때도 있었지만 급박한 마음으로 추가 업무 요청을 해오는 동료 또는 클라이언트의 전화를 받고 편안한 마음으로 퇴근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복잡미묘한 마음으로 찝찝하게 퇴근을 하느니 그냥 마음 편하게 일을 끝내놓고 가야 다음날 "당신 때문에 일이 늦어졌다"는 상사(혹은 클라이언트)의 '다짜고짜식' 책임 문책을 비켜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을'이라면 야근도 '을'답게홍보·출판 업계에서 일했던 나는 신입 때부터 야근이 당연시되는 기업문화를 받아들여야 했다. 일을 배운다는 명목과 마감일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아래 선임의 일을 도우며 야근을 했다.
물론 야근 수당은 없었다. 수많은 근로자들이 '연봉제'라는 제도 하에 야근을 해도 추가 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내 경우 역시 그랬다. 회사 상사들은 "네 이름을 내걸고 진행하는 프로젝트인데, 더 나은 결과물이 나온다면 야근을 하는 게 좋은 거 아냐?"라고 말하곤 했다.
동료·선임과 함께 호흡을 맞춰가며 일을 하다 보면 새벽 퇴근은 일상이었다. 인쇄를 앞둔 기간에는 이런저런 여러 가지 수정사항들을 반영하고 오·탈자 교정까지 본 후 침침한 눈을 껌뻑거리며 택시에 몸을 실었고,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를 하루하루 번갈아 타고 달리며 목숨의 위협(?)을 여러 번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퇴근을 할 수 있는 날은 오히려 상황이 더 좋은 경우였다. 바로 모든 '을'의 위치에 있는 직장인들이 두려워 한다는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수정한 결과물을 보내주세요!"라는 클라이언트의 '답 안 나오는' 한마디에 밤을 새워야 하는 날도 있었기 때문이다.
오후 5시 즈음에야 수합한 수정사항을 전달해주고 클라이언트는 퇴근하는데 우리는 그때부터 일을 시작했다. 밤새 원하는 방향에 맞게 글을 고치고 이미지를 수정하다 보면 어느새 새벽 5시가 돼가고 아침이 돼서야 클라이언트에게 결과물을 보내 놓고 퇴근할 수 있었다. 이런 경우에는 야근이라는 말보다는 '하루 24시간 근무'라는 말로 초과한 업무 시간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렇게 밤을 새운 다음날에도 일은 계속됐다. 아침에 보내뒀던 결과물을 본 클라이언트가 오후에 또 다른 수정사항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야근에 팔아넘긴 일상 그리고 건강
하지만 차라리 이렇게 마감이라는 명확한 형태의 업무를 하며 야근을 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때가 있었다. 업의 특성상 퇴근 후에도 결과물의 형태와 내용을 고민하는 식으로 일을 일상 속으로 끌어들였던 것이다.
이는 어느 누구도 나에게 강요한 것이 아니었다. 연차가 쌓이면서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고 싶었던 욕심 때문에 자발적으로 야근을 넘어 일상과 일을 하나로 일원화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일과 관련된 광고나 음악, 드라마가 나오면 그걸 보고 들으면서 계속해서 일 생각을 했다. 뿐만 아니라 휴일에 서점을 방문해서도 기획의 방향과 원고의 메인 제목을 생각했는데 이럴 때마다 매일매일 야근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야근은 이렇듯 삶의 궤적을 오직 '일' 중심으로 변화시키며 나의 정신적인 부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날 할 일을 모두 끝내고 퇴근해도 마음 한구석이 항상 불안했고, 휴가 기간에도 클라이언트 또는 팀원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원고를 수정해주거나 메일에 답변하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주말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한 증세가 나타났다. 이럴 때면 오전 11시가 넘도록 늘어지게 잠을 자거나 멍을 때렸다. 신체적인 건강 역시 좋지 않았다.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혈액순환이 잘 안 돼 다리가 저리는 현상이 잦아졌고, 체중이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피부도 나빠졌다.
함께 일했던 동료 역시 잦은 야근 때문에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허리가 심각하게 나빠져 수 개월에 걸쳐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기도 했다. 더 심각한 상태를 보인 동료도 있었다. 허리 건강이 나빠진 줄 모르고 지속적으로 야근을 하다가 결국 한쪽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몇 주간 입원했던 것이다.
이렇게 점점 나빠져 가는 건강 상태를 보면서 동료들과 "왜 우리는 건강에 좋지 않은 줄 알면서도, 심지어 야근수당까지 못 받으면서도 야근을 줄이지 못하는 것일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결국에는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
첫 번째.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는 업무의 특성상 일을 발주한 회사의 일정과 사정에 맞춰 일을 끝내야 했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두 번째. 회사 내에 암묵적으로 만연한 '더 좋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 야근을 하는 것은 좋은 태도'라는 생각 때문에 이를 고치기는 쉽지 않다. 이렇게 계속 반복되는 야근 속에서 '저녁이 있는 삶'은 점점 줄어들었고 친구들과의 모임에도 거의 참석하지 못했다. 몇몇 친구들은 야근이 잦은 나를 위해 회사 근처로 직접 찾아와 저녁을 함께 먹고 시간을 보내주는 배려를 하기도 했다.
지속가능한 일을 위하여
일을 그만둔 현재, 치열하게 일을 하던 그때와는 전혀 다른 일상을 살지만 야근을 했던 지난날을 가끔 되돌아보곤 한다. 나는 아직도 신입사원 시절, 늦은 시간에 퇴근을 하면서 목격했던 테헤란로와 강남역 일대의 불야성(?) 같은 빌딩숲을 잊을 수가 없다. 빌딩 한 채 한 채 모두 낮부터 저녁까지 불 꺼질 틈새 없이 계속 분주했고, 그 안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역시 밤늦은 시간에도 책상에 앉아 자신에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갈 때면 나는 항상 '도대체 저들은 집에 언제 가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처럼 일을 하는 직장인이라면 그 누구도 업무가 주는 부담감과 일을 끝내야 하는 마감 시간에서 자유롭기가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야근이 불가피할 때는 자신의 시간을 더 투자해 초과 근무를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야근을 근로자들이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시 여기는 생각들이 점점 확대돼 가며 자리를 잡아가는 현재, 연차가 쌓이고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을 때까지는 회사를 위해 무조건 희생하며 야근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은 항상 '지속가능한 일'을 찾고 갈망하는 우리들에게 조금은 위험한 관습이자 관성이다. 야근의 필요성을 은근슬쩍 흘리는 분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우리에게는 일과 휴식이 적절하게 균형 잡힌 삶을 살아도 되는 권리가 있다. 물론 치열한 경쟁이 일상인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생각을 주장하는 것이 너무 나태하고 안일한 마음가짐이 아니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해진 업무 시간을 충족시킨 이후에는 휴식을 취하고 개인의 행복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누릴 수 있는 '삶'을 살아야만 우리는 오랫동안 자신의 업을 즐기고 사랑할 수 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