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마산교구장인 배기현(63, 콘스탄틴) 주교가 주례를 맡은 시국미사가 열렸다. 천주교 마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박철현 신부)가 11일 저녁 창원 사파공동성당에서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국미사'를 열었는데, 배 주교가 주례를 맡은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는 전국 곳곳 성당에서 시국미사를 열었는데, 교구장주교가 주례를 맡기는 처음이다.
배 주교는 미사를 집전하면서 "나라가 혼란스럽습니다. 우리의 믿음으로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도록 합시다"라거나 "참으로 우리가 바라는 세계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라 말했다.
또 배 주교는 "부끄러운 이 나라와 부끄러운 우리 자신을 용서하소서"라고, "이 기막힌 상황에서 국민의 처참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길 간절히 기도합시다"라고 말했다.
배 주교는 "마음 깊은 곳에 진리를 원하고 정의가 이 땅에서 실현되기를 기도합시다"라 했다.
박철현 신부 강론 "평화는 정의의 열매"이날 미사에서는 천주교 마산교구 사회복지국장 겸 정의평화위원장인 박철현(미카엘) 신부가 강론했다. 박 신부는 "지금 많은 사람들이 시름에 잠겨 있다. 아니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신부는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버젓이 벌어졌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더욱 분노하게 되는 것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서 그렇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 신부의 강론 주요 내용이다.
"지금 우리나라라는 배와 민주주의라는 두 배는 급격히 침몰하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가만히 있으라'고 이야기합니다. 꼭 세월호를 닮았습니다.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구명조끼를 믿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세월호와는 또 다릅니다.왜냐하면 세월호는 결국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말았지만 우리나라와 민주주의라는 배는 여전히 기회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삶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가능성이란 무엇입니까?철저한 진상규명과 여기에 관련된 모든 이들의 진심이 담긴 회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만이 침몰할 위기에 처해 있는 우리나라와 민주주의를 구해낼 수 있는 길입니다. 한 나라의 대표자라는 분이 두 번이나 사과의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분노를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전히 자신이 잡았던 권력을 내려놓을 수 없다는 의지가 사과문 안에서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교황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신의 특권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가난한 이들을 침묵하게 하거나 유화시키려는 거짓 화해의 시도들에 맞서 우리는 예언자적 목소리를 드높여야 합니다.'이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은 예언자입니다.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러다 보니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에게 쓴소리를 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분들이었습니다. 그 결과가 참담한 고통, 폭력으로 이어진다 하더라도 예언자들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지 않으면 스스로가 제대로 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예언자들은 고통을 받으며 고난을 겪으며 희망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헌신합니다. (중략) 여담이지만 지금의 대통령은 저를 위한 배려를 참 많이 해 주었습니다. 움직이기를 싫어하고 운동은 피해야 할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던 저를 위해 일 년에 몇 번은 멀리는 제주도 강정에서, 서울에서, 진도에서, 짧게는 밀양까지 가서 미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덕에 어쩔 수 없이 몸을 움직여야 했습니다. 어쩌면 조만간 성주에도 다녀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그리고 훈장에 대한 욕심은 별로 없었지만 '외부세력 개입'이라는 훈장까지 달아주었습니다. 그냥 단순히 거기서 미사만 드렸을 뿐인데 말입니다. 게다가 욕을 많이 들으면 오래 산다는 얘기는 어디서 들었는지 대수천을 동원해 '종북 좌빨 신부'라고 저를 욕하게 만듦으로써 제가 오래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그 배려가 고맙지만 너무 큰 배려는 오히려 저를 망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되면 저는 오늘 복음 말미에 등장하는 시체 같은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 그 주위로는 제 몸을 노리는 독수리들만 모여들겠지요.하지만 저는 독수리들이 죽기만 기다리는 그런 시체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롯처럼 어찌할 수 없는 멸망의 순간이 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고 싶습니다. 너무 무거워서 빨리 뛸 수는 없겠지만 그 현장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다만 지금은 아닙니다. 멸망할 것 같지만 아직은 기회가 있습니다. 어떻게든 바꿀 수 있는 가능성도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힘을 합쳐야 합니다. (중략) 우리 신앙인들은 예언자의 역할을 기꺼이 수행해야 합니다. 그 길이 고통을 주거나 고난으로 이끈다 하더라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 길은 바로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다면 따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길입니다. 이것이 오늘 미사를 드리고 있는 우리의 각오입니다.그러나 관련자들의 진심 어린 참회와 회개가 필요합니다. 단순히 울먹거리는 사과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각오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니니베가 하느님의 화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임금 역시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자루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 위에 앉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각오와 마음이 없다면 사과는 아무리 해도 사과일 뿐, 오히려 국민들로부터 내가 이런 사과를 들으려고 국민이 되었나 하는 자괴감 섞인 이야기밖에는 듣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꾸만 몇몇 사람들의 개인적인 비리로 몰아 자신만 빠져나가려 한다는 인상을 주면 더욱 더 거센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지금 일도 일이지만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밀양송전탑, 핵발전소, 국정교과서, 졸속 위안부 합의, 국가폭력에 의한 백남기 엠마누엘 농민의 죽음, 그리고 사드배치까지. 어떤 것도 속 시원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면서 시간만 지나가면 된다는 식으로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지금의 일까지도 그런 식이라면 정말 곤란합니다. 예언자들인 우리가 지켜볼 것이고, 그 예언자들이 시대의 또 다른 예언자들과 힘을 모아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평화는 정의의 열매이고 평화는 또한 연대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런 평화를 위해 신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주님, 저희에게 민감한 신앙 감각을 허락하시어 시대의 징표를 깨닫고 고통 당하는 이웃을 향한 당신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