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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사이서 금슬 좋기로 알려진 친구 부부가 언젠가부터 티격태격 말다툼을 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보다 못해 요즘 들어 도대체 뭣 때문에 둘이 그러느냐고 물어 봤습니다.

친구는 "괜히 노래를 부른다고 잔소리를 해서 그렇게 된다"고 그랬고, 친구 부인은 "저 사람이 아직도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그런다"고 그랬습니다.

이야긴즉 이랬습니다. 친구는 어느 날 아주 우연히, 조금 전까지 흥얼거렸던 그 노래를 들었답니다. 그런데 그 노랫말이 꼭 '내 사연' 같고, '내 이야기' 같은 게 두 귀에 쏙쏙 들어오며 가슴에 착착 달라붙더랍니다.

그 후, 그 노랫말이 그냥 좋아서 흥얼거리고 또 흥얼거렸더니 식구가 "아직도 첫사랑을 잊지 못해서 그러는 거냐?"며 시비를 걸듯 잔소리를 해 말다툼이 된다고 그랬습니다. 

이런 불상사(?)가 필자 친구부부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건 아닐 겁니다.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청소년, 열애 중인 연인, 흘러간 세월을 가슴에 묻고 사는 중장년층의 사람들 모두 각자 입장에서 들으면 꼭 내 사연 같고, 내 이야기 같아 저절로 흥얼 거리게 되는 노랫말이 한둘쯤은 있었을 겁니다.

노랫말은 시입니다. 시집에 실려 있을 때는 그냥 읽어 새기는 시입니다. 하지만 곡을 붙여 누군가가 노래로 부르면 노랫말이 됩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법한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그렇고, 정지용의 '향수' 또한 그렇습니다. 이처럼 시이자 노랫말인 게 한둘이 아닙니다.

<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 1961-2012>

 <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 1961-2012> / 지은이 밥 딜런 / 옮긴이 서대경 황유원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15일 / 값 48,000원
<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 1961-2012> / 지은이 밥 딜런 / 옮긴이 서대경 황유원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15일 / 값 48,000원 ⓒ 임윤수
<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 1961-2012>에 실린 노랫말들은 가수이자 작곡가, 시인이기도 한 밥 딜런, 5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대중 가수로 활약해 온 밥 딜런에게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명예를 안겨준 시이자 노랫말인 문학작품 모음집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 된 노랫말 모음집은<시경詩經>입니다. 시경은 2500년 전쯤 만들어진 것으로, 공자가 그때까지 전해지던 3000여 편의 시가 중에서 300여 편을 골라 엮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에 반해 이 책에 실린 노랫말들은 201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밥 딜런이 1962년부터 2012년까지, 50년 동안 부른 노랫말들을 원문과 한글 번역문으로 엮어낸 가사집입니다.

총이 발사됐고 총성이 또렷이 울렸다네
첫발은 그의 귀를 스쳤어
두 번째 총알은 그를 정통으로 맞혔네
그리고 그는 구부러진 핀처럼 고꾸라졌지 -'모조 천사(Tin Angel)(2012년)' 중, 1483쪽-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 여느 대중가요의 노랫말들이 그러하듯 밥 딜런이 불렀던 노랫말 또한 그렇습니다. 어떤 가사는 깊은 동굴만큼이나 심장을 울립니다. 어떤 가사는 촛불의 열기를 더해주던 그 노랫말들처럼 벌떡이는 가슴에 방망이질을 해대는 열정입니다.

하나하나의 노랫말에 드리워 있는 자세한 배경은 알 수 없지만 아주 참혹한 현장,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그 끔찍했던 1980년 광주를 그린 노랫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밥 딜런이 부른 노랫말에는 시대적 상황, 문화, 풍조, 가치, 사회, 사랑, 이별, 철학, 비평과 풍자, 삶, 슬픔, 자조 등 삼라만상을 아우르는 묘사와 만고풍상을 그려내는 느낌이 두루두루 다 담겨 있습니다. 

무리의 사람들이 그 아이를 헛간으로 끌고 가 마구 두들겨 팼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그들은 말했지만, 난 그게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아
그들은 아이를 고문했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짓을 아이에게 했어
헛간에선 비명소리 들렸고 바깥 거리에선 사람들이 키득대는 소리 들렸지. -'에밋 틸의 죽음(The Death of Emmett Till)(1962년)' 중에서, 45쪽 - 

얼마나 자주 위를 올려다봐야
한 인간은 비로소 하늘을 볼 수 있을까?
그래, 그리고 얼마나 많은 귀가 있어야
한 인간은 사람들 울음소릴 들을 수 있을까?
그래, 그리고 얼마나 많은 죽음을 겪어야
한 인간은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죽어버렸다는 걸 알 수 있을까?
그 대답은, 나의 친구여, 바람 속에 불어보고 있지
대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네 -'불어오는 바람 속에(Blowin' in the Wind)(1962년)' 중에서, 121쪽 -

그래, 내 신발, 그것은 싱가포르에서 왔지
내 손전등은 대만에서
내 식탁보는 말레이시아에서
내 허리띠 버클은 아마존에서
그리고 있잖아, 내가 입고 있는 이 셔츠는 필리핀에서 왔어
그리고 내가 모는 차는 쉐보레야
아르헨티나에서 조립되었지
하루에 30센트 버는 어떤 이에 의해 -'노동조합의 영혼(Union Sundown)(1983년)', 1067쪽-

노랫말을 읽고 있는데 시가 읊어집니다. 시인 줄 알고 읊어가다 보면 어느새 흥얼거리는 노랫말입니다. 시로 읊고, 노랫말로 흥얼거려보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겁니다. 

밥 딜런이 노랫말에 담고자 했던 유무형의 배경은 무엇이며, 밥 딜런이 노랫말로 표현하거나 전하고자 했던 노랫말 속 그림자는 무엇일까가 한참이나 궁금하나 이 책에서는 단순히 노랫말만을 읽을 수 있으니 아쉽습니다. 

추후, 노랫말에 녹아있는 그 무엇까지를 새길 수 있는 설명이나 해설이 보태진다면 노랫말 속에 담긴 의미는 문학과 철학, 역사와 삶에서 또 다른 지평을 담아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됩니다.

덧붙이는 글 | <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 1961-2012> / 지은이 밥 딜런 / 옮긴이 서대경 황유원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15일 / 값 48,000원



밥 딜런 : 시가 된 노래들 1961-2012

밥 딜런 지음, 서대경.황유원 옮김, 문학동네(2016)


#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 1961-201#서대경#황유원# ㈜문학동네 #밥 딜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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