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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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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배도 받고 세뱃돈도 받고.

설날은 새벽에 출근을 하느라 차례는 커녕 두딸의 세배도 못 받았지요. 설 다음날, 새벽에 퇴근해서 한숨 자는데 아내와 두딸이 아빠의 뒷담화하는 말이 아련히 들려옵니다. 얼마나 잤을까? 딸이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 앉았는데 잠옷바람에 앉았는 아빠를 보며 다짜고짜 세배부터 받으라네요. 세배돈 주겠다며 지갑을 찾는데 올해부터는 저희들이 세배돈을 주겠답니다.

순간 '아, 이제는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작은딸이 봉투를 열며 보란듯이 자랑을 하는데 빵, 터졌습니다. 아빠에게 주는 세배돈이 일년 연봉의 두 배 가까이 되더군요. 오천만원으로 오토바이를 사든지 책을 사든지 엄마 눈치보지 말고 맘대로 쓰라는 덕담과 함께 생글생글 웃더니 오늘은 오로지 아빠를 위한 일정을 잡았답니다.

창밖을 보니 눈은 펑펑 내리는데 옷을 입혀주더니 여자 셋이서 밥도 안 먹이고 끌고나갑니다. 차 안에서 일정을 알려주는데 1차는 대학로 극장에 가서 '꽃의 비밀'이라는 연극을 보고 2차는 근처의 근사한 식당에서 술 한 잔하고 3차는 분위기 좋은 커피집으로 모신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우나에 가서 몸 풀고 푹 주무시랍니다. 일정이 좀 빡빡한 감은 있지만 대체적으로 맘에 듭니다. 그중에 압권은 역시 오천만원짜리 세배돈을 받았다는 거지요.

꽃의 비밀. 소유진이 출연하는 연극입니다. 이태리 여자 넷이서 사고로 죽지도 않은 남편이 죽은 줄 알고 보험금을 타먹겠다고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코미디입니다. 예전에 두딸과 함께 보았던 '염쟁이 유씨'나 '담배가게 아가씨'처럼 가슴을 두드리는 강한 그 무엇은 없지만 가벼운 웃음을 선사하는 코미디연극이었지요. 가족들끼리 볼만한 연극인 것 같습니다.

다음은 일정대로 근사한 식당에서 잘 숙성된 고기를 구워놓고 소맥으로 '꼭꾜오~'를 외치며 잔을 부딪힙니다. 세배돈으로 오천만원을 받은 아빠가 계산을 하겠다고 했다가 얼마나 혼났는지 모릅니다.

식사가 끝나고 대학로 작은딸의 친구가 아르바이트하는 주점을 찾아가 딸의 친구 한 번 안아주고 오천만원보다는 작은 돈이지만 세배돈을 건넵니다. 생각지도 않은 친구 아빠의 방문과 세배돈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지만 딸의 친구 역시 내 자식이 아니겠냐며 사양하는 녀석의 손에 기어코 세배돈을 쥐여주고 기분좋게 마지막 일정인 커피숍으로 향합니다.

커피숍에서 여자 셋이서 수다가 장난이 아닙니다. 그런데 수다의 내용이 대개 아빠를 놀리는 수다입니다. 어른으로서 이러면 안되지만 작은 앙갚음으로 작은딸 흉 좀 볼까요? 내가 뒷끝이 장난이 아니거든요.

녀석의 흉을 보자면 많지만 명절 뒤이니 한 가지만 털어놓을까 합니다. 재작년 내 생일, 선물을 사주겠다며 백화점으로 끌고갑니다. 평소 봐두었던 시계를 골랐더니 조금도 망설임없이 거금 50만 원을 6개월 무이자 할부로 결제하더군요. 첫달만 자기가 내더니 나머지 다섯달은 저더러 내랍니다. 그런데 지금도 만나는 사람마다 아빠 손목의 시계는 자기가 생일선물로 사준거라며 자랑질입니다. 가증스럽습니다.

지난 12월 역시 내 생일, 그때 그 백화점을 가더니 속에 털이 들어간 반부츠 방한화를 선물합니다. 정말 따듯한 구두입니다. 그런데 어제 알았지요. 결제는 제 카드로해서 아빠한테 생색은 있는대로 내놓고 구둣값을 엄마한테 뜯어갔답니다. 황당한 일입니다. 그래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당당합니다. 더 황당한 건 큰딸이 옆에서 "잘 했어 잘 했어" 해가며 부추기더라는 것이지요.

설은 잘 쇠셨는지요? 명절후유증을 앓고 있는 분들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저희 가족의 명절분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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