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고의성 여부는 형량을 결정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에서도 '옥시'의 고의성을 증명하는 것이 재판의 주요 쟁점이었습니다. 성범죄도 고의성이 있느냐에 따라 처벌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고의성 여부를 판단하거나 증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만일 내가 지나가다가 어떤 사람의 다리에 걸려 넘어져 크게 다쳤다고 가정을 해보면, 그 사람이 나를 넘어뜨릴 목적으로 일부러 다리를 내밀었는지, 아니면 우연히 내민 다리에 내가 걸려 넘어진 건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 한 사람, 발을 내민 사람만이 답을 알고 있겠지요.
그런데 최근 범죄의 고의성 여부를 판단하는 데 참고가 될 만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지난 13일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지에 실린 기사에 의하면, 런던대학교에서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로 뇌를 촬영한 결과, 고의성 여부에 따라 활성화되는 부분이 크게 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런던대학교 연구팀은 20, 30대 남녀로 구성된 참가자 40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참가자들은 '밀수품'이 든 여행가방을 들고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야 합니다. 어떤 참가자에겐 가방 안에 밀수품이 들어 있음을 분명히 알려 주었지만, 어떤 참가자들은 2~5개의 여행가방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이 중 밀수품이 든 가방은 단 한 개였고, 참가자들은 자신이 밀수품을 옮기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습니다. 보안검색대에는 보안요원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밀수품이 발각될 위험은 보안요원의 유무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 결과, 이 두 집단의 뇌 활성 사진이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특히, 보안요원이 보안검색대를 감시하고 있음을 미리 알고 있을 때, 보다 확실한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fMRI를 분석한 결과, 밀수품이 있음을 알고 있는 쪽(즉, 고의성이 있는 경우)과 없는 쪽을 71~80% 확률로 정확히 분류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감시하는 사람이 있을 때, 고의적으로 밀수품을 들고 가는 사람의 뇌가 다르게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이 실험은 고의성이 뇌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알려주는 것과 동시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해진 규칙보다는 누군가 감시하고 있다는 것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위험한 행동을 하더라도 감시자가 없을 경우 뇌의 변화는 크지 않았습니다.
연구팀은 이 결과를 아직 일반화하기엔 이르다고 말합니다. 40명의 뇌 영상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 실험처럼 특별한 상황에서만 독특한 뇌 패턴이 나타나는 것인지, 다른 상황에서도 이 같은 결과가 나타나는지 더 연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뇌 영상이 범죄 행위와 같은 다양한 활동에 사용될 가능성을 보여준 실험임에는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