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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내 직업은 라디오 구성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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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내 직업은 라디오 구성작가였다. 하필 그 날 공들여 섭외한 인터뷰 연사가 갑자기 못하겠다며 연락을 했다. 여의도에서 영등포역까지 퇴근길 만원 버스를 타고, 승객으로 가득 찬 수원행 누리로 기차를 가까스로 탄 순간이었다. 내일 생방송 시간 10분을 채워줄 출연자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당장 펑크를 감당할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흩어져 있는 두 아이 하원 시간은 째깍째깍 다가왔다. 아이가 엄마를 많이 기다렸다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얘길 들은 게 엊그제, 또 늦는다면 선생님은 어떤 난감한 표정을 지을까?

다음 날 프로그램 담당 부장은 나를 따로 불러 미안하지만 일을 관두는 게 좋겠다고 했다. 솔직히 당시 내 업무 능력을 점수로 매긴다면 낙제다. 방송 날짜나 요일을 잘못 쓰는 건 애교였고, 생방송 전화 연결을 했는데 통화 음질이 엉망이거나 연사가 진행자의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늘어놓아 서둘러 인터뷰를 끝맺기도 했다. 사전 인터뷰를 충분히 하지 않은 내 잘못이다.

2012년은 언론노조 파업이 한창이었다. 사무실 분위기는 연일 살얼음판, 방송 중 누군가의 실수만 나와도 위로보다는 비난이 앞섰다. 내년이면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것이고, 일을 계속하더라도 원고나 섭외에 집중할 수 없을 것이다. 고리 사채처럼 늘어나는 실수와 자책에서 벗어나는 길은 일을 관두는 거였다. 둘째 출산 후 3년여 만에 복귀한 내 방송 생활은, 자의 반 타의 반 막을 내렸다.

여성의 경력단절에 대한 글을 쓴다 생각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장면은 결국 내 얘기다. 직장을 잃었던 그 날, 내 감정을 표현해 보라면 '치욕스럽다'이다. 환한 대낮에 많은 사람 앞에서 뺨을 맞은 기분이랄까? 곧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던 경력 단절 기간은 '치욕스러움'을 벗어나는 시간과 커 가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겹쳐 5년이 훌쩍 넘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니던 두 아이는 어느새 초등학생이다.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아이 친구 엄마로 만난 전업주부 이웃들이 하나둘 직장에 다니고 싶다는 얘길 많이 한다.

실제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 친구도 있다. 다시 일을 시작한 큰 이유는 아이들도 어지간히 컸고, 노후에 대비해야 한다는 불안감 때문이기도 하다. 나 역시 엇비슷한 고민을 하던 터라, 일단 최근 경력단절을 벗어난 3명의 친구 미선, 정아, 효정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이 글은 전업주부가 가정이 아닌 직장과 일에 대한 욕망을 가질 때, 어떤 방법으로 이를 실행할까? 어떤 일터를 찾게 될까? 또 겪게 되는 어려움과 보람은 무엇일까? 나는 '치욕스러움'을 완전히 벗어났나?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헤맨 기록이다.

중학생 아들이 학교에 간 아침, 미선(가명. 만43세. 수선 가게 인수예정)은 분주하다.
 중학생 아들이 학교에 간 아침, 미선(가명. 만43세. 수선 가게 인수예정)은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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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을 믿고 하는 정직한 기술, 옷 수선

중학생 아들이 학교에 간 아침, 미선(가명. 만 43세. 수선 가게 인수예정)은 분주하다. 몇 달 전만 해도 오전 시간엔 교회 일을 보거나 팟캐스트를 들었다. 아침이 바빠진 건 취미로 시작한 옷 수선을 생업으로 삼겠다 마음 먹고부터다. '수원시 가족여성회관'에서 양재과정을 배우던 중에, 동네 수선가게를 알게 됐다. 20년 옷 수선 경력을 자랑하는 가게다. 사장님이 귀농을 준비하느라 마침 가게를 인수할 사람을 찾다 미선과 인연이 됐다. 앞으로 5개월 동안 수습 기간을 거치면 미선은 수선집 새 주인이 된다.

얼마 남지 않은 수습 기간 동안 하나라도 더 배우려니, 오후 5시로 정한 퇴근 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어져 일곱, 여덟시를 넘을 때가 많다. 대학에서 전산을 전공했고 결혼 전에 했던 일도 전산 업무다. 이력을 뒤져봐도 옷이나 수선과 연관은 없지만, 미선은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할 때면 목까지 차오른 근심이 사라진다. 예전에 전산 업무를 할 때는 일을 잘 못하기도 했지만 하루도 맘 편히 회사에 간 적이 없었다. 옷 수선은 힘들긴 하지만 맘이 편하다.

사람의 체형은 저마다 다른데 공장에서는 똑같은 모양으로 옷을 찍어낸다. 배가 많이 나와 늘 한 치수 큰 옷을 사는 단골 할머니는 새 옷을 사면 소매 길이를 줄이기 위해 수선집을 찾는다. 수선한 후 몸에 꼭 맞는 옷을 입고 웃음 짓는 할머니를 보며 미선도 즐겁다. 미선에게 옷 수선은 늦게 찾은 재능이며. 내 손을 믿고 하는 정직한 기술이다.

"처음엔 수선 말고 가장 먼저 떠오른 직업이 보험설계사, 마트 계산원이었어. 사람 대하는 일은 자신이 없어서 못 하고 나만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 요즘 많이 하는 카페도 특별함이 없어 보이고, 수선은 내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어. 나의 특별함을 드러낼 수 있는 일이랄까? 손님도 수선이 필요해서 오는 거니까 나에게 부탁하는 느낌이 들어. 내가 갑인 느낌. 밑천이 별로 안 들고 재료비도 적고 현금이 바로 들어오고 나만의 기술로 하는 거니까. 그렇다고 수선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기술은 아니잖아. 그래서 시작하게 됐어." - 하미선

보육교사 3종 세트: 한약, 침, 물리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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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교사 3종 세트: 한약, 침, 물리치료

정아(가명. 만39세. 보육교사)는 경남 산청의 산골 소녀 출신이다. 학교 육상 대표선수를 할 정도로 체력이 좋다. 전문대학에서 아동학을 전공했다. 자신이 4년제 유아교육학과를 졸업했다면 인생이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좋아해서 방문 가베 선생님부터 놀이학교, 어린이집에서 주욱 일했다. 경력을 합치면 10년 차다. 당시엔 영유아 법이 생기기 전이라 한 반에 아이들이 30명 가까이 됐다. 보조 선생님도 없이 혼자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아이들을 돌봤다. 그렇게 받은 첫 월급이 48만 원이다.

방문 수업을 할 때는 이동 거리가 멀고 화장실을 맘대로 못가니 직업병으로 방광염을 얻었다. 결혼 후엔 수도권으로 이사하면서 직장을 그만뒀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우울한 동네로 기억한다. 남편은 일중독이었고 세 살 난 딸이 유일한 말벗이었다. 일을 관둬서 억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신랑 월급이 많았으니 내가 그만두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단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남편이 이직을 생각했다. 맞벌이를 원했다. 방송통신대학 유아교육과에 들어가 1학년부터 다시 공부했고, 졸업 후 초등학교에서 돌봄 교사로 6개월 동안 일했다. 초단기 계약직이라 고용이 불안했고, 이런 불안을 악용한 동료 교사가 자신의 일을 정아에게 미루거나 별별 심부름을 시키며 갑질을 하는 바람에 그만뒀다. 어린이집 종일반 교사로 일한 지 이제 1년이 넘었다. 만 2세 영아반을 맡다 보니 목은 늘 쉬어있고, 허리, 무릎, 어깨, 어디 하나 안 아픈 곳이 없다. 체력만은 자신하는 정아인데, 요즘은 한약과 침, 물리치료를 달고 산다.

"4년 6개월 만에 일을 시작 한 거예요. 보육교사는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고, 경험이 있는 일이라서 하게 됐어요. 어린이집 인당 아동수가 만2세 영아반의 경우 1대 7이거든요. 여기에 추가보육 2명까지 하면 9명을 혼자서 봐요. 아이들은 정말 예쁜데요, 내 몸이 아플 때는 솔직히 안 예뻐요. 몸이 아파 죽어도 출근해야 돼요. 대체 교사를 안 해줘서 1년 365일 매여 있어요. 일을 관두지 않는 이상 쉴 수가 없는 구조예요.

규모는 작아도 집이랑 가까워서 여길 선택 했거든요, 딸애 학교 가는 거 챙겨주고 해야 하니까. 컸다고 해도 애가 아직 초등학생이잖아요. 어린이집 규모가 작으니까 경력 인정을 하나도 안 해줘요. 대체 교사는 당연히 없고요, 애들 차량 돌아야죠, 한 달에 네 번 정도 돌아오니까 이것도 일이더라고요. 경력인정 재대로 받는 국공립이나 직장 어린이집으로 가고 싶죠. 갈 수 있을 거예요. 우리 딸 좀만 더 크면요."  - 이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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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과 살림, 균형을 찾아서

효정(가명. 만36세 식품회사 수주팀 서류업무)은 주부경력 10년 만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초보 회사원이다.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거래 업체가 신청한 샘플을 발주하는 일을 한다. 갓 6개월을 넘긴 초보다 보니 실수도 잦다. 냉동고에 초콜릿 샘플을 가지러 갔다가 비닐봉지 속 초콜릿 칩이 와르르 쏟아지는 바람에 아침부터 팀장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집에선 나름대로 솜씨 있고 맵시 있는, 똑 소리 나는 주부였지만, 직장에 오자마자 덤벙이가 되고 말았다.

효정은 결혼 전에 다녔던 은행이 마지막 직장이다. 연봉과 복지를 생각하면 절대로 관둬서는 알 될 직장이었다. 남매인 아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이다. 10년 넘게 멈춰 있는 사회인으로서 성장판을 이젠 열어야 하는데 효정 자신이 잘하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도저히 알 수 없어서 고민이다. 어떻게든 예전 경력을 살려 보려고 금융권 시간제 일을 찾아봤지만 기회는 오지 않았다. 평생교육사 자격증을 따고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도 했다. 결국 대학 선배 소개로 예전에 짧게 일한 경험이 있는 식품 유통 회사에 새 둥지를 틀었다. 오후 3시 퇴근, 일하는 시간이 짧은 만큼 보수도 박하지만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을 따뜻이 맞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 여긴다.

"지금 직장을 선택한 이유는 육아와 살림을 병행할 수 있는 근무 시간 때문이에요. 아이 돌보는 거, 살림, 주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안 되기 때문에 아이들 하교 일정에 맞춰 퇴근할 수 있는 시간대가 취업할 때 첫 번째 조건이었어요." - 임효정

줄어든 임금, 사라진 복지

최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6년 경력단절 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25~54세 기혼 여성의 경력단절 비율은 48.6%로, 두 명 중 한 명은 경력단절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이른바 '경단녀'들이 다시 일을 시작하는 비율도 늘었다. 지난해 여성 취업자는 전년보다 14만8천 명 가까이 늘었으며, 특히 30대와 60대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발하다. 경력이 단절됐던 젊은 주부들이 다시 취업하거나, 중년 주부가 생계형 맞벌이에 나선 결과다.                  
                              
경력단절 후 새로운 일터로 옷 수선을 선택한 미선은 수선업에 대한 자긍심이 크다. 수익이 얼마가 되든 자기 기술로 승부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자영업자 특유의 호방함이 느껴진다. 사소한 일도 결정을 못 하던 소심한 성격인데 요즘 뭐든 시원시원하게 선택하는 자신을 보며 변화를 느낀다고 한다. 무엇보다 옷 수선이 미선의 재능에 딱 맡는 일이라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크다. 수선집이 지하인 건 불만이다. 임대료를 아껴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창문이 없어 온종일 햇빛을 못 보고 옷감에서 나오는 먼지가 많은데 환기가 제대로 안 된다.

경력단절 이전에 본래 하던 보육교사 일을 선택한 정아는 고민이 많았다. 보육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해도 여전히, 교사보다 돌봐야 할 아이들 수는 많고, 부모의 개입이 과하다 못해 징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활동사진에 왜 자신의 아이는 다른 아이에 비해 적게 찍혔느냐, 보낸 감기약은 왜 늦게 먹였느냐, 선생님이 자신의 아이를 밀쳤다는데 CCTV를 봐야겠다는 등. 최선을 다한 하루를 순식간에 무너뜨리는 말을 들을 때면 일을 관두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 열 번도 넘게 든다. 직장과 살림의 균형을 맞추고 싶어 하는 건 모든 기혼 경력 단절 여성의 소망이다. 효정은 이런 소망을 가장 잘 이룬 경우로 만족도도 높다. 다만 자신의 재능이나 경력, 앞으로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는 물음표라 말한다.

임신과 출산·양육 등으로 경력단절을 겪은 여성이 다시 취업하는 데는 8년 이상 걸린다고 한다. 임금은 경력이 단절되기 전보다 월 27만 원 적었고, 경력을 유지한 여성과 비교하면 월 76만 원을 덜 받았다. 재취업을 하면서 상용직에서 임시직으로, 전일제 근무에서 시간제 근무로 옮겨가는 경향도 뚜렷했다. 경력단절 이전 81.7%였던 상용 근로자는 이후 45.4%로 줄었고 임시 근로자는 10.4%에서 24.5%로 증가했다. 자영업자도 5.1%에서 15.2%로 늘었다.('2016년 경력단절 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 여성가족부)     

5년 전 라디오 구성작가로 일 할 때 받은 원고료는 회당 11만4000원이다. 월급으로는 2백만 원이 조금 넘는 돈, 여기에 연차나 수당 등은 꿈도 못 꾸는 특수고용노동자 신분인 걸 고려해야 한다. 위 여가부 발표 통계를 곧이곧대로 해석해보면, 내가 다시 어떤 일이든 시작했을 때 받게 될 월급은 170만 원 정도다. 어디에 이런 일자리가 있단 말인가? 내가 가끔 하는 학교 방과 후 수업 보조원 아르바이트는 회당 5만 원을 받는다. 한 달 꼬박 수업해도 백만 원 남짓이다. 그나마 참여하는 수업 일수는 1년에 30일 남짓, 연봉 150만 원인 여자가 바로 나다.

미선은 아직 수습 단계라 수입이 없다. 그나마 상용 근로자인 정아가 형편이 나은 편이다. 임금만 따져서 나은 것이지 노동 강도나 환경을 생각하면 괜찮지 않다. 시간제 임시 근로자인 효정은 상당히 아쉬운 금액이라고만 얘기한다. 임금만 아쉬운 게 아니다. 재취업을 할 때 정부나 지자체의 도움을 받은 경우는 미선이 유일하다. 수원시가 운영하는 기관에서 기술 교육을 받은 것인데, 그나마 강사의 자질이 의심스러운 함량 미달 강의였다고 한다.

일자리를 찾는 과정과 그 이후에 지원이 부족한 건, 꼭 경력단절 여성만 겪는 문제는 아니다. 성별과 관계없이 청년과 장년, 노인 등 전 세대가 겪고 있다. 파견 근로와 비정규직 등을 광범위하게 양산하다 보니, 임금과 복지가 보장되는 질 좋은 일자리는 사라졌다. 적은 임금과 누리기 민망한 복지가 있거나 아예 없는 질 낮은 일자리만 남았다. 80년대 말 정규직으로 입사해 운 좋게 경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사람들과 전문직 종사자 이외에는 누구도 좋은 일자리를 얻기 힘든 상황이다. 결혼과 양육, 가정 살림을 해야 하는 조건에서, 기혼 여성은 손쉽게 경력단절에 내몰리고 재취업을 할 수 있는 시간 또한 놓치게 된다.

"현재 전업주부 중에는 전문 경력이 단절되어 취업이 힘든 경우보다, 오히려 경력이 부족하고 경험이 적어서 다시 취업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고 생각해요. 30~40대 주부들이 일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도전하고 도움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경력이 없어도 새롭게 교육받고 취업을 선택할 수 있는 제도가 지금보다 더 다양해 져야 한다고 봐요." - 임효정

일과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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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아이를 돌볼 것인가?

경력단절 기간이 길어진 이유 중에 아이 양육을 뺄 수 없다. 지금은 보육 기관에 아이를 맡길 경우 지원금을 받지만, 미선과 정아 효정의 아이들이 자랄 때는 지원이 없었다. 엄마의 임금보다 아이 보육비가 더 드니 섣불리 일터로 나설 수 없고, 아이의 양육은 엄마가 책임져야 한다는 가정과 사회의 압박도 느꼈다. 자신도 젖먹이를 보육 기관에 보내기보다는 엄마 품에서 길러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경력 단절을 겪은 여성이 재취업을 했을 때 가장 힘든 점은 양육, 보육 문제이며, 이들은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와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이 늘어나기를 희망했다.

정아에겐 4학년 딸이 있다. 어린이집 일을 하고부터는, 딸아이 공개수업이나 운동회에 가지 못했다. 사정에 따라 대체 교사를 쓰게 돼 있지만, 일단 원장이 꺼리고 동료 교사도 불편해한다. 대신 어린이집 공개수업이나 운동회는 날 밤을 새워가며 준비한다. 미선은 남편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중학생 아들 학원비를 못 낼 형편이다. 아들과 늘 함께하던 저녁 식탁 대신 재봉틀 앞에 앉은 미선은 아들이 안쓰럽다. 효정은 지금 일하는 식품회사에서 2년 전에 상용 근로자로 일할 기회가 있었다. 아이들은 누가 돌보냐며 남편이 반대했다. 그때 일을 시작했더라면 월급이나 회사에서 내 위치, 업무와 복지가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살림이 좋았어. 어릴 때 엄마가 늘 일하러 갔거든. 돈 벌러 가는 게 싫더라. 그냥 내 주변에 같이 있으면 좋겠더라고. 집에 있는 이웃 친구 엄마들은 같이 모여 딸기잼도 만들고 김치도 담그고 단짝 친구도 있고 우리 엄마도 그랬음 좋겠다 했지. 내가 수선일 하니까 빨래도 못 해 밥도 못해 애도 못 챙기지. 살림에 중심이 깨졌어. 당장 내가 수선집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또 어떻게 하나 고민이 되긴 해. 한 시간이라도 일찍 문을 닫고 탄력적으로 시간을 쓰고 싶어." - 하미선

"남편과 나는 가사는 업무분담이 돼 있어요. 하지만 성날 때는 아침이에요. 아침은 꼭 내가 챙기게 되거든요. 남편은 자기 것만 챙기고 아이는 오로지 내 책임이에요. 출근 시간도 비슷하니까…. 아침 시간이 제일 바쁘고 기분도 나빠요. 화장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아이도 챙겨야 하니까."  - 이정아

삶이 가엾다면 우린 거기 묶일 수밖에 없다

인터뷰를 끝내며 중년 이후 어떻게 살고 싶은가 물었다. 미선은 수선집을 일주일에 한 사흘만 열고 나머지는 여행을 가거나 취미 생활을 하고 싶단다. 정아는 귀농해 남편은 농사를 짓고 자신은 동네 병설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싶단다. 농사는 기후나 작물에 따라 변수가 크니 자신이 돈을 계속 벌어야 할 것 같단다. 효정은 나 자신을 위해 살아보고 싶고 그런 일을 하고 싶단다. 그런 일이 정확히 무엇이라 말하지 않는 걸 보니 아직 찾지 못했나 보다.

5년 전 라디오 구성작가 경력이 단절되던 날, 내가 느낀 치욕은 오기로 변했다가 포기에 이르렀다. 순발력과 정보가 생명인 구성작가란 일을 다시 하기에 나는 너무 오래 다른 세상에 머물렀다. 종편에 팟캐스트까지, 작가로 일할 수 있는 채널은 많아졌지만, 애매한 경력에 나이 많은 아줌마 작가를 쓰는 곳은 없다.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마다 나는 치욕을 감추려 무엇이든 쓴다.

미선, 정아, 효정 그리고 나는 지금보다 조금은 여유로운 중년과 노후를 꿈꾼다. 하지만 눈앞에 세상은 녹록지 않다. 우리에게 '경단녀'란 이름을 붙이고, 적은 임금을 주고 나쁜 노동 환경을 감수하라고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가여운 삶에 묶인 우리는, 앞으로 어떤 꿈을 꾸게 될까?

삶이 가엾다면 우린 거기 묶일 수밖에 없다. - 이성복 시집 '남해 금산' 中



태그:#경력단절, #이성복, #남해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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