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도 없이 '강용주'를 수업의 소재로 삼았다. '강용주와 함께 보안관찰법 불복 저항운동에 나서자'는 민형배 광주광역시 광산구청장의 SNS 글을 보고 나서다. '길고 추운 겨울을 지나 맞은 2017년 봄, 무려 18년째 보안관찰법과 싸우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며 사이버 저항운동을 독려하고 나선 데에 대한, 미래세대를 가르치는 교사로서의 응답이다.
강용주 선생은 전남대 의대에 재학 중이던 1985년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가 조작한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직후 '남산'에 끌려가 60일 동안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거짓 자백을 했고, 사상전향서 쓰기를 끝내 거부해 14년 동안 갇혀 있었다. 출소 후 학업을 마친 그는 의사로서 고문 피해자 치유모임을 이끌었고, 지난해 말까지 4년여 동안 5.18 등 국가폭력 생존자들의 치유를 돕는 광주트라우마센터장을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고통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보안관찰법상 신고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소돼 또 다른 재판을 받고 있다. 그가 어겼다는 보안관찰법은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3년 이상의 형을 받은 사람을 처분 대상자로 규정하고 있다. 보안관찰 처분을 받으면 거주지를 옮기거나 10일 이상 여행할 때 3개월마다 이를 경찰에 신고하도록 의무화되어 있다.
강용주를 몰랐던 아이들, 하지만...예상대로 아이들은 '강용주'를 전혀 알지 못했다. 매일 아침 꼬박꼬박 신문을 챙겨본다는 아이조차 그의 이름을 낯설어했다. 누구는 어느 팀 야구 선수냐며 되물었고, 또 누구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 나온 '듣보잡' 후보 이름 같다며 엉뚱한 답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불철주야 대학입시 공부에만 매달리는 고등학생들에게 그는 철저히 '무명'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의 일방적인 주입식 수업은 되레 반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십상이다. 차라리 아이들에게 인터넷을 이용해 그의 이름과 연관검색어를 찾아 개별적으로 조사해 발표해보도록 과제를 내주는 것이 나을 거라고 여겼다. 그러다 보면 고구마 줄기 캐내듯 국가보안법과 사상전향서, 준법서약서, 보안관찰법,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 등에 대해 찾아보게 될 것이라 내심 기대했다.
이튿날 과연 '강용주'는 교실에서 일약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그와 관련된 기사와 글, 사진 자료 등이 인터넷에 넘쳐나더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가 5.18 때 고등학생으로 현장에 있었고, 그것이 대학 때 학생운동을 했던 계기가 됐다는 이야기부터,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 등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수많은 용공조작사건 등에 대해서도 짐짓 놀라워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 중에도 보안관찰법에 대한 관심은 유독 컸다. 처음엔 이름만 봐서는 저작권과 관련된 보호법인 줄로 알았다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국가보안법에 이어진 '끝말잇기' 장난 같다며 조롱하는 아이도 있었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나서는 '21세기의 장발장 법'이라거나 '엿장수 마음 법'이라고 이름 붙이고는 지금껏 사라지지 않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이유를 따져 묻기도 했다.
보안관찰법을 조사한 한 아이의 발표는 웬만한 대학 강의 뺨치는 수준이었다. 별도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 세부 내용과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친구들에게 설명해주었다. 수업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따로 초콜릿 등 선물을 챙겨와 설명 도중 즉석 퀴즈를 진행하기도 했다. 내 수업이라면 꾸벅꾸벅 졸았을 아이들도 귀를 쫑긋 세웠고, 그의 질문에 앞 다퉈 손을 들었다.
그는 자료를 준비하면서 '나라면 저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자문했다고 한다. 달랑 한 장짜리 사상전향서가 뭐라고 그 오랜 청춘의 시간을 교도소에서 썩혀야 했는지 솔직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더욱이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엔 사상전향서를 폐지하고, 준법서약서에 서명하는 것으로 대체됐음에도 그마저 거부한 그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거다.
양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수업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를 납득시킨 건 관심을 갖고 수업에 참여한 또래 친구들이었다. 약방의 감초처럼 흔히들 사용하지만, 누구도 깊이 생각해보지 않는 '양심'이라는 말을 곱씹어보게 된 계기였다며 다들 흡족해했다. 여태껏 '양심수'라는 말의 뜻조차 몰랐다는 한 아이는, 14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버티게 해준 건 바로 양심의 힘이었을 거라며, 그의 결정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낯설고 어려운 용어가 수시로 튀어나왔지만, 아이들은 그다지 힘들어하지 않았다. 관심은 호기심을 이끌어냈고, 질문과 대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아이들은 보안관찰법을 두고 '21세기 스토킹 법'이라거나, 국가보안법보다 먼저 사라져야 할 악법 중의 악법이라며 단언하기도 했다. 몰랐다면 모를까, 이젠 알게 됐으니 폐지에 청소년도 힘을 보태야 한다며 어른스럽게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강용주'의 삶에 익숙해질수록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라는 별칭은 아이들에게 더 이상 불온한 수식어가 아니었다. 외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훈장'으로 여기는 듯했다. 강의가 마무리될 즈음, 아이들은 그를 통해 5.18을 다시 공부하게 됐고, 주상 같은 법이 누군가에겐 흉기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으며, 나아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수준을 정확하게 인식하게 된 계기였다고 평가했다.
이내 끝종이 울렸지만, 수업은 계속됐다. 여느 때 같으면 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책상에 엎드리거나 복도로 나갔을 텐데, 몇몇 아이들은 강의가 진행된 교탁으로 다가와 남은 질문을 쏟아냈다. 거짓 자백을 유도한 고문 담당자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또 2년마다 갱신하듯 처분을 내리는 '보안관찰 심의위원회'의 위원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인지 등을 채근하듯 물었다.
국가보안법과 보안관찰법을 넘어, 이참에 대한민국 헌법을 제대로 공부해봐야겠다며 다짐하는 아이도 있었다. 하긴 무소불위의 대통령을 권좌에서 몰아낸 곳이자 각종 법률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곳이 헌법재판소라는 걸 모르는 경우는 없었지만, 헌법을 단 한 번이라도 읽어봤다는 아이도 없었다. 유일하게 아는 헌법 지식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구절뿐이다.
나아가 헌법보다 상위법 같은 '괴물 법'을 만들어낸 우리나라 현대사가 궁금해졌다는 아이도 있었다. 봇물 터지듯 이어진 이야기들은 사실상 기성세대를 성토하는 내용 일색이었다. 아이들 앞에서 양심과 소신을 지키며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는 입버릇처럼 훈계하지만, 정작 그런 현실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는 질책은 매서웠다.
교사로서 부끄러운 고백 하나. 단지 '강용주'에 관해 과제를 내주었을 뿐인데, 아이들은 스스로 준비하고, 강의하고, 질문하고, 답변하며 하나의 완결된 수업을 만들었다. 이름조차 낯설어하던 '강용주'는 아이들의 스승이 되었고, 아이들은 교사인 나의 스승이 되었다.
아이들은 '강용주'와 보안관찰법을 통해 몰상식한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았다고 했을지언정 절망을 입에 담진 않았다. '강용주'를 지지하고, 양심과 상식을 이야기하는 이 아이들이 있어 우리나라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