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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세종대왕, 다음날은 헬렌 켈러였다.

어린 시절 책장 한편에 가지런히 꽂힌 전집은 골라 읽는 재미가 있었다. 아이 눈에 맞게 겉표지는 화려했고, 글자 수는 적당했다. 어떤 날은 맘에 드는 책 번호를 골라 읽기도 하고, 어떤 날은 이름이 가장 긴 사람 책을 꺼내기도 했다. 빳빳한 겉표지를 펼쳐 무릎 위에 올려놓고 한 장 한 장 넘겨보는 맛은 어린 내게도 중독성이 있었다.

아이를 따라나선 도서관. 책을 집자마자 거침없이 책장을 넘기는 딸이 수상했다. 아이가 읽는 책도 수상했다. 내가 보던 책을 덮었다. 대신 딸의 책을 따라 읽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여러 날 그랬다. 그림책을 읽는 동안 "엄마, 왜 울어?"를 들으며 울고, "엄마, 왜 웃어?"를 들으며 웃었다.


<짬짬이 육아>를 쓴 최은경 <오마이뉴스> 기자는 "엄마, 책 보러 도서관에 가자"라고 한 딸 덕분에 아이들이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는 그 맛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게 됐다. 내가 어린 시절 느꼈던 바로 그 맛이다. 그리고 그는 곧 '아이와 함께 읽는 그림책'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아이와 부모, '두 사람' 사이를 잇는 그림책 한 권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 책표지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 책표지 ⓒ 덴스토리

육아서에 없는 감동이 그림책에 있었다. 아이 마음을 읽는 비법도 숨어 있었다. 그림책 한 권 읽는 데 드는 시간은 길어야 10분.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분명 같은 그림책을 함께 읽었는데 아이가 본 걸 나는 못 보고, 내가 본 걸 아이는 못 봤다…(중략)… 우리들만의 그림책 속 숨은 의미 찾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 배 아파 낳은 내 새끼'이니 내가 잘 알지, 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왜 기분이 나쁜지, 왜 엄마에게 화가 났는지, 왜 밤늦게까지 자지 않는지. 진심을 담아 묻지 않으면 '왜'라는 의문은 부모자식 간에도 쉽게 풀리지 않는다. 아이와도 연인처럼 대화하고 친구처럼 뒹구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다.

저자는 그림책이라는 통로를 이용해 아이와 엄마가 만나는 순간들을 만들었다. 그의 말마따나 그림책 읽는 데 드는 시간은 고작 10분이고, 아이와 공감을 나누는 시간은 1분이면 충분했지만, 그 11분 덕분에 아이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보따리'를 함께 펼칠 수 있었다.

"다은이는 이 책에서 어떤 문장이 제일 좋았어?"
"(한참을 생각하는 듯하더니) 그거 있잖아, 그거……"
"그거 뭐? 더 생각해봐. 엄마는 이 대목이 참 좋더라. 들어봐. '밤중에 오줌이 마려워 밖에 나가면 산이 까맣게 무서웠다. 둥근 달이 떠 있기도 했다. 달을 보고 가만히 달이라고 말해보았다. 달이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는 이 대목. 어때?"
"시 같아."


아이는 어른인 엄마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그림책을 아이의 눈으로 설명해줬고, 저자는 그림책을 통해 아이의 속마음을 엿봤다. 저자는 이런 순간을 '나는 모르고 아이는 아는 걸 찾아내는 숨바꼭질'이라고 불렀다.

라면 한 그릇 먹을 시간이면 가능한 '11분 육아'

 아이와 그림책 읽기.
아이와 그림책 읽기. ⓒ sxc

저자는 아이와 함께 읽은 그림책 덕분에 '늘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이를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조금 자유로워졌다'고 말한다. 이게 다는 아니다. 더불어 그림책에 엄마가 위로받는 순간들도 생겼다.

동생 때문에 속상한 현서에게 테푸 할아버지가 "이리 와라 아가야, 많이 속상했겠구나" 하는 대목을 읽을 때는 울컥했다. 그 소리가 마치 "다은 엄마, 오늘 회사에서 좀 속상했지?" 하는 말처럼 들려서. 테푸 할아버지가 내 마음도 알아주고 위로해주는 것 같아서.


'아이들의 곤란한 질문에 대답하는 법, 밤마다 이불에 쉬하는 아이 바꾸는 법, 아이들을 정말정말 화나게 하지 않는 법'. 그림책은 엄마, 아빠가 '처음'인 모든 부모들에게 좋은 육아지침서가 되기도 한다. '글씨 하나 없는 그림책이 충분히 좋은 이유'다.

이 책은 먼 훗날 아이들에게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네가 어렸을 때 엄마, 아빠와 함께 이런 시간을 보냈단다'라고 말해주고 있으니.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이 육아법을 한번 시도해봐도 좋겠다. 하루 11분, 라면 한 그릇 먹을 시간 정도이면 충분하니.


짬짬이 육아 - 하루 11분 그림책

최은경 지음, 덴스토리(Denstory)(2017)


#짬짬이 육아#하루 11분 그림책#그림책 육아#최은경#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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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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