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은 오마이뉴스 에디터의 사는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
'굳이' 내 이야길 먼저 해야겠다. 2017년 내 이름이 저자로 된 책 한 권이 나왔다. <짬짬이육아>다. 제목만 보면 육아책인 것 같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 내 첫 '에세이'다. 이 책의 부제는 '하루 10분 그림책'. 개인적으로 제목보다 부제가 더 마음에 드는 이 책에는, 내가 두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으며 나눈 이야기들이 담겼다(그러니 육아책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때까지 책 출간은 내 인생에 전혀 없던 계획이었다. 한번도 내가 책을 낼 거라곤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생각조차 없었으니 바란 적도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책 출간이 가능했을까.
나는 그저 재밌어서 썼다. 그림책을 읽는 것도 좋았고, 그림책을 매개로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도 좋았다. 그림책을 핑계로 아이들 마음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쓰는 것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저 신났다. 내가 읽어 좋은 그림책을 다른 사람한테 알릴 수 있어 '내 글의 쓸모'라는 것도 생겼다. 이게 그저 신나게 썼던 글이 책으로 나온 배경일 테다.
출판사 편집장을 처음 만나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첫 미팅에서 계약서를 내민 편집장. 이런 경험이 처음인 나는 이게 사기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무명의 작가였지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물었다. 일주일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런 무명의 작가는 처음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말했다.
"이런 글로 책을 내게 될 줄 몰랐어요. 제가 정말 쓰고 싶은 글은 에세이예요."
"이 글이 어때서요. 작가님 글은 쉽고 편하게 읽혀서 좋아요. 엄마들에게 공감가는 내용도 많고요. 그리고 지금 쓰신 글도 에세이죠."
이 글이 에세이라고? '이런 글'과 내가 생각하는 에세이는 무슨 차이였을까. '현실에 발딛고' 있는 내 글을 정작 나는 에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썼을까' 무릎팍 칠 만한 문장도 없고, 누군가에게 읽은 척 할 수 있게 밑줄 그을 만한 구절이 없는 글. 사유와 통찰, 그 고급진 단어는 대체 언제부터 쓰기 시작한 건지... 나는 글을 쓰며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단어들이었다. 기본 화장만 하고 만 듯한 내 글이 무슨 에세이야, 그랬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대표 다음으로 높으신 분이 '이 글이 바로 에세이'라고 말해 준거다. 그제야 나는 내 글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내 일상을 기록하고, 그 경험을 통해 깨닫고 배운 것들을 기록한 글도 에세이로 읽혔다. 모두가 공감하고 감동할 만한 대단한 에세이는 아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게 읽힐 수도 있는 보통의 에세이는 될 수 있겠다 싶었던 거다.
그러고 보니, 사는이야기를 쓰는 시민기자들의 고민도 나와 비슷해 보였다. 많은 시민기자들이 '이런 글도 기사가 되나요?'라고 묻는다. "와이 낫, 왜 안 되나요? 됩니다" 편집기자의 한 마디에, 시민기자들은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며 계속 썼다. '일기는 일기장에' 같은 엉망진창의 댓글에도 굴하지 않고(물론 그래서 안쓰는 분도 계십니다만) 차곡차곡 기사를 쌓아갔다. 그러자 그들에게도 나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OO출판사가 계약하재요!"
출간을 바라던 이들도 있었고, 나처럼 생각하지 못한 일이라 어리둥절한 시민기자도 있었다. 그러나 출간 제안을 받은 시민기자들에게 공통점이 있었다면 뭔가 활력이 생겼다는 것. 자존감이 살아나고(없었다는 건 아니다), (좋은 의미에서) 어깨에 힘 빡 들어간 게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쌍둥이 엄마이자 워킹맘 330만 명이 선택한 블로거 '까칠한워킹맘'으로 잘 알려진 이나연 시민기자는 지난해 연말 <워킹맘을 위한 초등 1학년 준비법>을 출간했고, 이나연 시민기자의 블로그 이웃이었다가 시민기자로 활동하게 된 이혜선 시민기자님은 출간 계약을 하고 막바지 원고 작업 중이다.
마흔 넘어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을 연재한 차노휘 시민기자는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을 출간했고, 가난하지만 성실했던 부모의 삶을 연재해 많은 주목을 받은 임희정 시민기자도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를 출간했다.
결혼 후 육아하며 경력단절된 기간 동안 문화예술 글쓰기 공부를 꾸준히 해 온 문하연 시민기자는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창작 활동에 불이 붙은 케이스. 연재기사 '그림의 말들'을 엮어 책 <다락방 미술관>을 지난해 출간했다. 지금 연재 중인 '사연 있는 클래식'도 출간 계약을 마쳤으며, 현재는 드라마 극본 쓰기에 한창이다. '운동하는 여자'를 연재한 양민영 시민기자도 책 <운동하는 여자>를 발간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최소한의 소비를 연재하며 육아 우울증을 극복한 최다혜 시민기자도 출간을 앞두고 있고, 미화원이 된 고학력 50대 여성의 일 이야기 쓴 최성연 시민기자의 연재기사 '쓸고 닦으면 보이는 세상'도 출간 계약을 마쳤다.
'내 글이 기사가 될 수 있다니'를 넘어, '내 글이 책이 된다'는 신비한 체험. 안 해본 사람은 모를 거다. 드디어 이 글의 본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연재를 하세요"다. 나를 포함한 시민기자들이 해보니 좋았으니, 다른 분들도 도전하라는 거다.
'책을 낸다'는 것은 그저 책 한 권이 물건처럼 찍혀 나오는 게 아니었다. 이전의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삶을,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배웠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꼭 책을 한번 내보라고 권하는 이유다. 꼭 책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자기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건 굉장히 재밌고 신나는 일이니까.
아직 새해다. 계획대로 되는 게 인생은 아니지만 계획한 일도 잘 되고, 계획하지 않은 '우연'도 일어나는 해였으면 좋겠다. 어제의 나보다 나은 나를 위해, 발전의 계기는 스스로 만드는 거니까.
잠시 쉬어갑니다
지난 7월부터 주 1회 연재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은 아직 출간 제안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꾸준히' 읽어주는 시민기자들이 있으니까요. 지금 이 시간, 제 기사를 구독 중인 분은 99명입니다(^^). 100번째 분은 누구실지요? 연재하는 동안 힘이 된 댓글도 많았(?)습니다.
'요즘 언론의 평가가 혹독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많이 바뀌어야 할 거 같다고 독자인 저도 생각합니다. 편집기자의 업무에 대해 자세히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들에게 기자의 하고 싶은 말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 그날이 오겠죠'라고 써주신 황성진 독자님.
'사람이 쓰고 편집은 신이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겨주신 사마천님.
'시민기자라는 이름으로 글을 공개적으로 올려보고, 객관적인 시선도 느껴보는 경험은 재미를 넘어 내 삶을 다시 조명해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런 기회를 시민이라면 모두에게 부여하는 오마이뉴스의 시스템과 편집장님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나의 작은 촛불을 들고 와보니 여기 모인 수많은 촛불을 보고 힘을 얻습니다. 진짜 사는 이야기가 있는 곳, 오마이뉴스입니다'라고 고백해주신 김준정님.
'어머! 제 이야기 하시는 줄 알았어요. 잘 쓰지도 못하는데... 자신감이 떨어져서 올해는 글을 쓰지 못했었네요. 저에게 다독여주는 글 같아 공감 많이 누르고 싶네요. 늘 응원합니다" 해주신 욕심많은워킹맘님.
'찌릿찌릿 공감 감동하며 잘 읽었습니다!'라는 유최늘샘님.
'짧게 잘 쓰는 것이 진짜 실력이라는데... 실력을 기르는 수 밖에 없겠네요'라고 굳은 의지를 밝혀주신 흐르는물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연재를 매주 검토한 이주영 편집기자에게도 "이주영 기자님. 응원 합니다"라고 남겨주신 설원님, 모두 감사합니다. 그리고 자발적원고료로 응원의 말씀을 남겨 주시는 화순이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어쩌다보니 수상소감 같은 마무리가 되어 버렸는데요, 이 연재는 당분간 쉽니다. 봄이 오면, 꽃 소식과 함께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