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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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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종헌이가 블랙리스트래."

대학 때 그림을 전공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때는 그 친구랑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 보지는 않았지만 지나가다가 쉽게 뭘 물어보면 벽화를 그리다 말고 붓을 쓰는 법이나 그림에 대해서 매번 무슨 의식을 치르듯 진지하게 대답을 해주곤 했다.

그러고는 세월이 많이 흘렀다. 우리는 그때보다 훨씬 어른이 되었고, 고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난 이후로 깜깜한 어둠 속에서 절벽 끝에 서 있는 날들을 살고 있었다. 나는 소시민이라는 이름으로 입을 다물었고, 귀를 막았으며, 눈을 감아 버렸다.

"종헌이가 블랙리스트래."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나는 묘한 쾌감을 느꼈다. 그것은 잔뜩 부푼 풍선을 바늘로 콕 찔러 터뜨릴 때 느낄 수 있는 긴장감 뒤의 쾌감이랄까.

"아니!"라고 말하고, "나는 이거!"라고 말하는 "블랙"들의 리스트가 공개되고, 시민들은 스스로 "블랙리스트"가 되기를 자청하며 촛불을 들어 세상을 뒤엎어 버렸다. 그렇게 "블랙"들은 "침을 뱉었"고, 처참하게 쪼그라들었던 나의 "자유"도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오늘 (7월 3일)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청산과 개혁, 블랙리스트 타파와 공공성 확립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해 "문화예술인을 재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일이 역사에서 다시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역사는 발전과 퇴보를 거듭하면서 발전해 나간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나의 "자유"가 당분간은 볼품없이 쪼그라드는 퇴보를 바라지 않는다. 다시 퇴보를 하는 순간이 올지라도 일단은 "다시 없어야 할 일"을 만든 책임자에게 응당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이제 누구라도 "나도 블랙리스트", "나도 블랙리스트"라면서 "침을 뱉는"일을 자청할 것이다.

사진 최병수("한열이를 살려내라" 작가) 작 블랙리스트
종헌 : 이종헌, 전국 민미협 제15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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