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사업으로 여의도 공원 50배 이상 규모의 수변공원이 조성된 충남 부여군. 그런데 또다시 백마강교 아래에 공원을 만들고 있다. 말끔하게 밀어놓은 강변에 어르신들이 나란히 앉아서 잔디심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 중인 충남문화재단 '이제는 금강이다' 탐사단이 부여군에 도착했다. 지난 14일부터 양일간 탐사단에 동행했다. 백제의 도성으로 성왕 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백제역사 유적지구 관북리 유적인 '부소산성'에서 부여탐방 첫 일정을 시작했다.
오전 9시 '부소산성' 입구에 소설 <금강>의 김홍정 작가, 독도 사진 작가인 이정호씨, 금강의 영상콘텐츠를 제작해온 정경욱 감독, 산악전문가 김성선·조수남씨 등 탐사단이 먼저 도착했다. 곧이어 신현보 충남문화재단 대표, 부여군 한영배 부군수, 정찬국 문화원장, 한국예총 오태근 충남연합회장과 부여 예총 회원 및 시민 등 80여 명이 모였다.
반갑지 않은 물고기들
첫 일정은 '부소산성'을 돌아보고 백제 의상으로 갈아입은 후 고란사 선착장에서 황포돛배를 타고 출발하여 '수북정'까지 돌아보는 코스로 역사·문화를 찾아가는 탐방이다. 배를 타기 위해 고란사 선착장에 도착하자 수백 마리의 물고기가 몰려들었다. 강 중류에 살아가는 '눈불개'로 구걸하듯 사람들이 던져주는 강냉이를 얻어먹기 위해서다.
사람을 보고 피해야 할 물고기가 마치 애완동물처럼 따라다닌다. 선착장 매점에는 물고기 먹이로 강냉이를 팔고 있다. 첫날부터 씁쓸했다. 발소리를 들고 달려들던 물고기 생각에 머리가 혼란스럽다. 무심코 바라보던 일행이 한마디 툭 던진다.
"백마강이 금붕어를 키우는 어항도 아니고 물고기가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의 손에 길들여진 물고기는 자생을 못 한다. 먹다 버린 음식물에 물속 생태계 균형이 깨진 것 같다. 자연이 아닌 사육장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넓은 모래사장에 갈대밭이 있던 강변은 4대강 준설로 사라졌다. 잡풀만 무성하게 뒤덮었다. 버드나무를 칭칭 감고 오르는 '가시박'만 무성하다.
유람선이 다니는 둔치는 물살에 무너지고 있다. 거미줄처럼 촘촘한 버드나무 뿌리까지 앙상하게 물밖에 드러났다. 백제보 하류 1km 지점 '천정대' 강변엔 4대강 사업 당시 폐준설선이 아직도 방치되어 있다.
첫날 취재를 마치고 찹찹한 마음에 백마강 언저리에 텐트를 쳤다. 어둠이 내린 강변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초롱초롱한 별빛 사이로 간간이 비행기가 지나는 모습도 보인다. 소나기에 흠뻑 젖은 것처럼 텐트엔 이슬이 내렸다. 하얀 꽃망울을 터트린 '야관문'도 이슬을 이기지 못하고 축축 늘어졌다.
15일 다시 시작된 일정. 걸어서 이동하는 자전거도로 석성면 강변길에 억새가 바람에 한들거린다. 참나무들이 빽빽한 울창한 나뭇가지를 타고 '가시박'이 뒤덮고 있다. 배를 타고 조선 후기 화가인 겸재 정선의 산수화 임천고암(林川鼓岩)의 장소로 추정되는 세도면 반조원리 '삼의당'을 찾았다.
4대강 사업 당시 사업에 포함해 복원을 요청했던 곳이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삼의당'은 조선 영조시대 규장각에서 이서구, 정약용과 함께 경사를 강론했던 학자 윤광안이 유배에서 풀려난 뒤 말년에 이곳에서 기거하면서 후진 양성을 위해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손이자 파평 윤씨 종친회장을 맡은 7대손 윤석찬씨가 일행을 맞았다. 윤씨는 "백제역사 유적지구인 세계문화유산인 이곳을 아름답게 꾸밀 계획으로 작년 6월부터 사비로 건물을 복원하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집을 수리하다 보니 1806년 당시 상량식 했던 문구가 나왔다. 주변 농지에도 예전처럼 연꽃을 심을 계획인데 군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한 뿌리에서 자란 나무가 두 줄기가 뻗었다가 다시 만난 '팽나무'는 '연리목'이 되었다. '삼의당터' 제방에 조림한 팽나무와 소나무는 어림잡아 수백 년은 되어 보인다. 그러나 관리가 안 된 소나무는 작은 솔방울이 수북이 달리면서 병든 모습이다.
준설 5년 만에 다시 쌓인 강바닥
태풍 '탈림'의 영향권에 들어서면서 강바람이 다시 매서워졌다. 배를 타고 내려가는 물가엔 자라고 있는 능수버들이 바람을 타고 춤을 춘다. 4대강 사업으로 강변에 쌓았던 석축도 곳곳이 무너지고 침식되고 있다. 탐사단을 실은 돛배는 좌·우안을 넘나들며 지그재그로 달린다. 재퇴적으로 배가 바닥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참석자는 "배가 일직선으로 달리지 못하고 왔다 갔다 좌·우안을 넘나든다. 강바닥에 쌓인 퇴적토 때문이라고 하는데, 4대강 사업으로 강바닥에 모래를 다 퍼낸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쌓였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물속이 위험해 보인다"고 불안해했다.
부여구 양화면 입포(笠浦)는 우리말로 '갓개'라고 불린다. 부귀영화를 누렸다던 갓개나루터에 도착했다. 하루에 천오백 척이 넘는 배들이 들락거렸다고 한다. 하룻밤 정박한 배들만 이백 척 정도로 상권이 흥하여 식당과 요릿집 술집 등이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널따란 '갓개장터'엔 상인들만 가게를 지키고 있다.
탐사대는 오늘의 종착지인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유왕산'에 올랐다. 이곳은 660년 나당 연합군의 침략으로 의자왕이 1만2807명의 포로와 함께 당나라에 끌려갈 때, 백제 유민들이 그들을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전송했다고 한다.
해마다 8월 17일 이곳에서 '유왕산' 축제를 하는 곳으로 여성들만 참석하는 행사다. 부여군 세도면에 전승되어 오는 농요인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4호인 '산유화가' 공연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