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이 울리면서 무대의 막이 올랐다. 12명의 보호소년으로 구성된 공연 팀 '땅끝 do dream'이 사물놀이에 이어 퓨전 마당극 흥부전과 남도의 창을 잇따라 선보였다. 절정은 디제잉(DJing)이었다. 헤드폰을 걸친 디제이 광수(가명·18)가 고개를 흔들며 음악을 믹싱(Mixing)하자 객석에서 공연을 관람하던 초중고 장애 학생 50여 명이 뛰어나왔다.
장애 학생들과 보호소년들이 강렬한 비트에 따라 신나게 춤을 추자 학교 강당은 순식간에 클럽을 방불케 하는 열기에 휩싸였다. 외롭고 적적한 남도의 끄트머리 시골에 위치한 장애인 학교에서 모처럼 마련된 무대는 소외된 소년들끼리의 따뜻한 만남이어서 의미가 더욱 각별했다.
지난 13일 전남 강진군에 위치한 초중고 지적장애특수교육기관 '덕수학교'(교장 박영도)에서 아주 특별한 공연이 펼쳐졌다. 법무부 해남보호관찰소(소장 김영운)가 재능기부한 공연이다. 공연에는 해남, 완도, 진도, 강진, 장흥군에 거주하는 12명의 보호관찰 소년들이 참여했다.
박영도(61) 교장은 16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 아이들도 문화예술 공연을 좋아하는데 학교가 최남단 시골에 있어서 공연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고 안타까워하면서 "해남보호관찰소가 재능기부 한 공연 내내 우리 아이들과 보호소년들이 어울려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했고 고마웠다. 이번 공연을 통해 가슴 아픈 보호소년들이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가슴 아픈 소년들의 재능기부 "소년들이 용기를 냈으면"
박 교장의 말처럼 공연에 참여한 보호소년들은 하나같이 가슴 아픈 사연을 지닌 아이들이다.
완도에서 사는 광수의 꿈은 클럽 DJ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 홍대 근처 DJ학원을 1개월가량 다녔으나 형편이 어려워 귀향했다. 광수의 아버지는 선원이다. 미성년자인 광수는 통닭집에서 술을 마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형의 운전면허증을 자신의 것처럼 제시했다가 들켜 보호관찰을 받게 됐다.
진도에 사는 형민(가명·19)이의 꿈은 힙합 가수다. 형민이는 음악방송 엠넷(Ment)이 주최한 고등래퍼 광주전남 2016년 예선을 통과했으나 본선에서 아깝게 탈락했다. 형민이는 지난해 10월 광주에서 발생한 폭행사건에 휩쓸려 보호관찰을 받게 됐다. 형민이는 이날 공연에서 자신이 작사·작곡한 '권선징악' 등의 노래 두 곡을 불렀다.
혜영(가명·18)이는 경기도 안산지역 쉼터에서 생활하던 지난해 3월 페이스북에서 자신과 친한 언니들을 욕한 쉼터 동료를 폭행했다가 보호관찰을 받게 됐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혜영이는 부모 이혼 후 친척과 조부모 집을 전전하다 지금은 진도의 조부모 집에서 지내고 있다. 혜영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 조부모의 밥을 짓고 공연에 참석했다. 헌칠한 키에 날씬한 혜영이의 꿈은 모델이다.
키가 작고 몸이 약한 소녀 현진(가명·17)이의 부모는 중증 장애인으로 기초생활 수급자다. 현진이도 콩팥이 좋지 않아서 병원에 입원해 검사를 받곤 한다. 그런 몸으로 현진이는 음식점 등에서 알바를 해 생활비를 번다. 현진이는 지난해 7월 4총사인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다 경찰에 걸려 보호관찰을 받게 됐다. 현진이의 꿈은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일하는 것이다.
보호소년 12명으로 구성된 '땅끝 do dream'... "공연을 해낸 소년들이 고맙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으로부터 사업비(1800만원)를 따낸 해남보호관찰소 배상혁(45) 주무관은 재능을 가진 보호소년 12명을 선발했고 팀 이름을 '땅끝 do dream'으로 정했다.
지난 6월 시작해 100일 동안 진행한 재능기부 공연 프로젝트는 의기소침하게 지내는 농어촌 보호소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연습이 끝나면 고기 파티를 열었고 1박2일 수련회를 통해 서로의 아픔을 달래며 마음을 모았다. 소년들끼리는 카톡방을 만들어 친교를 나누었다.
어려운 것은 연습보다 모이는 것이었다. 완도, 진도, 강진, 장흥군에 흩어져 사는 소년들은 불편한 교통 때문에 힘들어했다. 연습이 끝나면 막차가 끊겼다. 해남보호관찰소 직원들은 퇴근을 뒤로 미루고 소년들을 데려다주었다. 부모 이혼과 가출 등의 불우한 환경 속에서 꿈과 희망이 꺾인 채 사는 소년들이 짠하기도 했다. 시골 특유의 정을 주고받으면서 어떤 소년은 보호관찰이 끝났는데도 그만두지 않고 공연에 참여했다.
해남보호관찰소 곽성채(47) 과장은 "우리가 보호하는 소년들은 시골에서 자라서인지 불우하지만 순박하다"면서 "순간의 실수로 보호관찰을 받게 된 소년들을 낙인찍기 보다는 위로하고 격려해주면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장애인 학생들을 위한 이번 재능기부 공연이 소년들에게 일생에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을 성황리에 마치자 배상혁 주무관은 달뜬 표정을 지었다. 배 주무관은 "연습에 빠지거나 게을리 한 아이들을 혼내기도 했는데 오늘 멋진 작품을 만들어 주어서 눈물 날 정도로 고맙다"면서 "매사에 자신이 없는 아이들이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스스로 의심했는데 멋지게 해냈다. 아이들이 스스로 해냈다는 자부심과 성취감을 갖게 된 것이 공연에서 거둔 가장 큰 성과"라고 기뻐했다.
"부모님 일을 도우면서 꿈을 펼치겠습니다!"공연을 마친 보호소년들의 표정이 밝았다. 자신의 디제잉에 즐거워하는 장애인 관객들의 모습에 들떠 무대에 잠시 올라 춤까지 추었던 디제이 광수, 그의 어깨에 걸쳐진 검정색 옷은 꿈의 날개처럼 보였다. 광수는 명사십리 해수욕장 인근 펜션과 섬마을 치킨집에서 배달 알바를 해 모은 돈으로 홍대 근처 DJ학원을 다닐 계획이다. 광수는 "홍대클럽을 휘저을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형민이는 기획사의 연습생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자신만의 음악의 길을 걷기 위해서란다. 오는 12월까지 6, 7곡의 힙합 곡을 만들어 자비 앨범을 만들 계획이란다. 앨범에는 섬소년의 꿈과 포부, 자신의 힘들었던 성장 이야기를 담을 것이라고 말했다. 형민이는 "택배를 하는 부모님을 도우면서 힙합가수의 꿈을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진도 출신 힙합가수의 등장을 기대한다.
공연을 밝힌 주인공은 혜영이다. 흥부 아내 역을 맡았던 혜영이는 무대를 여는 사회를 보면서 분위기를 띄우는 등 연습과 공연 내내 팀 분위기를 밝게 했다. 혜영이가 모델의 꿈을 이룰지는 알 수 없으나 밝은 표정을 잃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눈망울이 큰 소녀 현진이는 내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취업을 위해 고향 강진을 떠날 계획이다. 현진이가 건강한 모습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