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은 전 세계적인 이슈이다. 아직 체감상 그리 와 닿지 않지만, 4차 산업혁명이 바꿔놓을 미래는 지금까지의 변화와는 사뭇 다르다. 그 변화는 무척이나 급진적이고 파괴적이다.
이 책, <제2의 기계시대>는 현재까지의 기술발전 사례를 분석하면서 기술발전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을 심도 있게 분석한다. 무엇보다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본 기술발전은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다.
때문에 마치 경제 서적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고, 생소하고 어려운 용어들도 등장했지만 기술발전이 경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은 신선하고 흥미로운 사실이다.
저자에 의하면 증기기관의 출현과 산업혁명 촉발로 인간이 지닌 육체적 능력을 진보시킨 시기가 제1의 기계시대였다면, 디지털 기술이 정신적 능력을 대폭 강화시키는 시기가 제2의 기계 시대이다. 그러나 제2의 기계시대는 용어는 다르지만, 제4차 산업혁명과 일맥상통한다.
이 책은 크게 1부, 2부 3부로 나누어진다. 1부는 기술발전 사례들을 분석하고, 2부는 경제적 관점에서 기술발전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으며,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분석한다. 3부는 이런 제2의 기계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우선 기술발전의 가장 상징적인 예는 자율 주행 자동차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힘없이 스스로 자동차를 운전한다는 것은 미래에나 가능할 것 같은 기술에 불과했지만, 그것은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다. 자율 주행 자동차는 도로 위에서 수많은 판단을 즉각 내려야만 하고, 그것이 실패했을 경우에는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모라벡의 역설에 의하면 자율주행 자동차는 컴퓨터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모라벡의 역설은 인간에게 쉬운 일은 컴퓨터에게 어렵고, 반대로 인간에게 어려운 일은 컴퓨터에게 쉽다는 역설이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컴퓨터에게 인간과 같은 즉각 판단은 매우 어려운 부분이다. 하지만 무어의 법칙에 따르면 마이크로칩은 18개월마다 2배씩 성능이 향상되어왔다. 기술발전의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왔고 이 같은 발전에 따라 모라벡의 역설은 점차 극복되어가고 있다. 자율주행자동차는 모라벡의 역설이 깨지고 있다는 상징적인 예이다.
또 무어의 법칙에는 한계가 존재하지만, 인간의 창의력은 상상 이상이며 마이크로칩 개발자들은 새로운 방법으로 그 한계를 계속해서 극복해왔다. 따라서 기술발전은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발전하며 개선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알파고나 제퍼디!라는 퀴즈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왓슨, 별도의 프로그래밍 없이 산업 현장에서 간단하게 훈련시킬 수 있는 백스터 로봇, 또 알파고 열풍이 한창일 때 이슈가 되었던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빅독'은 이러한 기술 변화의 흐름을 증명해준다.
저자에 따르면 제2의 기계시대는 컴퓨터 연산 측면에서 기하급수적인 성장, 엄청나게 많은 양의 디지털 정보, 재조합 혁신이라는 특징으로 요약된다. 컴퓨터 연산의 기하급수적인 성장은 무어의 법칙을 근거로 칩 개발자들이 한계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극복해나가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컴퓨터의 성능은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된다.
또 원자로 이루어진 제품과 달리 비트로 이루어진 제품은 거의 즉시, 거의 비용 없이 복제하여 방 너머 또는 지구 반대편으로 보낼 수 있다. 이는 재생산의 한계비용을 제로에 육박하게 만들고, 소비자 잉여를 증대시킨다.
오늘날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의 온라인 콘텐츠 이용자들은 그것들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거의 무료로 얻는다. 게다가 이 콘텐츠의 이용자들은 콘텐츠 대부분을 소비하며 생산하므로 더 많은 소비자 잉여를 누릴 수 있다. 또 디지털 기술은 다른 산업과 융합될 수 있기 때문에 재조합되어 새로운 산업을 창출해낼 수 있다.
2부에서 다루는 경제적 관점은 풍요와 격차로 대표된다. 저자는 디지털 기술은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가치 있는 아이디어, 통찰, 혁신을 복제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결과 사회는 풍요로워지고 혁신가는 부유해지지만, 이전에 중요했던 유형의 노동들은 수요가 줄어들며 많은 이들의 소득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간 기술 발전이 가져온 생산성 향상 덕분에 노동자의 임금은 계속해서 상승해왔고, 그 결과 기술이 필연적으로 모든 사람을 돕는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중간임금은 생산성 향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소비자의 삶은 나아지고 엄청난 부가 창조되고 있지만, 새 제품이나 서비스에서 나오는 수익의 대부분을 소수의 사람들이 독차지하는 시대가 다가왔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경제학의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현실은 프로그램을 창안하고 갱신하는 비교적 소수의 설계자와 공학자가 수익을 독차지한다는 것이다.
또 교육 수준에 따라 일자리의 수요도 변해왔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기업들은 더 많은 교육을 받은 숙련노동자들을 원해왔고, 상대적으로 교육 수준이 낮은 이들은 공급과잉 상태에 직면했다. 또 이러한 노동자들은 숙련도가 낮은 일자리를 놓고 경쟁이 계속됨으로써 그 일을 하는 이들의 임금은 더욱 낮아진다는 것이다. 때문에 교육 수준이 가장 낮은 이들 대부분이 최저임금을 받고 있으므로 전반적인 소득 불평등을 증대시켰다는 것이다.
게다가 노동을 물적 자본(로봇)으로 대체하는 자본 편향적 기술 변화는 자본 소유자의 이익을 늘리고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소득분배율을 줄였다. 사회는 점차 승자독식 구조에 의해 소수에게만 부가 집중되고, 승자독식의 비중이 커질수록 소득 불평들은 더욱 커질 것이다. 중간층에게 돌아갈 돈이 최상위층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또 최상위 계층에서도 부는 1퍼센트의 슈퍼스타에게 집중된다. 결국 갈수록 부의 편중과 불평등의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인터넷 쇼핑을 할 때에도 우리는 이러한 승자독식을 경험한다. 인터넷 쇼핑에서 물건을 고를 때 우리는 상품평이나 평가 순위가 높은 상품을 우선적으로 구매하게 된다. 그 경쟁에서 밀리게 되면 판매자는 물건을 팔 기회를 상실한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서 디지털화는 세계적인 장벽을 무너뜨렸으며 승자독식의 구조는 더욱 강화된다.
이 승자독식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틈새시장 공략밖에는 없다. 그러나 그 역시 치열한 경쟁 속에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승자는 규모를 늘리고 시장을 지배하지만 다음 세대의 혁신가에게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을 읽을수록 디지털 시대에 있어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더 많은 풍요를 누릴 수 있고 소수의 인원으로도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지만, 풍요를 누리는 것은 일부에 불과할 뿐 대부분은 격차의 늪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게다가 로봇으로 인간을 대체하는 자본 편향적 기술 변화는 더욱 인간의 직업을 앗아가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결국 그것은 노동의 종말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의 관점은 지나치게 낙관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다.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기계와의 '공존'이다. 인간과의 체스 대결에서 '딥블루'가 승리한 이후 누구도 딥블루에게 이길수 없지만, 프리스타일 체스대회는 다르다는 것이다. 인간과 딥블루의 조합은 딥블루와 딥블루끼리 이루어진 조합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따라서 인간과 로봇이 공존할 길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이다.
컴퓨터는 답을 내놓는 기계로 남아있지만, 흥미로운 새로운 질문을 던지지는 못한다. 결국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은 컴퓨터가 침범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교육은 단순 암기 위주가 아니라 좀 더 인간의 창의성을 일깨울 수 있는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 저자에 따르면 암기식 교육은 과거 식민 사회에서 노예를 길들이고, 그 노예를 즉각 다른 행정에 투입하기 위한 교육 방식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제2의 기계시대를 극복할 방향에 대한 저자의 관점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저자는 공존을 이야기 하지만 원론적인 방법들은 저자가 설명한 공존의 의미에서 격차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공존은 가능할까? 이 책의 저자 역시도 기본소득이나 공유경제에 대해 짤막하게 언급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또 교육을 강화하고 신생기업 지원을 늘리고, 역 소득세 또는 아이디어 창출자에게 상금을 주는 방식 등이 이러한 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싶다.
저자는 제2의 기계시대는 인간과 기계가 공존의 길을 찾기만 한다면 더 큰 풍요를 누릴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지난 세월 동안 불평등의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고 악화되기만 해왔다. 과연 인류가 인류 전체를 위해 기계와 공존할 방법들을 찾아내고, 그것들을 제도화할지는 의문이다. 기업들이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인간과 기계의 공존의 길을 걸을지도 의문이다.
기술은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발전해왔지만, 그것이 얼마만큼의 변화를 불러일으킬지는 의문이다. 아직은 체감상 그리 와 닿지 않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다만, 자율 자동차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되어 시장에 등장한다면, 그 파급력은 진정한 4차 혁명으로 우리를 인도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기술발전을 지나치게 빠르게 받아들인다. 인간의 적응력은 상상이상이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우리 삶에 수많은 변화들을 가져왔지만, 그 변화들은 고작 2-3년 안에 정착되었고, 이제는 혁신이 아닌 일상이 되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이러한 변화의 바람은 둔감하게 와 닿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기술이 변한다고 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
모두가 기술발전에 대비해 컴퓨터 전문가가 될 수도 없다. 또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오며 사라질 위험 직업군에 속해있다고 해서 그 직업을 포기할 수도 없다. 격차가 증대된다지만 그것을 극복할 방법도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 속에서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그렇다고 기계를 거부했던 러다이트 운동처럼 기술발전을 포기할 수 있을까?
앞으로 펼쳐질 미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저자의 말처럼 기술은 운명이 아니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 손에 달려있다. 결국 선택은 우리 몫이다. 선택을 위해서는 이러한 변화와 경제 사회의 흐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리란 생각이 든다. 또 저자의 관점처럼 진정으로 격차를 줄이고 공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