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이라 표현하지 마십쇼."'비선실세' 최순실씨는 안하무인이었다.
최씨는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조의연)의 심리로 진행된 고영태씨의 9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고씨는 인천본부세관장 인사에 개입한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혐의로 기소돼 지난 8월 10일부터 형사재판을 받아왔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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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최씨는 고씨에게 세관장 인사를 지시했는지 등 사건과 관련된 증언을 하기 위해 법정에 나왔다. 그러나 최씨는 재판 내내 예민하게 반응하며 큰 목소리로 자신을 변호하기 바빴다. 재판부가 "물어보는 내용을 끝까지 듣고 답하라", "잘 생각하고 말씀하라"고 그를 제지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최씨는 "내일 이화여대 학사비리 항소심 선고가 있어 심리적으로 부담됐다. 오늘 굳이 나온 건 고영태 피고인이 알선수재, 마약사범 전과가 있는데 국회의원 33명이 탄원서를 냈다고 하니까 충격과 우려감이 들어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증인으로 나온 경위를 설명했다.
뇌물수수 등 다른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최씨는 자기방어에 급급했다. 그는 "세관장 김씨말고 청와대에 누구를 추천했나"라는 고씨의 변호인단인 김용민 변호사의 질문에 "말씀드릴 수 없다. 저는 공소사실에 관해서만 얘기하러 나왔다"며 "의혹 제기를 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씨가 국정농단 사태를 피해 2016년 9월, 독일로 떠났다는 의혹인 '도피성 출국'에 대해서도 "그걸 왜 묻나. 고영태, 김수현, 노승일, 류상영이 싸우는 것에 제가 샌드위치로 끼워진 게 재연되는 건데 일일이 답변하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최씨는 '국정농단'의 공범이라는 혐의를 받고 있음에도 "국정농단이라고 부르지 말라"며 예민한 모습을 보였다. 김 변호사가 "측근인 류상영씨가 독일에 있을 당시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된 일을 보고한 것 같은데 맞느냐"라고 묻자 최씨는 "국정농단이라고 표현하지 말라. 변호사님이 고씨를 얼마나 잘 아는지 모르겠지만 국정농단이라고 말하지 말라. 저도 당한 사람"이라고 화를 냈다.
"그냥 최서원이라고 불러라"김 변호사가 "달리 부를 표현이 없으니까 그렇게 이해하라"고 대응했으나 최씨는 "그렇게 이해하고 싶지 않다. 그냥 최서원(개명한 이름)이라고 불러라"라며 맞받아쳤다. 김 변호사는 '증인과 관련된 사건'으로 부르겠다고 정리했다.
최씨는 변호인단의 질문을 대놓고 비웃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5일 최씨에게 연설문을 유출한 사실에 대해 "류씨와 논의한 게 아니냐"고 묻자 최씨는 "류상영이 그런 급이 되느냐"며 코웃음을 친 뒤 "광범위한 정치적인 질문은 안 받겠다"고 맞섰다.
변호인단뿐 아니라 검사에게도 껄렁한 태도를 보였다. 조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았는지 등을 확인하는 기본적인 절차에도 최씨는 "마이크가 잘 안 들린다", "조사하는 과정에서 밝히겠다"며 재판 절차와 관계없는 말을 했다.
검사가 "고씨가 세관장으로 김아무개씨를 어떤 사람이라고 추천했나"라고 묻자 "고영태가 제가 대통령 뒤에서 일하고 있다는 약점을 잡았다. 이런 문제가 터질 걸 알았으면 그냥 그때 터뜨렸을 걸 후회한다"고 화를 냈다. 검사는 "제 질문을 들어보라.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해달라"고 지적했다.
최씨는 두 시간 동안 이어진 증인신문이 마무리되자 "한마디 하겠다"며 발언 기회를 얻었다. 그는 "딸의 출전과 체류 목적으로 독일에 갔는데 제가 없는 한 달 사이에 고영태 등이 기획해 제가 국정농단으로 몰렸다"며 "제가 몸이 아프고, 선고를 앞두고 있는 데도 증언을 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14일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입학과 학사 특혜에 가담한 혐의로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으며 국정농단 공범으로 기소돼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