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1954년생 동갑내기였다. 1991년 광주에서 처음 만났다. 하지만 그 만남이 두 사람의 운명을 바꿨다. 한 사람은 '호남 최대 조폭조직(국제PJ파)의 두목'으로 찍혔고, 다른 한 사람은 '모래시계 검사'가 됐다.
여운환(63) 아름다운컨벤션 대표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에 관한 이야기다.
지난 10월 25일과 26일 광주에서 만난 여 대표는 정말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기자가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자기 얘기를 풀어놨다. 소위 '조폭'으로 생활하다 지난 1974년 한 달 간 구속된 적은 있지만, 1991년 광주에서 홍준표 대표를 만났을 당시에는 "깡패가 아니었다"라고 항변했다. 그는 "홍준표가 날조된 영웅담을 만들어냈다"라고 주장했다.
법원(1·2·3심)도 판결문에서 그를 '조폭 두목'이 아니라 "자금책 겸 두목의 고문급 간부"라고 적시했다. 최소한 홍 대표가 기소했던 '조폭 두목' 혐의는 무죄였던 셈이다. 하지만 당시 세상은 검찰의 '기소 내용'에만 관심을 기울였고, 법원의 '판결 내용'에는 관심이 없었다.
여 대표는 "홍준표는 내 사건을 엄청난 업적으로 만들어서 서울에 입성하고, 서울에 입성해서 나한테 했던 그대로 해서 박철언 사건(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해 승승장구했다"라며 "게다가 정치인으로서 당 대표를 두 번씩이나 하고 대선후보까지 됐지만, 나와 우리 가족은 피눈물이 났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나는 이후 20여년 간 '조폭 두목'으로 사찰을 받았다"라며 "경찰이 계속 내 동향을 체크해서 동향보고서를 썼다"라고 말했다.
지난 1991년 홍준표 당시 검사를 만난 이후 여 대표의 삶은 '모래시계에 갇힌 시간'이었다. '모래시계 검사'가 찍은 '조폭 두목'이라는 낙인이 지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이후 '김대중 정부 최대 스캔들'이라는 이용호 게이트(2001년)에도 휘말렸다. 그는 "이용호 게이트는 나한테 그다지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이용호 게이트는 홍준표로부터 시작된 내 사건(국제PJ파 사건)의 연장선상에서 이어진 고통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모래시계 검사는 날조된 영웅담"
지난 1995년 1월 9일부터 2월 16일까지 드라마 <모래시계>가 SBS에서 총 24부작으로 방영됐다. 1970년부터 1990년대까지의 격동기 한국 현대사를 강우석(서울중앙지검 검사, 박상원 분), 박태수(광주 박성범파의 중간보스, 최민수 분), 윤혜린(카지노 대부의 외동딸, 고현정 분) 등을 통해 묘사한 드라마였다. 평균 시청률이 50.8%를 기록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드라마를 보기 위해 일찍 귀가하는 현상까지 생겨서 모래시계를 '귀가시계'라고 부를 정도였다.
드라마 <모래시계>와 함께 주가가 올라간 이가 홍준표 대표였다. 지난 1991년과 1992년 국제PJ파 사건 수사의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에 재입성한 홍 대표는 1993년 카지노 대부인 정덕진 형제와 '6공의 황태자' 박철언 의원 등을 수사한 주임검사였다. 이러한 경력으로 인해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홍 대표도 '모래시계 검사'로 불렸고, 이는 1996년 정치권 진출의 발판이 됐다. 여 대표가 출소할 무렵 홍 대표는 국회의원(민자당의 후신인 신한국당)이 돼 있었다.
여 대표는 "드라마 <모래시계>에 나온 강우석 검사의 캐릭터는 홍준표와는 전혀 맞지 않다"라며 "홍준표는 강우석 검사보다는 정성모가 연기한 종도와 똑같은 캐릭터"라고 꼬집었다. '종도'는 박태수의 친구이자 박성범파의 조직원으로, 자기의 이익을 위해 친구와 두목을 배신하는 비열한 인물로 나온다.
여 대표는 "모래시계 검사라는 타이틀은 홍준표에게 무공훈장 몇 개와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홍준표의 영달에 도움을 줬다"라며 "하지만 모래시계 검사는 완전히 조작되고 날조된 영웅담일 뿐이고, 그렇게 조작되고 날조된 영웅담을 통해 여당·야당 대표, 경남도지사, 대선후보 등으로 승승장구했다"라고 지적했다.
"대한민국이 알고 있던 홍준표는 가짜다"라고 목소리를 높인 여 대표는 "홀가분하게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홍준표를 용서하는 게 이기는 거라 생각하기도 했고, 홍준표한테 진심 어린 사과라도 받을 수 있다면 나를 위해서라도 홍준표와 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라며 "하지만 이제는 늦었다, 홍준표를 용서하려야 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홍 대표 측 "불의한 깡패세력을 소통한 사건"<오마이뉴스>는 여 대표의 인터뷰 내용과 관련해 홍 대표의 해명과 반론을 듣고자 수차례 전화를 했고, '법원도 국제PJ파 두목이 아니라고 판결했다'와 '모래시계 검사는 날조된 영웅담이다' 등 여 대표의 주장과 관련한 질문지를 문자로 보냈지만 12일 현재까지 답하지 않았다.
다만 홍 대표의 한 측근인사는 "개인 의견이 있을 수 있나?"라며 "홍 대표가 검사 시절에 있었던 사건이기 때문에 그것은 국가에 물어봐야지 홍 대표에게 물어보는 것은 온당치 않다"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그것은 검찰(검사)이 불의한 깡패세력을 소탕한 사건"이라며 "개인감정으로 그렇게 한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여운환 대표가) 호남사람이어서 그랬다고 얘기하는데 말도 안된다"라며 "그때 홍 대표가 깡패들을 잡아넣자 광주상인연합회에서 고맙다고 했다, 깡패 소탕을 통해 시민을 보호한 의로운 검사다"라고 주장했다.
이틀에 걸쳐 총 7시간 인터뷰, 20회에 걸쳐 연재한다여 대표는 광주에서 이틀간 총 7시간에 걸쳐 자신과 홍준표 대표 사이에 있었던 '사나웠던 운명'을 숨가쁘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오마이뉴스>는 앞으로 18회에 걸쳐 그 '사나웠던 운명의 증언'을 풀 스토리로 연재한다.
한편 여 대표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가 끝난 뒤 "한 검사의 비뚤어진 영웅심에 아직도 폭력조직의 두목이라는 억울한 누명 속에 살고 있다"라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