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슈퍼 앞에는 구두수선점이 있다. 한 6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는 꽤 무뚝뚝해 보이지만 일하는 품새는 아직까지는 날렵해 보인다. 아저씨에게는 대략 70대 중반의 할아버지 단짝이 있다. 그분은 무엇을 하시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그저 매일 출근하시는 것으로 보아 근방 건물 관리를 하시는 분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항상 일찍 나오시는 할아버지는 건물 앞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서 구둣방 아저씨를 기다리신다. 구둣방 앞을 지날 때마다 혹시 구둣방 아저씨가 나이든 할아버지를 구박하는 건 아닌지 관찰하곤 했는데, 두 분이 자주 식사하시는 모습을 보고 그 생각을 접었다.
부슬비가 내리는 어느 날 아침, 두 분이 작은 박스를 테이블 삼아 깔고 컵라면과 찬밥, 그리고 깻잎 반찬에 아침을 먹고 계셨다. 두 분의 단출한 아침 밥상이 초라하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밥을 먹을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지나가면서 깍두기 반찬에 식사하시는 것도, 짜장면을 시켜서 드시는 모습도 봤다. 어느 날에는 모닝 다과를 하기도 하시고(과일을 깎는 건 늘 구두수선 아저씨다), 커피 타임을 갖기도 하신다.
분명 운치 있고 다정한 풍경인데, 실상 두 분은 아무 말 없이 꾸역꾸역 먹는 것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아주 간혹 봤을 뿐, 각자 일을 하거나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구경하신다.
두 분이 '누가 누가 무뚝뚝한가' 경쟁이라도 하듯 말이 없어 보이지만, 어쩐지 그분들 나름의 끈끈하고 편안하고 익숙한 우정이 느껴졌다. 오래 두 분을 감시하듯 지켜보면서 참 다행이다 했다.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어서. 하나가 아니라 둘이어서.
구둣방 아저씨와 할아버지의 '박스 밥상'
나는 '혼밥'이라는 말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혼밥을 자주 했다. 혼자 취재를 다니다 보면 혼밥을 해야 할 때가 많아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비혼으로 독립을 하고 나서는 더 했다. 덕분에 남들보다 일찍 혼밥에 익숙해졌는데, 불쌍해 보일까봐 혹은 어색해서 혼밥을 못한다는 사람도 꽤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지금은 시대가 변해서 혼밥과 혼술이 대세라고 한다. 통계청의 '2016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1인가구가 2015년에 이어 2년째 우리나라 가구원 구성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제 우리나라의 대표 가구원수가 된 셈이다.
자연히 혼밥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1인 가구가 아니어도 경제적 이유 때문에 혼자 먹는 경우도 많다. 나도 불편한 사람과 먹느니 혼자 먹는 게 편하고, 시간이나 돈을 아껴야 할 땐 주저하지 않고 혼밥을 택한다.
그런데 구둣방 아저씨와 정체 모를 할아버지 듀오를 보면서 왠지 부러웠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편안하게 느껴지는 그 박스 밥상이. 함께 밥을 먹는 친구가.
'어쩌면 나는 경제성, 효용성이라는 것에 메어서 혼자 하는 것에 너무 많은 부분을 허용하는 것은 아닐까.'이런 의심이 들기 전까지 나는 혼자 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꽤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그런데 필요나 편의에 의해 혼자를 선택하다 보니 함께하는 것이 점점 부담스러워져 버렸다. 조금 불편하다 싶으면 혼자 먹고, 그러면서 또 외롭다고 하는 모순의 사이클을 계속 쳇바퀴처럼 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다 독거노인 되는 거 아닌가'마흔 중반을 넘으면서 내가 쓸 수 있는 에너지 안에서 사람을 골라 만나게 되고, 친한 사람들은 점점 줄어드는 요즘, 심심하고 외로움을 느끼는 주기가 점점 빨라진다. 친한 사람들이 결혼하면서 조금씩 멀어지기도 했고, 새롭게 관계를 맺는 건 버거워지다 보니 관계의 폭이 엄청나게 좁아졌다.
'절친'이라 불렀던 사람들이 지우개로 지우듯 사라졌고 나도 누군가들한테 지워졌다. 명절 연휴나 생일, 징검다리 연휴 등 약속 잡기 바빴던 전성시대가 저물면서 점점 혼자 지내는 시간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사실 난 혼자도 잘 노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고 '어쩌다'여야 달콤하지 일상이 되면 말이 달라진다. 텅 빈 시간을 혼자 메우는 건 버거우리만치 심심하고 외로웠다. 20, 30대 때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다 아무도 찾지 않는 독거노인이 되는 거 아닌가?'그런 고민이 돼서 한 수녀님께 "점점 친한 사람들은 줄어들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는 부담스러워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분의 대답은 간단했다.
"같이 밥을 먹으세요."밥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끈이 되어준다. 같이 할수록, 많이 나눌수록 더 단단해지는 끈. 생각해 보면, 내가 힘들 때에 가장 힘이 되는 말은 "밥 먹자"는 말이었다.
'힘들 때 더 잘 먹어야 한다'면서 맛있는 식당으로 데려가서 천천히 오래 많이 먹으라고 했던 선배. 당신이 먹어보고 맛있는 것은 내 접시에 올려주신 선생님. 배가 든든해야 뱃심이 생겨서 일도 잘한다며 숟가락 위에 소고기를 얹어 주던 친구.
배 속 두둑해서 돌아오는 길이면, 신기하게도 그렇게 힘들게만 느껴지던 삶이 견딜만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혼자가 아니어서 좋은 삶이다'라고.
타인은 때로 부담과 미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혼자가 편하고 혼자 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혼자'는 '함께'와 균형을 이룰 때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순간,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하는 영혼 없는 인사말 말고 진짜 "밥 먹자"는 말을 한 지가 오래 되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함께 밥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핸드폰에 적힌 이름과 번호를 보니 적지 않다. 오늘은 그 중 가장 반갑게 느껴지는 누군가에게 연락을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