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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12월 발생한 충북 제천화재는 무려 29명의 사망자와 29명의 부상자를 낸 어처구니없는 참사로 기록됐다.

왜 더 많은 사람을 구하지 못했느냐는 안타까움은 곧바로 의구심으로 바뀌었고, 결국 소방의 초동대응이 잘못되지 않았는가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그 와중에 한 소방관이 무전기를 들고 어슬렁거리며 걸어 다녔다고 보도를 낸 한 방송국의 공식사과까지 이어지면서 이를 지켜 본 사람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우리는 소위 '재난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재난현장에는 사람을 구하기 위한 소방대원들과 사고를 보도하기 위한 언론이 공생한다. 그런 이유로 재난의 중심에 서 있는 소방대원들에게 언론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2016년 12월 오클랜드 소방서 소방서장이 기자들에게 창고화재 경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San Francisco Chronicle)
 2016년 12월 오클랜드 소방서 소방서장이 기자들에게 창고화재 경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San Francisco Chronicle)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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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매체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사고현장은 그야말로 정부와 시민들에게 생생한 교육의 장(場)이 된다. 언론과의 적극적인 협업은 정부부처와 시민들의 협조를 이끌어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방대원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애로사항과 문제점들을 제시하는 것도 가능하게 해 준다. 메시지가 효과적으로 전달된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재난과 관련해서는 침묵이 결코 금이 될 수 없다.

미디어의 파급력이 전 세계를 하루 생활권으로 묶어버린 현 시점에서 소방관들 또한 언론의 기능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스킬이 요구된다. 하지만 '양날의 검'과 같은 미디어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평상시 자주 소통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미국의 사례는 눈여겨 볼 만하다. 미국 소방에서는 언론인들이 직접 훈련에 참여해서 소방의 메커니즘을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미디어 아카데미(Media Academy)'를 운영하고 있다. 아카데미는 소방과 언론을 이어주는 소통창구인 셈이다.

 지난 해 6월 개최된 텍사스 주 엘 파소 소방서(El Paso Fire Department)의 '제12회 미디어 아카데미' 훈련 장면. 이 아카데미는 1주일 과정으로 진행되었으며 지난해에는 11명의 저널리스트가 참여했다. (사진: El Paso Fire Department)
 지난 해 6월 개최된 텍사스 주 엘 파소 소방서(El Paso Fire Department)의 '제12회 미디어 아카데미' 훈련 장면. 이 아카데미는 1주일 과정으로 진행되었으며 지난해에는 11명의 저널리스트가 참여했다. (사진: El Paso Fire Department)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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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을 수료한 언론인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소방대원들과 함께 훈련하면서 재난현장의 지휘체계를 배우고 소방대원들의 행동 동선과 초동대응 매뉴얼에 대해서도 한층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언론인들이 아카데미에 참여하기를 바란다는 한 저널리스트의 참가후기는 재난을 더 깊이 이해하고 바르게 전달하려는 언론인들의 갈증으로도 해석된다. 

미국 소방의 사례는 분명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론을 통해 재난상황에 대한 정확한 보도가 이루어지고 소방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담기 위해서는 미국처럼 견고한 연결고리가 마련돼야 한다. 현장 지휘관을 비롯한 모든 소방관들이 언론의 역할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이 선행되어야 하며 소방청을 비롯한 산하 소방본부에 기자들과의 소통공간도 필요하다. 기사는 잘 써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양질의 기사를 쓸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것이다.  

소방의 정체성을 제대로 전달하면서도 재난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파트너 중 하나가 바로 언론이다. 언론을 통해 현장에서 잘한 부분은 적극 알리고 또 미흡했던 모습은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향후 개선하겠다는 다짐을 통해 사람을 살리는 전문가의 모습으로 시민들 앞에 당당하게 서 주길 당부한다.


#이건 소방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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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생. Columbia Southern Univ. 산업안전보건학 석사.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소방칼럼니스트. <미국소방 연구보고서>, <이건의 재미있는 미국소방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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