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에 비례해 현명함이 저절로 생긴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 5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늘 갈등하고 잘못하고 후회하고 배우며 살아갑니다. 오늘 실수하고 내일은 그만큼 지혜가 쌓이는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중년의 좌충우돌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
2017년 5월 10일. 내 생애 첫 백일장에 도전한 날이다. 48세 주부. '늦은 나이는 없다'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참가했다. 나는 안산에 살고 있고, 백일장은 충북 제천에 위치한 세명대에서 열렸다. 물론 경기나 서울권에서 치러지는 백일장도 있으나 거의 학생들이 대상이고 일반인을 받아주는 곳은 많지 않다.
아침 10시부터 시작이라고 하니 나는 가족들이 먹을 밥을 새벽부터 지어놓고 6시 반에 출발했다. 내비게이션 상으로는 두어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이다. 교내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며 차분히 기다리려는 계획으로 일찍 집을 나섰다.
날이 흐리더니 비가 왔다. 치악산 부근을 통과할 무렵엔 안개까지 잔뜩 끼어 한치 앞을 볼 수 없다. 뭔가 불길했지만 애써 무시하며 '안개꽃길이다' 억지로 세뇌하며 조심조심 운전을 했다. 차들이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나도 기어서 가다 보니 도착 시간 9시 50분. 시험장을 찾아 여기저기 뛰다가 간신히 도착해 원고지를 받았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얼마나 기다리던 순간이었는지 원고지를 받자 감격까지 덩달아 차오른다.
안갯길 뚫고 3시간 걸려 시험장 도착
오늘의 백일장 주제는 '먼지'이다. '먼지'에 대한 단상들을 떠올려보았다. 황사도 생각나고 미세먼지도 떠오르며 '먼지가 되어'라는 노래도 연상된다. 다들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에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글이 될 것 같아 걱정이다.
작년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화장한 일이 생각이 났다. 화장 후 먼지가 되어버린 그녀.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그녀는 밤 사이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생을 달리했다. 바로 전날까지도 얘기하고 웃고 밥을 먹었는데 이런 일이 생기자 얼마나 황망했던지.
선하기만 했던 그녀가 편안한 곳으로 가셨기를 빌며 그녀가 들어있는 항아리를 가슴에 품고 그녀의 등을 껴안듯이 항아리를 안고 토닥인 기억이 떠오르자 그녀에 관한 이런저런 단상들이 꼬리를 문다.
눈앞에서 가족이 한줌의 재로 변하는 걸 본다는 건 너무나 강력한 것이어서 그 순간에는 모든 걸 다 내려놓게 된다. 자식에 대한 기대랄지, 형제간의 서운함이랄지, 원망 같은. 이런 모든 게 사소하게 느껴지고 존재 자체로도 얼마나 축복인지를 절감한다. 비록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삶의 관성에 의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지지고 볶는 일상이 여전해 지지만.
한줌의 재가 뿌려지고 먼지가 되어 흩어지는 걸 보며, 이래서 먼지 하나에도 우주가 깃든다는 말이 나왔나 보다 생각했다. 누군가의 일생이 담긴 먼지.
'무'인 상태로 왔다가 먼지로 사라지는 일생에 관하여 나름 심도 깊게(?) 적어 내려갔다. 하지만 시간 안배에 실패한 나는, 시간 안에 원고지에 적어 내는 게 너무 바빴다. 손글씨를 써본 지도 백만 년 만이라서 글씨도 삐뚤빼뚤.
마음은 급하고 그럴수록 손가락이 구부러져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내용은 인생을 달관한 자의 글인데 글씨는 초등학생이 발로 쓴 거 같다. 이런 몹쓸 부조화. 필체가 좋아야 내용이 별로라도 한번쯤 더 봐줄 것 같은데 암호 수준의 글씨는 내가 봐도 눈이 피곤하고 해독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한번 읽어볼 틈도 없이 원고를 냈다.
이 나이에 백일장에 나온 것은 창피한 일일까?심사를 기다리는 3시간 동안 한수산 작가님과 김별아 작가님의 북 콘서트가 있었다. 한수산 작가님은 <군함도>를 쓰게 된 배경과 과정을 설명하던 중 군함도 생존자로부터 들은 사실과 그분의 근황을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듣는 나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자료수집 했던 시간을 제외하고도 그 책을 쓰는 데만 꼬박 2년이 걸렸다고 했다. 그동안 단 한 번의 외출만 했을 뿐.
김별아 작가님은 글은 쓰고 싶고, 아이들은 어리고, 그래서 아이를 업고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고 책을 읽고 글을 썼단다. 아이를 키우는 일만으로도 벅찬데 장편소설을 쓰다니. 그냥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글을 쓰는 과정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하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발표의 시간이 왔다. 심사위원장이 나와 발표에 앞서 한마디를 한다.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이 나왔단다. 내용은 상당히 좋은 글이지만 글씨가 읽기 어려워 탈락한 글도 있단다. 이건 내 이야기여도 문제, 아니어도 문제다. 대상으로 다가할수록 두근거리는 맘으로 끝까지 기다렸지만 결과는 탈락.
허탈한 마음으로 시험장을 빠져 나오는데 방송국에서 백일장 취재를 나왔다. 대형 카메라가 내 코앞에 멈추더니 잠깐 인터뷰를 하겠단다. 머피의 법칙이라더니, 하필 오늘. 새벽에 나오느라 얼굴에 뭘 찍어 바를 시간도 없이 머리도 못 감고 나왔는데.
쪼그라드는 마음을 간신히 추스르고 당당한 척 카메라를 마주한 순간 질문이 날아왔다.
"어린 학생들과 경쟁한 기분이 어떻습니까?" 헐, 이런 질문이라니. 너무 당황스러워 말문이 막혔지만 차분히 정신을 가다듬고 또박또박 대답했다.
"어린 학생들과 경쟁하러 온 거 아니고요. 평생 제 꿈에 도전해 보려고 왔습니다." 기자는 잘 알았다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뭔가 씁쓸했다. 이 나이에 백일장에 나온 일은 창피한 일일까? 노욕인가? 일반부 백일장의 의미는 대학생이나 작가 지망생을 위한 거였는데 내가 눈치 없이 끼어들었다는 뜻일까. 하긴 지원자의 90프로 정도가 대학생들이었으니... 탈락도 서러운데 마음이 천근만근이다.
꿈이 뭐라고이럴 때 가라앉은 기분을 풀 수 있는 건 친구의 위로가 최고. 친구에게 전화 걸어 자초지종을 말했다. 역시 내 친구는 폭풍 흥분으로 그 기자를 욕해주고 박완서님도 마흔에 문단에 데뷔했음을 강조했다. 감히 나 따위와 박완서님을 비교하다니. 괜스레 그 분께 미안한 맘이 든다.
하지만 효과는 백점. 한기 돌던 마음이 펴지며 따수와졌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자 의존적인 동물. 이렇게 의존할 곳이 있는 나는 탈락에도 불구하고 도전에의 기쁨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다.
상금 백만 원을 기대하고 있던 가족들은 탈락한 나를 위해 삼겹살을 구웠다. 뭐가 좋은지 계속 키득거린다. 나는 탈락한 이유가 글 때문이 아니라 시간 때문임을 구구절절 설명했고 다들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히 그러셨겠지요"라며 서로 눈짓을 한다. 인간미 떨어지는 인간들.
자려고 누었는데 자꾸 웃음이 난다. 꿈이 뭐라고 그걸 쫓아 안개를 뚫고 그 멀리까지 간 일. 내 대답에 당황하던 기자의 얼굴. 감응이 1도 안된 나의 변명에 난감한 가족들의 표정. 인생 멀리서 보면 코미디라더니 딱 내가 그 코미디의 주인공이다. 그래도 나는 도전을 멈추지 않을 테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