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검사, 최영미 시인 등을 통해 다시 점화된 '미투'(#MeToo) 운동에서 당사자들과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개인이지만 특정한 개인이 아닙니다. 미투 운동은 법조계나 문단계와 같은 '계(界)'라고 분류하는 특정한 세계의 구성원들에게만 해당하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가 속한 시간과 공간, 즉 세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원로시인의 성추행을 고발한 최영미 시인의 '괴물'을 게재한 '황해문화' 전성원(49) 편집장은 "미투가 '구체적인 실명 주체(개인)'를 호명해내어 비판하기 위한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며 특히 "우리 사회 가장 낮은 곳 또는 가장 아픈 곳에 거처하는 이들의 삶을 개선하고 일상이 민주화되는 계기로서의 의미를 반추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이어 "최영미의 '괴물'이란 시가 실렸던 황해문화 지난해 겨울호(97호)는 '페미니즘과 젠더'라는, 아직까지는 우리 사회에서 매우 낯선 주제를 놓고 2016년부터 토론하면서 변화지점과 이슈들을 살피는 등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준비한 끝에 창출한 결과물이었다"고 강조했다.
전 편집장은 특히 "2017년 촛불로 그동안 우리 사회가 미처 채우지 못한 '일상의 민주주의'를 채울 수 있는, 또는 싸울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다"며 "페미니즘은 분단모순과 계급모순이란 거대한 이슈에 묻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삶 전반에서 벌어지는 비민주주의, 권위주의 행태와 싸우는 투쟁이다"라고 설명했다. 미투 운동 또한 이러한 과정이라는 해석이다.
전 편집장은 1996년 5월부터 황해문화 편집장을 맡아 일해오고 있으며, 여러 권의 저서를 낸 '글쟁이'이기도 하다. 그는 최근 <길위의 독서>라는 제목의 책을 세상에 내놓기도 했다.
<길위의 독서>는 그가 '바람구두'라는 닉네임으로 쓴 500여 편이 넘는 서평 중에서 특별히 그가 걸어왔던 길 위의 삶을 반추하게 하는 서평만을 따로 모아 묶은 책이다. 그만의 울림통을 관통한 문장들이 조용한 입소문을 타고 있다.
본인의 저서를 통해서도 '길 위의 삶'을 강조하고 있는 전 편집장은 1970년 서울 통일로 연변 구파발에서 태어났다.
그는 18살이 되던 해인 1987년 서울지역고등학생운동연합을 결성했다. 그해 겨울 공정한 대통령선거와 교육민주화를 주장하기 위해 명동성당에서 벌어진 농성시위에 참여하면서부터 길(道) 위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고 회고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년간 막노동자로 전국을 떠돌던 그는 1991년 천세용 분신사건을 접하고 이듬해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진학한다. 졸업 후 광고기획사에 입사해 한보그룹과 삼성그룹 광고제작 일을 시작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수서비리사건으로 한보그룹이 문을 닫게 되면서 삶 전반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된다. 결국 사표를 던지고 길 위에 멈춰서서 백수로 방황하던 중 서울예대 선배 추천으로 우연하게, 아니 어쩌면 필연적으로 황해문화와의 인연이 시작된다.
이렇게 해서 27살 무렵부터 황해문화와 인연이 닿은 전 편집장은 22년째 황해문화와 함께 인천이라는 길 위에서 오늘도 묵묵하게 걷고 있다.
그는 이번 사건으로 덩달아 유명세를 타고 있는 '황해문화'에 대한 악플 등 편집장으로서 겪어야 했던 속상한 점도 털어놨다.
그는 황해문화가 우리 사회문제에 여태까지 눈감고 있다가 사회분위기에 편승한 이슈를 돌출해 마치 이삭줍기하는 것처럼 바라보는 시각, 또는 진정성이 빠진 모양새로 '용기'와 '기획력' 등을 묻는 것에 대해서는 "의미 없는 일이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황해문화는 이미 아무도 게재하지 않겠다고 해서 기사화되기도 했던 작가 김성동 선생의 소설을 누구보다 먼저 게재했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사람들이 직접 말할 수 있도록 하는 '대한민국의 상처와 희망-황해문화50호가 이땅의 50인에게 묻는다-'와 같이 계간지로서는 실행하기 어려운 파격적인 기획을 두 차례나 한 바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는 인천에 대해서는 "황해문화를 끌어안고 인천이라는 길(道) 위에서 한 발 한 발 걷다보니 어느덧 지금까지의 생애 절반 가까이를 살았다"며 "모든 물을 가리지 않고 끌어안는 바다처럼 각지에서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모인 군상이 다양한 삶을 일구는 데 거리낌 없었던 인천은 그 자체가 정체성이자 경쟁력이다"는 말로 깊은 애정을 표현했다.
전 편집장은 성공회대학교 문화연구 전공 석·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겸임교수로 있다. 특히 그가 웹상에 개설·운영하고 있는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는 문학을 지망하지 않더라고 문학과 독서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듣거나 보았을 정도로 유명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가시는 <인천뉴스>에 실린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