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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제단
추모제단 ⓒ 김성훈

겨울 가뭄을 해갈할 빗줄기가 해남군청 앞 수성송에 떨어지고 있었다. 겨울바람의 마지막 몸부림에 실려 온 빗방울을 사람들은 사용한 우산을 접으며 톡톡 털어냈다. 군청 옆에 있는 해남문화예술회관에서는 삼삼오오 모여드는 사람들의 후줄근한 비 냄새와 반가움이 어우러져 있었다.

삼일절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마련한 제 12회 해남 항일운동 순국열사 애국지사 합동추모제가 다목적실에서 2월 28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열렸다.

 향 촛대에 향을 사르는 추모사업회 오길록 회장
향 촛대에 향을 사르는 추모사업회 오길록 회장 ⓒ 김성훈

추모사업회 오길록 회장이 향 촛대에 향을 사르는 것으로 이날의 행사는 시작되었다.

'기미년 삼월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 독립만세'라는 노랫말이 해남군립합창단의 숨에서 터져 나왔고, 400여명의 사람들은 의자에 일어나 태극기를 흔들며 따라서 노래를 불렀다. 정인보 작사, 박태현 작곡의 삼일절 노래는 무덤도 없이 세상을 하직한 의인들에게 바치는 헌정 곡이었다.

 태극기를 흔들며 삼일절 노래, 상록수 등을 따라 부르는 사람들
태극기를 흔들며 삼일절 노래, 상록수 등을 따라 부르는 사람들 ⓒ 김성훈

태극기를 흔들어야 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의 후예들이 다시 일어나 태극기 물결을 이루었다. 때론 엇박자로, 때론 깊은 한숨으로, 359명의 영령을 위로하였다.

손에서, 손으로 흔들던 태극기의 물결이 가라앉자, 1593년 임진왜란 때부터 1934년 전남운동협의회 사건에 이르기까지, 강제연행, 고문, 감시, 미행, 연좌제 등으로 희생된 아픔을 추모하는 노래와 춤이 내빈을 맞았다.

 국악 판소리 명창 김연화
국악 판소리 명창 김연화 ⓒ 김성훈

김연화씨가 판소리로 빚어낸 추모 노래였다. 단아한 자태로 뻗어나가는 손끝에 펄럭이는 하얀 천, 그것은 온전한 순결, 희생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었다. 백의(白衣)에 대한 기억이었다. 부모형제, 처자식, 고향산천을 향한 그리움을 남기고 아스라진 선조들을 한명씩 이름을 불러주는 의식이었다. 마치 김소월 시인의 초혼처럼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할 사랑하던 사람들의 이름이었다.

 한국무용가 김영자 씨
한국무용가 김영자 씨 ⓒ 김성훈

김영자 씨의 한국무용은 남편을 잃은 부인의 형상으로, 자식을 잃고 슬퍼서 우는 어머니의 형상으로 손가락으로, 표정으로 그리고 몸으로 표현했다.

1919년 기미만세 독립운동 만세시위가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타올랐을 때, 해남읍과 우수영 등지에는 500~1000명 가량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10여차례 이상 전개된 만세운동 속에서 해남출신 지강 양한묵 선생은 변절 대신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을 선택함으로써 민족대표 33인의 명예를 지켰다.

 영령들에게 헌시를하는 장재규 부회장
영령들에게 헌시를하는 장재규 부회장 ⓒ 김성훈

김규수씨 등 74명은 해남장날과 우수영장날에 체포되어 태형부터 최고 3년형을 받고 투옥되었다. 일제에 항거하다 해방되기까지 30여년의 세월은 온갖 고초와 감시 속에 삶을 근근히 버틸 수밖에 없었다. 29명의 서훈은 이루어졌지만, 아직 마흔 다섯분은 국가 유공자로 지정되지 못했다. 특히 송봉해 선생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의 전 정권이 민족의 정통성이 없다하여 독립 유공자 표창을 받지 않겠다고 사양하다가 돌아가신 지 21년만에 김대중 정부로부터 1998년에 표창을 받았다.

오길록 추모사업회 회장은 세차례에 걸친 지자체장인 군수의 부도덕한 공백에 안타까움을 느낀다면서, 추모 사업회는 전국의 모든 언론사, 도서관, 보훈처, 동학혁명진상위원회, 천안독립기념관과 조선총독부 판결문, 해남군사등의 자료에서 358명의 공식 희생자 명단을 발굴하였고 2013년에 우슬체육관 남쪽 해남광장에 국비, 도비, 군비의 지원과 본회 임원 26명, 해남군민들의 성금으로 해남 항일운동추모비만 건립했다고 사업경과보고를 했다.

송희성 유족대표는 '어른인 우리들은 우리 자손들에게 부끄러운 조국을 대 물림 해선 안된다, 선열님들의 넋을 위로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아직도 완전한 자주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조국 통일을 이루지 못한 죄, 휴전상태인 민족끼리의 총 뿌리를 겨누는 현실을 자각해야 한다, 통일을 위한 과업이 주어졌다'라고 말하며 답사를 하기도 했다.

 오길록 회장으로부터 공로패를 수여받는 전 대흥사 주지 몽산 스님
오길록 회장으로부터 공로패를 수여받는 전 대흥사 주지 몽산 스님 ⓒ 김성훈

한편, 이날의 추모행사에서는 전 대흥사 주지인 몽산 스님에게 공로패가 주어지기도 했다. 몽산 스님은 2007년 대흥사 주지 스님으로 재직하면서 해남의 항일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근현대사에 권위자를 초빙하여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고, 추모사업회 결성과 합동 추모제 개최를 위한 지원을해 주었다. 이에 추모 사업회측은 그에 관한 공로에 감사를 전한다고 했다. 

대흥사 스님들의 추모제 집례가 있은 후, 유족 및 참례자 희망자들의 헌화 분향으로 행사의 마지막 시간을 맺었다.

추모 사업회측은 이후에 해남항일운동 순국열사, 애국지사 추모비 참배를 해남광장에서 가지고 28일과 3월 1일(1박2일) 일정으로, 희망자 40여명에 한해 항일 독립운동 선진지인 완도 소안도, 신지도, 고금도 항일유적지를 둘러볼 예정임을 알렸다.   


#해남합동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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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로컬문화콘텐츠 기획자 해남군사회적공동체지원센터 주민자치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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