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사 보강: 4월 16일 오후 2시 35분]

우리는 대학입시 개선안이 발표될 때마다 습관적으로 기대를 갖는다. 그러나 혁신안이 과연 나올까 하는 의구심에 이어 실망감도 습관적으로 따라다닌 지 오래다. 우리의 대입제도는 공정성을 기하려다 전인교육에서 멀어지고, 전인교육을 하려다가 공정성에서 멀어지는 줄타기를 반복하고 있다. 줄의 한쪽에 촘촘한 내신 및 수능의 9등급 상대평가제를 통한 '공정성'이 자리하고 있다면, 반대편에 내신 및 수능의 절대평가를 통한 '전인교육'의 열망이 자리하고 있다. 문제는 이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정책적 오류는 지금도 계속되는 진행 상태라는 평가를 떨치기 어렵다.

첫째, 수시의 최저등급제 폐지에 관해

이른바 상위권 대학에서 수시모집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수능 최저를 적용하고 있으나 이 수능 최저가 학생들의 공부 부담을 가중시킴으로써 전인교육을 방해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있어왔다. 이에 정부가 응답하는 것은 좋다. 사실상 고3교실은 입시, 그리고 수능 EBS 교재가 잠식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수능을 통해 정시입학을 목표로 하는 고교생들을 중심으로 청와대에 청원까지 하며 수능 최저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이 학생들 청원의 주무기는 역시 공정성이다.

2022 대입안의 주요 쟁점 이번 대입시의 내용에 대해 '공정성'과 '전인교육'의 가치간의 갈등이 내재해 있다고 전제하고 논의해 보았다.
2022 대입안의 주요 쟁점이번 대입시의 내용에 대해 '공정성'과 '전인교육'의 가치간의 갈등이 내재해 있다고 전제하고 논의해 보았다. ⓒ 신남호

둘째, 수시와 정시의 비율 문제에 대해

수시모집에는 국어, 영어, 수학의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이 유리하다. 즉 상대적으로 서울에서는 강북 지역, 전국적으로는 중소도시 이하의 학생들이 수시 모집으로 대학에 가기 쉽다. 이들에게 대학 진학의 문이 확대된다면 이는 계층 이동에 기여하는 것이다. 수시모집을 위한 자료로써 비교과 활동이 장려되는 것은 국영수 교과서와 문제풀이 중심의 수업 풍토를 완화시켜 보다 다양한 교육적 실험의 기회를 확대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그러나 수시 및 학생부 종합전형의 자료가 되는 다양한 교육적 실험과 체험은 사실상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과도하게 많은 교과 학습량, 운영의 자율성이 없이 강제되는 과한 연간 수업일수와 교과 수업시수 때문이다. 학생과 교사들의 교육적 필요에 의해 학교 안팎으로 나갈 시간이 여의치 않은 것이다. 교사를 보조하는 보조교사도 없고, 행정업무를 전담해줄 행정보조원도 거의 없다. 교육선진국에서는 이런 문제가 많이 해결된 상태다.

심지어 러시아의 톨스토이 학교에서는 교감만 7명인데 이들이 기획관리, 예술담당 등 학교행정업무를 분야별로 전담함은 물론 수업까지 한다. 교장도 수업을 한다. 수업을 해야 교장, 교감이 학생과 교사들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고 여기서 리더십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교장, 교감이 수업을 하면 뉴스에 나올 정도로 희귀하다. 미국에서는 한 교실에 교사, 보조교사 심지어 보조원까지 투입되는 곳도 있지만 한국은 교사 1명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고 있다. 우리는 정책 자체만 제시할 뿐 정책의 성공을 위한 환경을 만드는 데 소홀히 하고 있다.

물론 학생들의 '스펙'도 가정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심지어 대학교수인 학부모가 연구논문에 자녀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따라서 스펙이 부풀려지지 않도록 해야 할 과제가 남는다.

반면에 수능은 상대적으로 서울의 강남, 전국적으로는 대도시 학생들에게 유리하다. 수능을 중심으로 하는 정시모집은 수시에 비해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 정시모집은 수시모집에 비해 평가의 신뢰성 문제도 적어서 대학 선발이 편리하다. 그러나 수능과 정시모집의 확대는 학생들의 암기식 공부를 강화하여 학교를 입시기관화함으로써 국가경쟁력에 직결되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더욱 훼방한다.

결국 수시모집을 위한 '스펙'과 정시모집의 주된 자료인 '수능 성적'이 공히 학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전인교육을 훼방하는 점에 주목해서 정시모집이 대입 비중의 30~40%를 넘지 않도록 해야할 것 같다. 교육선진국에서 객관식 수능으로 대학입시를 치르는 나라는 미국, 일본 등 극소수일 뿐 유럽 등에서는 100% 논술이다. 미국, 일본에서도 이미 수능을 참고자료로만 쓸 정도로 객관식 시험의 폐단을 이미 인지한 상태다.

셋째, 수능 절대평가제에 대해

수능 절대평가제가 대선공약이라는 점에서 시행의 의무감이 느껴지기도 하거니와 성적으로 줄세우는 상대평가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언제나 타당하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또 공정성의 구도에 의해 갇히고 있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입시의 공정성을 위해 대학에 학생들의 원점수를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표준점수, 100분위 점수 등의 복잡한 자료를 피하고 대학의 본고사 형태의 심층면접 등의 필요성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적의 서열화'를 벗어나 점수경쟁과 경쟁위주의 대학입시 풍토를 개선하려는 교육 개혁의 취지는 무색해진다.

우리는 여기서 국가의 입시정책의 향방이 늘 제3의 길을 타지 못하고 늪에 빠져있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대안을 찾기 전에 먼저 일례로 캐나다를 보면,

'캐나다 교육 이야기'의 저자 박진동 김수정에 의하면, 캐나다에서는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하는 특별한 목적의 고등학교가 따로 없고 대체로 평준화되어 있다. 대신 능력을 보이는 학생들에 대해서는 일반고교 내에 특별학급 즉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와 AP(Advanced Placement) 프로그램을 통해 깊이있게 공부하도록 길을 터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과목을 이수한 학생들의 3분의 1이 합격점인 3점 이상을 받지 못해 일반학급에 있는 것보다도 못한 결과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학교 내신의 평가가 엄정하기 때문에 내신 성적의 신뢰성이 높다. 캐나다에서 객관식 선다형 시험인 수능이 없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환경이 갖춰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캐나다 교육 이야기' 121~133쪽 참조)

대부분 학생과 학부모들은 교사들의 성적 및 생활평가에 대해 이의제기가 없다. 점수 1~2점에 매이는 풍토가 아니다. 이 지점이 중요하다. 왜 그럴까? 대학진학만이 행복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기술 및 직업교육, 어학교육이 학생들의 선택 대상으로 넓혀져 있고, 사회적으로 기술-기능직에 대한 경제 및 복지 혜택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분배정책에서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굳이 대학진학하려고 소위 '점수의 노예'가 되는 일이 없는 것이다. 성적 때문에 자살하는 것이 먼 나라 이야기가 된다. 이를 거의 동일하게 확장하면서 논술과 내신성적으로 대학진학을 할 사람만 하는 곳이 유럽 그리고 대부분의 교육 선진국이라고 보면 된다.

논점에서 조금 벗어나는 것이지만 교육개혁을 방해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한 가지 언급하면, 거의 유일하게 교사들이 교장으로 승진하려는 이상 열기가 식지않는 나라가 한국이라는 사실이다. 교사들의 능력은 일반 회사의 능력과 성격 자체가 다르다. 흔히 회사나 공공기관은 업무처리와 토론 능력, 리더십 등의 능력으로 승진시키고 이것이 합리적이다.

반면에 교사들의 주된 일상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책보는 일, 그리고 학생들과 늘 함께 호흡하며 상담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들에게는 승진보다 평교사로 정년까지 가는 것이 어울리며 이것이 명예로운 일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교사들이 승진보다는 교사로 남는다. 그리고 교장, 교감은 이들을 보다 성실히 지원하는 역할에 머물지 감독하고 군림하지 않는다. 한국의 교사들의 승진 욕망은 실적을 내기 위해 더욱 맹목적으로 입시 경쟁을 부추긴다.

입시제도의 근본적 개선은 교육정책 밖에서 찾아야

결국, 지금은 우리가 일정한 정도로 '공정성의 신화'에 머물러 있어야 하지만 수능절대평가가 진전된 수순임은 맞다. 그리고 원점수 제공도 한시적으로 불가피할 수 있다. 그 다음 수순은 적어도 수능 5등급제 절대평가를 거쳐 수능을 폐지하고 내신성적으로 가거나, 기존의 객관식 수능을 폐지하고 논술형 수능으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한 필수 전제조건이 바로 대학진학 열기를 완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열쇠는 교육 내부의 교육 정책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교육 밖에서 직업차별-학력차별의 극복 곧 분배 정책에서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 부총리의 직함까지 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입시제도 개선의 문제는 바로 이렇게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야 한다는 것, 정권 임기에 제약받는 단기적인 처방을 벗어날 것, 교육정책 문제를 교육 안에서만 찾는 오랜 관행을 끊어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2022 대학입시#수시-정시 비율조정#수능 절대평가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민중의소리'에 교육평론 45편 정도 기고했으며, 현재 인천교육청 공립 대안교육 자문위원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