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 북한 관영 매체가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겠다는 결정을 보도하며 영문으로는 물리적으로 해체한다는 뉘앙스가 담긴 'dismantle'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눈길을 끈다.
북한은 지난 20일 개최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핵시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하여 공화국 북부(풍계리) 핵시험장을 폐기할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된 결정서를 채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은 21일 보도한 바 있다.
중앙통신은 영문판에서는 같은 내용을 "The northern nuclear test ground of the DPRK will be dismantled…"라고 서술했다. 국문 기사의 '폐기하다'에 상응하는 영어 동사로 'dismantle'을 사용한 것이다.
통상 해체, 폐기 등으로 번역되는 'dismantle'이라는 용어는 시설을 영구히 사용할 수 없도록 해체한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예전 핵협상 과정에서는 사용 불가능한 상태로 만든다는 '불능화'(disablement)보다 더 나아간 개념으로 인식됐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의 이번 보도에 대해 "풍계리 핵실험장을 단순히 폐쇄하는 것이 아니라 해체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영구히 안 하겠다는 의미가 들어있다"며 "그런 면에서는 매우 전향적"이라고 말했다.
이런 맥락 때문에 과거 북한은 이 말을 북핵 협상 합의문에 넣는 데 거부감을 나타낸 적도 있다.
2005년 9·19공동성명 채택 당시에 북한은 핵 폐기(dismantle) 대신에 포기(abandon)라고 표기할 것을 강력히 주장해 관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6자회담 초기 미국은 북핵 문제 해결의 목표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CVID)를 제시했었다. 오늘날에는 'D'가 비핵화(denuclearization)로도 많이 일컬어지지만, 미국이 비핵화 원칙으로 많이 거론하는 'CVID'는 여기서 연유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이 폐기(dismantle)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일종의 대미 메시지 성격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의 이번 표현이 통상 폐기에 선행하는 검증 절차까지를 염두에 둔 것인지를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정성윤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까지 사용되는 개념으로 볼 때는 검증이 전제된 이후의 절차가 폐기(dismantle)"라며 "만일 북한이 이런 일반적 개념을 사용한 것이라면,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국제사회든 미국 측으로부터든 확인과 검증을 받고 핵실험장을 폐기하겠다는 표현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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