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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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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에게 부치는 편지'

아버지처럼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도 드물지 싶다. 취미가 직업이 되어 20년 넘게 사진관을 했지만 그 이면에는 사랑하는 너희들이 있어 가능했다. 어린 너희들을 데리고 주말마다 창경궁과 경복궁을 다니며 너희들을 모델로 인물사진을 배웠고 덕분에 사진관을 하는 친구들조차 웨딩사진 의뢰가 들어오면 아버지한테 부탁하기도 했었다.

사진관을 하며 너희들의 성장 과정을 기록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앨범에 정리하기에는 사진이 너무 많아 장롱 서랍마다 너희들 사진으로 가득 찼구나. 필름만 해도 라면상자로 세 상자 분량이니 필름 값과 분량으로 따져도 어마어마한 기록이다.

6년 전, 사진관을 그만두고 경비일을 시작했지만, 이 역시 아버지는 너무너무 만족한다. 새벽 1시부터 6시까지 온전하게 아버지 시간이기 때문이다. 사진관을 할 때는 사진으로 너희들의 성장 과정을 기록했지만 경비일을 하면서부터 글로서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일기형식으로 써놓은 글이 1500편이 되는구나. 24시간 맞교대하는 경비일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버지는 왜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너희들의 성장 과정을 기록하는 걸까? 우선 너희들에게 이런 아버지가 있었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이다음에 아버지가 죽고 없을 때 아버지가 촬영해놓은 수만 장의 사진을 보고 수천 편의 성장기록 글을 읽으며 "우리 아버지가 남겨놓은 아름다운 흔적"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였다. 너희들의 가슴에 "아, 우리 아버지" 하면, 떠오르는 기쁘고 따뜻한 추억과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였다.

일가친척 중 아버지를 잘 아는 사람들은 유난 떤다고 말을 하더라만 너의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에게 받은 사랑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꼭 그렇게 말할 것도 아니다. 언젠가 일가의 형뻘 되는 분이 아버지의 글을 읽고,

"자네의 글을 읽고 있으면 고향 풍경이 그려져. 고향의 옛 어른들이 아직도 살아계신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들어."

아버지는 그의 말을 이해한다. 왜냐하면, 너희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에게 배운 말로 글을 쓰기 때문이다. 도시 생활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분들에게 배운 말로 쓴 글이니 비록 세련되지는 못하더라도 글 속에서 송아지 엄마 찾는 소리가 들리고 살얼음 아래로 흐르는 도랑물 소리 들리는 건 당연하다.

추억이 이렇게 소중하다.
이 소중한 추억을 아버지는
너희들에게 만들어주고 싶은 게다.

오늘은 시가 아니라 너희 증조할머니를 추억해보자.

-

천연간수

어렸을 때 자주 보던 풍경이 있었다. 할머니는 안방에서 어머니는 건넌방에서 마주 보고 우는 모습이었다. 시집살이 당하는 어머니 눈물이야 이해한다지만 시집살이시키는 할머니 눈물은 지금도 이해하기 어렵다.

대청마루를 사이에 두고 시어머니 며느리 훌쩍이고 있는데 앞집에 사는 일가 아줌마 대문을 밀고 들어온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희한한 풍경을 보고 한마디 하는데,

"어라! 종재기 어디 있어? 두 양반 눈물 받아서 시아버지 제삿날 두부 만들 때 간수로 쓰면 되겠구먼. 아무려나 시어미 눈물보다 시집살이 당하는 며느리 눈물이 더 짤 테지?"

순간 할머니는 "이 오라질년"을 외치며 다듬잇방망이를 움켜쥐었고 어머니는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다. 할머니의 일갈과 함께 다듬잇방망이 들고 댓돌로 내려서는 순간 일가 아줌마는 어마 뜨거라 도망을 가면서도 그 자발 머리 없는 입을 가만 안 두는데,

"아이고 형님, 형님 돌아가시면 제사상 차려줄 며느리여. 그만 좀 달달 볶아! 왜? 집에 간수 떨어져서 며느리 눈에 눈물 빼우? 우리 집에 간수 많은데 빌려줄까?"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할머니를 분노하게 만든 일가 아줌마의 간수가 없어 며느리의 눈에서 눈물 빼내냐는 그 한마디는 능히 두보의 시 한 수를 연상케 하고도 남았다.



#모이#딸바보#아버지#딸사랑#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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