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는 우리나라 국기입니다. 태극기를 정확하게 그려오는 어린이에게 짜장면을 공짜로 대접하고 싶어요.'
대구 중구 봉산문화회관 인근 중화요리 식당 앞을 지나다가 현수막을 보고 호기심이 일어 들어섰습니다.
"사장님, 저도 태극기 그리면 짜장면 공짜로 주십니까? 저는 나이가 많아서 안 되겠지요?"
농으로 건넨 인사말에 인상 좋게 웃어 보이던 남기석(62세)씨는 10여 년 넘게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 태극기 그려오면 (어린이들에게) 짜장면 무료로 주는 이벤트는 언제부터 시작하신 거예요?"1년 정도 된 거 같아요. 처음엔 많이들 찾아왔는데 요즘은 좀 뜸하네. 여기 근처에 초등학교가 두 곳이나 있고 해서 고민하다가. 요즘은 학교에서 태극기 그리는 거, 그런 거 안 가르치거든요. 애국가도 4절까지 몰라요."
- 요즘은 뜸하다 하셨는데 그래도 기둥에 저렇게 많은 태극기를 보니 많이들 와서 공짜 짜장면 좀 먹었겠는데요. "우리나라 국기니까 한 번 그려보는 거지. (태극기) 조금 틀리게 그려도 한 번 그려보는 정성이 있으니까 통과시켜 주고 그랬거든요. 한 6년 전인가? 그때는 애국가 4절까지 부르는 어린이에게 짜장면을 주는 이벤트를 한 적도 있어요."
- 4절을 다 부르고 짜장면 먹으려면 고생 좀 했겠는데요. "아니, 2절 불러 볼래? 3절 불러 볼래? 이렇게 (무작위로) 물어보는 거지. 그때는 문 밖으로 막 줄도 서서 기다리면서 가사 외우고 (애국가) 노래 부르고 그랬거든요. 지금까지 한 100명 이상 짜장면 먹었죠. 그중에는 벌써 대학교 들어가서 (가게에) 찾아와서는 그때 그 시절 얘기도 하고. 그러면 보람도 느끼고 그럽니다."
- 뿌듯하셨겠어요. 그나저나 태극기 이벤트는 언제까지 하시려고요. 다른 이벤트는 생각하신 거 뭐 없으세요?"글쎄요 언제까지 (태극기 이벤트) 할지. 애국가 (이벤트)를 다시 해봐야 하나. 국민교육헌장 같은 거 외우기를 해야 하나? 허허. 그걸 누가 외우겠어요. 우리 때야 다 외웠지. 요즘 시대에도 안 맞고. 역사적으로, 우리나라 위인 20명 말하기 같은 걸 할까 싶기도 하고."
- 그것도 재밌겠네요. 참, 애국가랑 태극기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시네요. "애국이 뭐 특별한 거겠어요? 애국가 부를 줄 알고, 태극기 그릴 줄 알고, 우리나라 국화 무궁화 알고. 그런 것부터가 나라사랑의 작은 시작이라 생각합니다."
짜장면 한 그릇에 '나라사랑'의 마음을 담아 본인만의 방법으로 '애국'을 실천하고 있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머릿속으로 태극기를 한 번 그려봤습니다.
먼저 새하얀 면 하나를 상상해봅니다. 흰 바탕은 '밝음, 순수,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성'을 의미합니다. 그 한가운데 '음양의 조화'와 '대자연의 진리'를 뜻하는 태극 모양을 그려 넣습니다. 위아래를 빨강과 파랑으로 색칠하고 나니, '하늘·땅·물·불'를 상징하는 '건곤감리(乾坤坎離)'가 남습니다. '어, 그러니까... 검정 막대 다섯 개가 여기던가? 저기던가?' 네 개의 괘를 이리저리 어디에 그려야 맞는지, 머리 꽤나 긁적이게 됩니다.
독립운동, 4·19 혁명, 민주항쟁 등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을 상징했던 태극기. 군부독재 시절 강요된 국가주의와 애국심으로 변질됐던 의미가 이제는 과격한 보수 집회의 이미지가 덧씌워지기도 했습니다.
태극기를 잘 그리고, 애국가를 잘 부르는 것만이 애국의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괜한 거부감에 너무 멀리하고 산 거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나라를 사랑한다는 게 무엇일까?' 짜장면 한 그릇을 맛있게 비우면서 '애국'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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