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8일, 서른넷의 나이로 15년간 계속해오던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마감했다. 그리고 나는 더이상 직장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인생이라고 했으니 '죽어도' 안 할 거라고 호언장담은 할 수 없겠지만 아직도 그 마음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이제는 직장에 들어가려고 해도 받아주는 직장이 없을 것 같다.
직장을 나오기 2년 전 갑작스러운 '암' 선고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내가 해본 것이라고는 고등학교를 채 졸업하기도 전부터 시골 공장에 취업해 주야간 12시간씩 일하는 것이었다.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회사 저 회사 옮겨다니며 남의 밑에서 일해본 것 밖에 없었으니 내 인생이 너무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투병을 하면서 정신을 차렸다. 회복되면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 다 하며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하지만 막상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몰랐다. 하루 하루 치열하게 경쟁하고 살아남기 바빴지,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일, 나의 꿈 따위는 잊고 산 지 오래였다.
내가 겪은 투병일기를 쓰기 위해 블로그를 만들고 열심히 글을 썼다. 내가 처음 투병생활을 하고 마땅한 정보를 찾지 못해 나의 미래에 대한 공포로 하루 하루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기 때문에 내가 겪은 경험을 다른 환자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블로거가 되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블로그를 시작하고 나의 일상과 생각들을 포스팅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나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찾아졌다. 그리고 2년 후 나는 직장을 나왔다.
직장 그만두고 새로 시작한 글쓰기직장을 그만두고 나는 새로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바로 내 인생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직장생활'에 대한 나의 경험과 생각이었다. 대학 안 나온 사람들이 대학 나온 사람들보다 더 적은 요즘 세상에 '고졸' 학력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오마이뉴스>에 내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내 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알아보고 싶었고 많지는 않지만 소정의 원고료도 받을 수 있어 책 제작비로 쓰면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마이뉴스>에 연재를 하면 편집부 기자들이 기사 채택 전에 오탈자나 맞춤법이 틀린 부분을 손봐주기까지 했다.
15년 동안의 직장생활 이야기를 정리하고 연재하는데는 꼬박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틈틈이 지난 에피소드들을 생각해내고 글로 쓴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연재를 하는 2년 동안 내가 쓴 글들의 일부는 메인 기사로 배치가 돼 '포털사이트'에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포털사이트 메인에 내 글이 오르면 진짜 생각하지도 못한 악플들이 많이 달렸다. 처음에는 그 악플들에 적응하지 못하고 상처를 받곤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연재가 끝났다. 내 글은 <오마이뉴스>와 더불어 카카오에서 만든 글쓰기 플랫폼인 <브런치>에도 함께 연재를 했다. <브런치> 서비스가 처음 생기고 첫해 겨울에 작가들의 연재글을 대상으로 '출간'을 해주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내 연재글이 '수상 후보작'이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메일을 받고 너무 기뻤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내 글이 <브런치> 이외에도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글이라 수상이 취소됐다. <오마이뉴스>에 함께 연재를 했어도 저작권은 '시민기자'인 나에게 있으므로 출판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알렸지만 이미 기사로 배치돼서 기록으로 남아있는 내 글을 전부 내리고 <브런치> 글만 놔둘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나의 첫 출판 기회를 포기해야 했다.
화가 나서 욱한 마음에 내 이름으로 1인 출판사를 냈다. 글 써서 받은 원고료를 모은 것으로 내가 직접 책을 출판하자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글쓰기만 했지 책 디자인도 할 줄 모르고 책의 유통 과정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 내가 책을 출판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책을 만들어야 유통도 할텐데 책을 만들려고 하니 원고만 가지고는 너무 할 일이 많았다. 그리고 모아둔 몇 푼의 원고료로는 턱 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점점 더 내가 돈을 직접 투자해서 만든 내 책으로 투자금 회수를 할 수 있을지 냉정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출판 업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땐 막연한 희망을 가졌는데 조금씩 그 시장을 알아갈수록 그게 얼마나 힘든일인지 깨달았다.
그래서 1년에 한번씩 있는 '한국출판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사업'에 도전했다. 지역의 출판사와 1인 출판사는 '가점'도 준다고 하니 더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에 원고 뽑아 제본해서 책자를 만들고 관련 서류 구비해서 지원사업에 접수했다. 하지만 결과는 2년 연속 탈락이었다. 정말 책 한 권 만들기가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결국 책 한 권도 만들어보지 못한 채 야심차게 시작했던 내 출판사는 '무실적 폐업'을 했다. 책도 몇 년째 만들지 못하면서 매년 꼬박 꼬박 면허세만 냈다. 그래도 그 덕에 출판 시장에 대해 조금이라도 배웠으니 그걸로 됐다며 스스로의 위안을 삼았다.
그 후로 나는 원고와 내 프로필을 정리해서 다른 출판사에 '투고'를 하기 시작했다. '투고'를 통해서 신인 작가가 출판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에서 찾은 여러 출판사에 마구잡이식 투고 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답변은 비슷했다. 아예 회신이 없거나 좋은 원고인데 자기네들과 '방향성'이 맞지 않는다는 답변이었다.
2, 3곳의 출판사에서 내 원고에 관심을 보이며 추가적으로 검토하는 시간을 달라고 해서 기다려본 적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내 원고를 알아봐주는 출판사는 없었다. 이런 과정들을 겪으면서 내 자존감에도 살짝 '스크래치'가 났다.
무료 POD출판으로 하루라도 빨리 독자를 만나자
그렇게 또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거의 책 만드는 일을 포기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내 주변에 일부 글쓰는 사람들이 자기들도 <브런치>에 연재한 글을 모아 'POD(Publish On Demand-주문형 출판)' 형태로 출판을 했다며 나에게도 POD출판을 추천했다.
하지만 나는 꼭 내 책을 서점에 깔고 싶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 책이 서점에 깔리면 많은 사람들이 읽어봐줄 거라는 자신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또 어떤 식으로 책을 만들지 고민만 하다가 몇 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POD'를 통해 먼저 책을 낸 동료들은 그 책으로 자기를 홍보하며 출판 후에 할 일들을 찾아 차근 차근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만 아직 그 자리였다. 그리고 나도 조금씩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브런치>에 글을 연재한 작가들이 '부크크' 서비스를 통해 POD 출판을 하면 추가 인세를 주는 제도가 생겼다. 그렇게 나는 그 '추가 인세'를 핑계삼아 꿋꿋하게 버티던 내 자존심을 버리고 'POD 무료출판'을 감행했다. 그렇게 내 글은 3년 만에 <나는 고졸사원이다> 라는, 연재글 제목과 같은 제목을 달고 '책' 형태로 세상에 나오게 됐다.
하지만 역시 POD 출판의 한계는 '홍보'였다. 인터넷 서점을 통해서만 유통되는 내 책은 출판사를 끼고 낸 책에 비해 훨씬 더 어려운 마케팅을 해야했다. 오롯이 누구의 도움 없이 '작가'인 내가 스스로 홍보를 해야한다.
블로그와 SNS를 통해 열심히 홍보한다고 하지만 그 홍보글을 보는 사람들은 한정이 돼 있고 누가 내 책을 알고 인터넷에 직접 '검색'을 해보지 않는 이상 내 책이 세상에 나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단 책만 내면 그 뒤는 '작가' 타이틀 달고 뭔가 된 것마냥 탄탄대로가 될 줄 알았지만 책을 내기 전이나 후, 나에게 달라진 건 거의 없었다. 책 역시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내 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과 그 엄청난 노력을 나 혼자 해서는 더욱 더 역부족이라는 사실만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 와중에 그래도 고무적인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한 권 두 권 내 책을 사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POD 출판이라 일반 책보다 주문하고 배송되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페이지 수도 많아 가격도 비싼데, 그래도 내 책을 주문해준 독자분들이 있었다.
요즘은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 책이 서점에 깔렸어도 지금처럼 '꼭 필요한 누군가만 내 책을 고르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내가 책을 만들어 더 오랜 시간 노력 했더라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책으로, 내 이야기로 조금의 '희망'은 더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애시당초 열악한 출판 환경에서 '인세'로 돈 벌기는 힘들다는 걸 알고 여기에 뛰어 들었다. 나 역시 책 팔아서 돈 벌고 그 돈으로 부자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왜 진작 조금이라도 더 빨리 내 이야기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된다. 그랬다면 지금쯤 그 뒤에 이야기를 더 많이 들려줄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내 책이 세상에 나오고 나는 지금 다음 이야기를 시작했다. 역시 <오마이뉴스> 연재를 통해 직장생활 이후 내 '창업' 이야기를 다룬다. 이 이야기도 언젠가는 '책'의 형태로도 내 이야기가 필요한 누군가를 만날 거다.
나는 나의 인생 경험을 나누고 그 나눔을 통해 누군가가 자신의 인생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얻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만약에 그럴 수 있다면 내가 생각하는 '경험 공유의 가치'는 위대한 힘을 갖는다. 그렇기에 나는 내 인생을 기록하고 또 그 기록을 어떤 형태이든지 '콘텐츠'로 만들어 세상에 남기는 일을 계속하려고 한다.
그러기에 '글쓰기'와 '책 출간'은 나에게 아주 좋은 '경험 공유'의 도구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려 글을 쓴다. 나의 1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15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나의 저서 <나는 고졸사원이다>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덧붙이는 글 | 나의 피와 땀이 녹아 있는 <나는 고졸사원이다>를 만나보고 싶다면, 작가에게 '인세'가 조금 더 돌아가는 부크크 서점(http://www.bookk.co.kr/book/view/35676)을 이용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