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청산'이라는 화두를 안고 산 지 1년이 지나가고 있다. '통치 행위', '통치 자금'이라는 명목으로 수십 년간 이뤄진 '불법 행위'와 '불법 자금'이 단죄를 받고 있다. 많은 이들이 비판하고 고발한 사건들이지만 많은 부수를 자랑하는 언론에서는 '정치보복', '언론탄압', '사법권 침해'라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날 TV 뉴스에서 보도한 내용과 정반대 취지의 기사가 아침 신문에 인쇄되어 집으로 배달되는 현실이다.
어디에서 이런 차이가 오는지 설명한 책이 있다. '도덕적 개념'과 '정치적 성향' 차이를 뇌에서 구조화된 '프레임'으로 설명한 '조지 레이코프'의 저서들이다. 몇 주 전에 리뷰 기사를 올린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 이어 <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가 새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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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생각하게 하려면 다르게 말해야 한다]
이 책은 UC 버클리에서 '언어인지학'을 연구하는 조지 레이코프 교수와 그에게서 박사학위를 공부한 독일의 '엘리자베스 웨흘링'이 함께 쓴 책이다. 두 사람이 대화하는 형식으로 써 나갔는데 웨흘링이 주요 개념을 질문 형식으로 정의(定義)하면 레이코프가 부연 설명하는 방식이다.
정치적 성향은 어디에서 오는가?
저자들은 인간의 뇌는 '은유(metaphor)'를 통해 언어를 배우고, 언어를 통해 도덕 개념이 완성되어 간다고 설명한다.
책에서는 "물가가 올라간다"를 예를 들었다. '올라감'은 '위'를 은유하고 '위'는 '많음'을 은유한다는 식이다. 애초에 '물가'라는 개념과 '올라감'이라는 공간적 개념은 서로 상관이 없지만, 언어적 은유로 그 개념이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뇌는 단어와 단어들의 은유에서 개념을 잡고, '도덕적 개념'과 '정치적 성향'까지 자리를 잡는다"고 설명한다. 그렇다. 이 책은 사람들, 특히 미국인들의 정치적 성향의 차이를 얘기한다. 그 차이를 "우리의 마음과 뇌가 작동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고 풀어나간다.
미국 정치에는 두 개의 세계관이 있다. 보수적 세계관과 진보적 세계관. 책에서 이들은 "도덕적 가치와 프레임 형성 방식에서 차이"가 난다고 설명한다. '자유', '정의', '평등', '공정성'의 가치는 모두 보수와 진보가 동의하는 가치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들을 파고들면 두 진영은 완전히 다른 해석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정반대의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진보주의자들이 "사회적 책임과 감정이입에 근거"한 '사회보장 프로그램', '환경보호를 위한 규제', '총기 규제' 등을 지지하지만 보수주의자들은 이를 반대하며 "복지와 공교육의 재원이 되는 세금의 인하를 찬성한다.
이런 대립적인 입장은 "개인과 정부의 관계에 대한 은유"로 설명된다. "국가는 가정"이다라는 은유. 이런 은유를 통해 "미국인들의 전체 세계관을 구조화하고 뇌 속의 전체 프레임 체계를 조직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은유에는 두 모델, '엄격한 아버지'의 가정과 '자애로운 부모'의 가정이 있다. 이름만큼이나 다른 두 모델은 상반된 도덕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엄격한 아버지의 가정'의 엄격한 아버지가 가진 도덕적 가치는 '권위'와 '절제'이며 '사회적 지배'를 강조한다. 그래서 '최강자'가 살아남는다고 믿는다. '자애로운 부모의 가정' 모델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동등한 역할을 하며 '감정이입'과 '책임'을 도덕적 가치로 내세운다. 이 책임에는 '개인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 모두를 의미한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하는.
이러한 가치의 차이가 각종 정책에서 다른 대응을 불러왔다고 설명한다. 심지어 '신'도 '보수적 신'과 '진보적 신'이 따로 있음을 얘기한다. 신이 명령했다고 믿는 "가치를 어기면 응징하는 신"과 "함께 사는 세상을 강조"하는 신.
두 진영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에서도 '엄격한 아버지 같은 신'과 '자애로운 부모 같은 신'의 관점에서 다른 해석을 한다고 설명한다. 이견이 있는 주요 정책인 낙태와 이민 정책에 대해서도 두 진영의 가치가 다름을 "프레임의 구조화"로 설명한다.
이런 '프레임 구조화 전략'을 보수 진영에서 잘 이용했다며 세금 정책을 예로 설명했다. '세금은 구제(tax relief) 대상'이라는 프레임. '세금인하' 대신에 '세금 구제'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가 보이는가? 유권자들에게 세금을 낮추는 진영은 영웅이고 올리는 진영은 악당이라는 은유를 사용하여 "보수적 프레임을 주입"했다. "영웅에 의한 구원"이라는 서사를 부여한 것이다.
이런 프레임 전략은 법인세 인상에 반대하는 기업들이 후원한 공화당의 성공적 선거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인상을 찬성했던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는 악당이라는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전략이 있었다.
2000년대 중반에 '세금 폭탄'이라는 구호가 선거현장에 빈번하게 등장했다. 폭탄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연상되는 것이 무엇인가? 폭격, 폭격으로 인한 희생자들, 폭격 주변 지역의 피해···. 세금과 폭탄을 연결하니 엄청난 피해를 주는, 나쁜 그 무엇이라는 연상을 생기게 했다. 그렇게 노무현 정권에서 부여하고자 한 '종합부동산세'는 저지되었다.
전 국민의 2퍼센트도 안 되는 '부동산 초(超)부자'들을 위해 저지한 '한나라당'과 '박근혜'는 영웅이 되었다. 그다음 이명박 정권도 '세금 폭탄'을 강조하여 '법인세'를 인하했고 '종합부동산세'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지난 정권에서도 '세금 폭탄'의 위력은 계속되었다.
보편타당하고 가치 중립적인 언론을 위하여이 책은 지난 저작에서도 언급한 '프레임'과 그 '구조화'를 쉽게 풀어서 설명한다. 또한, 미국 보수 진영이 프레임 전략에서 어떻게 앞서 왔는지를 설명하며 진보진영의 노력을 당부한다. 전작과 다른 점은 프레임 전환을 위한 공론화 과정에서 '언론'의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순수한 객관적 저널리즘은 불가능" 하다며 "정치부 기자들은 이미 도덕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어렸을 때부터 쌓인 '도덕적 개념'이 알게 모르게 기사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보편타당한 가치 중립적 기사 작성은 가능"하다고 본다. 물론 "기자의 의지가 있으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래도 "언론은 사회의 거울"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편타당하고 가치 중립적 저널리즘을 위해서 저자들이 언급한 '인지과학'과 '신경과학'적 고려를 해야 한다고 전 세계의 언론에 짧게 당부하며 맺는다.
어제 종편의 저녁 뉴스에 언급된 이슈의 논조와 아침에 배달된 신문에 실린 같은 이슈의 논조가 다름을 '프레임'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만든 책이다. 전작인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깊게 다뤘던 이론들을 <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에서는 쉽게 대화로 풀어준다.
'북미회담'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프레임 전략과 전투가 활발할 텐데 분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눈을 키워준 책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강대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오피니언뉴스에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