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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온 500여 명의 예멘 난민으로 우리 사회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7월 11일자 뉴스에 따르면, 예멘 난민 반대 국민청원이 사상 최대인 70만에 육박했으며, 반난민 정서가 심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난민 반대의 여러 이유들 중에는 개신교를 중심으로 하는 이슬람 혐오도 있습니다. 교회 강단에서 일부 목사들은 예멘 난민들이 우리 사회를 이슬람화할 것이라고 소리 높여 주장한다고 합니다.

이기호 작가의 신작 소설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를 접했을 때, 바로 예멘 난민들이 떠올랐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단편에는 이슬람으로 개종한 여교사를 두고 벌어지는 상황이 그려집니다. '교회 오빠'라는 표현을 아시는지요? 어쩐지 모범적이고, 신앙생활 잘 하고, 얌전한 성품에 기타 치며 찬송가도 잘 부를 것 같은 청년을 지칭하는 말이지요. 이기호가 거기에다 '누구에게나 친절한'이란 수식어까지 붙였으니 대체 얼마나 친절하고 멋진 교회 오빠이길래 그럴까요? 그러나 그간 이기호의 작품 세계를 보면, 제목을 보고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습니다.

<최순덕 성령충만기>와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그리고 <김 박사는 누구인가> 같은 단편집으로 이기호 소설들을 읽어왔습니다. <사과는 잘해요> <차남들의 세계사> 같은 장편소설도 궁금한데, 차차 읽어볼 생각이고요.

그의 작품들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한국문학에서 성석제와 박민규의 계보를 이어, 글에 유머와 해학을 담고 있는 작가입니다. 원주에서 나고 자라고,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한 이기호는,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녹여 <원주통신>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같은 단편들에 담고 있습니다. 뭔가 허술하고, 어설프고, 남들에게 잘 당하는 순진한 캐릭터지요.

독자에 따라서 유머 코드가 잘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좋더라고요(저는 오히려 개그 콘서트 보면 별로 웃지 않아요). 유머는 주로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서 많이 발생합니다. 대체로 눈치는 눈곱만치도 없고, 가진 것도, 실력도 없는 주인공이 좌충우돌 당하거나, 아무리 해도 일이 꼬이는 상황이 웃음을 자아냅니다. 요즘 말로 '웃픈' 상황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배를 잡고 깔깔 웃는 게 아니라, 피식피식 실소를 터트리게 되지요. 같은 책을 읽은 다른 분은 '뭐가 웃겨?' 하시는 분도 있더라고요(아, 인생을 너무 진지하게 사시는 분이 아닐까요).

이렇게 실없는 이야기나 하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이기호는 글쓰기, 이야기 하기에 아주 치열합니다. 비평가 신형철은 그를 두고 '이기호에게 소설가는 직업이 아니라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소설가의 책무랄지 윤리에 대해 엄중하게 생각하고, 삶의 매 순간 소설가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번 신간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에 수록된 단편들을 보면 이 점이 아주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그간 이기호가 작품에서 다뤄온 인물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주로 사회의 주류하고는 거리가 멀고, 우리 시대의 뒷골목 낙오자들이 등장합니다. 백수나 취준생,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소시민들, 그리고 이기호 작가의 어느 시절을 닮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사회경제적 처지로 인해서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지요. 곤경을 타개하려고 애를 쓰지만, 일이 더 꼬이기나 하지 잘 풀리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책 표지 이기호 신작 소설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가 문학동네에서 나왔습니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책 표지이기호 신작 소설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가 문학동네에서 나왔습니다. ⓒ 문학동네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에는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작품 제목에 전부 고유명사인 사람 이름이 들어간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럴싸한 멋진 주인공의 이름이 아닌 평범한 이름들입니다. 최미진, 나정만, 권순찬, 박창수, 김숙희 등. 고유명사를 쓰는 것은, 작가가 각각의 삶의 개별성과 특수성을 존중하겠다는 의지가 아닐까 합니다. 누구도 같은 삶을 살지는 않으니까요.

7편 중 서너 편에 이기호이거나, 이기호를 닮은 사람이 등장합니다. 첫번째 수록작 <최미진은 어디로>의 경우, 대놓고 소설가 이기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요. 이기호가 인터넷 중고나라 사이트에 갔다가 자기 책만 염가 판매하는 걸 보고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립니다.

'절대적 환대'란 가능한 일일까

소설가에게 소설은 어떤 의미인가, 소설가라면 적어도 타인의 고통에 대해 써야 하지 않는가. 그런 숱한 고민을 하며, '소설가로 사는' 이기호는 이야기 하기의 윤리에 대해 말합니다.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에서도 이기호와 비슷한 인물이 등장하며, 슬럼프에 빠진 작가가 어떻게 착하게 호의를 베풀며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 내용이 나오지요.

끝없이 소설가의 윤리에 대해 성찰하는 이기호이기에, 그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모욕을 당할까봐 모욕을 먼저 느끼며 모욕을 되돌려주는 삶에 대해서.
나는 그게 좀 서글프고, 부끄럽다.
(<최미진은 어디로> 문학동네 P.33)

왜 어떤 사람은 수치를 느끼고, 또 어떤 사람은 염치를 생각하는지.
나는 지금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 문학동네 P.167)


마지막으로 <한정희와 나>와 같은 단편을 통해 그는 환대의 문제를 말합니다. 이기호에게 소설가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려 하고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타인들에게 호의를 베풀곤 하는데 (담배 꽁초를 줍는 노숙자에게 담배를 건네거나, 권순찬 씨에게 도움을 주거나 합니다) 매번 호의는 거절당합니다. 그런 식으로 자신에게 별반 피해가 없는 상황일 때 호의를 건네지만, 막상 자기 삶으로 깊숙이 파고드는 상대에게 무조건 환대하기란 어렵습니다.

내겐 환대, 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느 책을 읽다가 '절대적 환대'라는 구절에서 멈춰 섰는데, 머리로는 그 말이 충분히 이해되었지만, 마음 저편에선 정말 그게 가능한가, 가능한 일을 말하는가, 계속 묻고 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신원을 묻지 않고, 보답을 요구하지 않고, 복수를 생각하지 않는 환대라는 것이 정말 가능한가. 정말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일이 가능한 것인가. (<한정희와 나> 문학동네 P264-266)


예멘 난민 문제도 그렇고 타인들이 우리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때, 무조건 환대라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타인들의 처지에 관심을 가지고 필요하다면 온정을 베푸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합니다. 살다 보면, 우리도 곤경에 처할 때가 있고, 누군가의 호의와 환대가 눈물 나게 고마울 때가 있으니까요.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이기호 지음, 문학동네(2018)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이기호#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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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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