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복지재단(대표이사 정관성)이 지난 해 사업비 예산 30% 가량을 집행하지 못해 불용 처리한 것과 관련, 현장에서는 재단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대전복지재단이 제공한 2018년 결산자료에 따르면, 연구비를 제외한 사업비 예산 36억 1700만원 중 24억8100만원을 사용, 11억3600만원이 잔액 처리됐다. 사업비의 31%가 불용액으로 남은 것.
대전시에서 예산 100%를 지원받는 재단이 이렇게 큰 예산을 다 쓰지 못한 것은 드문 사례다. 자치단체나 수익사업을 하는 기관의 경우, 예상치 못한 수익이 발생해 잔액이 많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1년 전에 이미 사업의 내용과 규모가 정해지고, 의회의 승인까지 거쳐서 예산이 책정된 사업비가 30%이상 남는 것은 '논란'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실제 지난 달 5일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와 (가)복지공감은 '대전복지재단, 개혁이 필요하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대전복지재단의 '불용액'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이들은 "사업비의 30%가 불용액으로 처리된 것은 정상적인 기관운영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 '대전형 복지정책 개발 및 복지생태계 구축 지원'을 목표로 표방하고 출범했지만 출범 이후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복지현장으로 부터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전복지재단 2018년 사업비 집행내역을 자세히 살펴보면, 가장 큰 불용액은 '동복지지원단 운영 사업'이다. 이 사업은 당초 17억9600만원의 예산이 책정됐지만, 실제 집행은 12억1800만원만 집행됐다. 무려 5억7800만원(32%)이 불용처리된 것. 또한 기타현안사업은 3억9700만원의 예산에서 900만원만 사용되어 3억8800(98%)이 불용 처리됐다.
사회복지시설 대체인력지원사업은 4100만원(55%)이, 사회복지지설 경영컨설팅 사업은 1억600만원(18%)이 불용 처리됐다. 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 컨설팅 및 이용자만족도조사 사업도 2000만원(67%) 불용 처리됐다. 이처럼 대전복지재단이 집행해야 할 사업의 대부분이 상당한 잔액을 남긴 것.
이를 두고 복지현장에서는 재단이 제대로 일을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는 것. 이미 사업계획을 시의회에 승인 받아 예산이 책정됐음에도 잔액을 이렇게 많이 남긴다는 것은 제대로 사업수행을 하지 못한 '무능'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복지현장에 있는 한 복지관 관계자는 "불용액이 이렇게 많이 발생했다는 것은 재단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또 불용액이 이렇게 많이 발생하면 중간 점검 등을 통해서 다른 사업에 적극 사용했어야 한다"며 "현장에서는 한 푼이 아쉬운데, 사업비를 이렇게 많이 남기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또한 이렇게 사업을 제대로 하지 못해 상당한 불용액이 발생하는 것은 '재단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와 (가)복지공감은 성명에서 "복지재단의 성격상 복지전문가를 중심으로 인력이 배치되어야 하지만, 실제 사업을 컨트롤하는 재단고위직 중 4명이 퇴직 또는 퇴직 전 공무원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재단이 출범한 초기에는 자치단체 산하 기관에 공무원이 배치되어 자치단체와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경우는 있지만, 복지재단처럼 운영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고위직을 싹쓸이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이러한 구조는 결국 재단 고유의 사업을 고민하기 보다는 대전시만 쳐다보거나 눈치만 보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자치단체 산하기관이 '퇴직공무원 일자리 창출 기관이냐'는 시민들의 냉소가 있다면서 앞으로 설치되어야할 '대전사회서비스원'이나 '새로시작재단'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지 우려가 된다고 지적하고, 대전시의 철저한 관리감독을 주문했다.
대전복지재단 "대전시가 사업변경 요구... 이로 인해 불용액 발생"
반면, 복지재단은 대전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재단이 사업을 안 하거나 못한 게 아니라, 대전시가 하지 못하게 막았다는 취지다.
복지재단은 우선 5억 7800만원(32%)이라는 가장 큰 잔액을 남긴 '동복지지원단 운영 사업'과 관련, 당초 대전시와의 협의에서는 35개 대전 시내 전 복지관을 대상으로 시행하기로 하고, 예산을 편성했는데, 대전시가 '시범사업인데 왜 처음부터 전체를 대상으로 시행하느냐, 일부분만 먼저 하라'는 취지로 제동을 걸어, 15개 복지관을 대상으로만 사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 사업에는 복지기관에 인력을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한 번 고용하면 2년 후에는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으니, 전면 확대 보다는 우선 시범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해 사업이 축소됐다는 것. 이로 인해 불용액이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또한 큰 단위의 불용액 중 기타현안사업이 3억8800(98%)의 잔액을 발생시켰는데, 이 중 1억 6000-7000만 원이 '장애인고용장려금'이라는 것이고, 사회복지시설 대체인력지원사업은 4100만원(55%)의 잔액을 남겨, 액수로는 크지 않지만 불용액 비율이 절반을 넘었다. 이에 대해 재단은 당초 예산을 세울 때는 시비로만 추진할 계획이었으나, 국비가 내려오면서 국비를 먼저 쓰게 되어 시비가 그대로 남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단 대표는 "여러 사유가 있어서 불용액이 발생했다. 예산을 많이 절감한 것도 있다. 그런데 이를 그대로 남겨 놓을 수는 없어서 '복지기금'에 적립하기로 했다"며 "안 쓴 돈을 일부러 쓸 필요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공직자 출신 인사가 너무 많다'는 지적에 대해 재단 대표는 "저는 공무원이 더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은 공공기관의 회계업무도 잘 모르고, 복지현장 전체를 아우르지 못한다"며 "현장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좋다. 그러나 현장에 의해 흔들려서는 안 된다. 현장을 핸들링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재단의 업무는 시와의 조율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한 역할을 하기에는 공직자들이 더 바람직하다.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은 잘 모른다"며 "재단을 운영해 보니 현장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으면, 그 사람들 요구에 '춤만 추다 판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대전시 "복지재단이 사업 못 해 남긴 불용액, 왜 시에 책임 떠넘기나"
이러한 복지재단의 해명에 대전시 복지정책과에서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27일 기자와 만난 대전시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우선 대전시가 재단을 관리 감독의 책임이 있기는 하지만, 사업에 대해 협의를 할 뿐, 예산을 써라 마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업을 하지 못해 불용액이 발생하면, 재단이 판단해서 다른 사업을 하든지, 이월을 하든지 등 재단 스스로 결정할 일이지 왜 대전시의 핑계를 대느냐는 것.
또한 가장 큰 '불용액'을 발생시킨 '동복지지원단 운영'과 관련, 시와 재단이 협의한 것은 당초 79개 동과 5개구에 91명의 인력을 보내는 사업을 15개 거점복지관과 5개구로 보내도록 사업변경을 한 것으로, 이는 당초 예산에서 2억 1000만 원 정도만 줄어든 것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동복지지원단 운영사업' 불용액 5억 7800만원 중 2억 1000만원을 제외한 3억 5000여만 원은 재단이 다른 사업을 하지 않아서 발생한 것이지, 대전시가 제동을 건 것은 전혀 아니라는 설명이다.
특히, 임시직 인력의 '무기 계약직' 전환이 이유라면, 15개 복지관에 보내는 인력도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며, 시에서 그런 이유로 사업에 제동을 걸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억울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