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나온 이름은 모두 가명임을 미리 말씀 드립니다.
"영희야, 오늘 공연 어땠어? 난 콘서트가 처음인데 너무 좋았어."
"응, 오빠. 나도 콘서트가 처음인데 '여행 스케치' 노래 너무 좋네. 오늘 너무 고마워"
최근 S 방송국에서 기획하고, 방송하는 예능 중에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 K'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열혈 시청자까지는 아니어도 채널을 돌리다가 방송이 나오면 아내와 난 예전 향수에 젖어 한참을 보고는 한다.
매주 일요일 늦은 밤에 시작하기 때문에 난 다음날 출근을 위해 방송 중간에 늘 먼저 잠을 청한다. 하지만 지난주에는 방송을 끝까지 보게 되었다. 그 이유는 함께한 패널 중에 '여행 스케치'라는 그룹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와 내게 '여행 스케치'라는 그룹은 '처음', '설렘', '그리움' 등과 같은 여러 감정들과 경험들을 생각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아내와 난 장거리 연애를 시작하면서 자주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매주는 힘들어도 2주에 한 번 만나려고 300Km나 되는 거리를 극복하며 연애를 이어갔다. 한 번은 내가 아내를 만나러 가면, 다음 번은 아내가 날 만나러 왔고, 또 한 번은 중간 정도의 지역에서 만나며 그리움을 채워 나갔다. 90년 후반의 교통편이라고 해봤자 버스가 전부였고, 이른 시간에 버스를 타고 4시간을 달려가서 만나고 헤어짐이 아쉬워 10시간 이상을 붙어있고는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니던 학교가 대학로 근처이다 보니 대학로에서 하는 연극이나 공연을 함께 보러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아내가 올라오는 주말을 맞춰서 볼만한 공연을 다리품 팔아 미리 알아봤다. 그렇게 아내가 서울에 올라왔을 때 우린 내가 미리 알아본 공연장을 찾았다. 그때만 해도 스마트폰이 있지도 않았고, 인터넷을 통해 예매를 하는 시스템도 없었을 때라 아내를 만나 바로 공연장을 찾아 현장 예매를 했다. 그렇게 함께 예매하고 본 공연이 '여행 스케치'의 콘서트였다.
우리 둘 모두 처음 본 콘서트였고, 공연이었다. 여행스케치라는 그룹도 '별이 진다네' 정도의 노래는 알았지만 다른 노래는 전혀 알지 못한 체 공연장을 찾았다. 처음 들어선 공연장은 영화관과는 또 달랐고, 소극장이다 보니 무대와 관객석도 무척 가까웠다. 그렇게 처음 찾은 공연장에서 열창하는 가수와 함께 호흡한다는 게 어떤 건지 알게 됐다.
작은 소극장이었지만 어떤 큰 무대보다 멋진 공연으로 이어졌고, '여행 스케치'의 모든 노래가 가슴속에 깊게 퍼졌다. 눈만 보고 있어도, 손만 잡고 있어도 설레던 연애시절이라 그 감동은 배가 되어 공연장을 나온 우리는 공연에서 받은 감동으로 그날을 꽤 오랜 시간 얘기했었다.
"영희야, 오늘 공연 어땠어? 난 콘서트가 처음인데 너무 좋았어."
"응, 오빠. 나도 콘서트가 처음인데 '여행 스케치' 노래 너무 좋네. 오늘 너무 고마워."
"다음에도 '여행 스케치' 콘서트 또 오자. 아직도 마지막 노래의 여운이 남아있는 거 같아."
그 후로도 연애 시절 여러 차례 다른 공연장도 찾았지만 그날의 감동은 '처음'이라는 신선함을 품은 예쁜 포장이 더해져서 그런지 다른 공연에서 찾을 수 없는 무언가가 남아있었다. 또, 그날의 감정 또한 잊히지가 않았다. 결혼 후 한 동안은 공연장을 찾지 못하다가 아이들이 커가면서 가끔 콘서트, 뮤지컬, 연극 등을 보기 시작했다.
지금 사는 고양시로 이사를 오고 나서는 고양 문화재단에서 하는 좋은 공연 프로그램을 알고 나서 몇 년 전부터 아내와 난 1년에 5~6번은 꼬박꼬박 공연장을 찾았다. 연극, 콘서트, 클래식 음악회 등 공연장을 찾는 스펙트럼을 넓혔다. 모든 공연들이 저마다 오는 감동이 달랐고, 마음에서 오는 울림이 달랐다. 하지만 아내와 처음 찾았던 '여행 스케치' 콘서트에서 느꼈던 그 감동은 느낄 수가 없었던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작년 초에 매 시즌 즐겨보는 슈가맨을 보던 중 오랜만에 '여행 스케치'를 보게 됐다. 그들은 최근에 활동이 없는 슈가맨으로 소환되었고, 무대를 조용히 채운 그들의 노래(별이 진다네)로 그 순간 난 그 오래전 '처음'이라는 추억을 소환했다.
그들의 노래는 그 어린 시절 아내와 찾았던 공연장의 '설렘'을 고스란히 전해줬다. 아내와 난 나란히 앉아 TV를 보던 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20년이 훌쩍 넘은 우리의 '첫 설렘 콘서트'를 다시 끄집어내 이야기 꽃을 피웠고, 그날도 노래보다 우리들 얘기에 집중하며 하루가 저물었다.
며칠 전 S 방송사의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 K'라는 프로그램에서 그 반가운 얼굴 '여행스케치'가 다시 방송에 나왔다. 1년 만에 보는 그들이 너무도 반가웠고, 이제는 함께 나이 드는 모습이 더욱 신기해 보였다. 그 방송 이후로 요즘 아내는 콧노래로 그들의 노래를 종종 불렀고, 나의 자주 듣는 음원으로 어느새 그 들의 리스트가 상위를 점령했다.
신기하게도 그들의 노래를 플레이할 때마다 살짝 오는 '전율'은 아내와 한창 연애하던 20대의 마음을 엿보게 했다. 그 감정의 여운도 노래를 듣는 내내, 노래를 들으며 그 시절을 생각하는 내내 마음을 그곳에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음악의 힘은 대단한 것 같다. 풋풋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항상 애틋했던 감정을 가지고 있을 때 아내와 봤던 첫 공연. 그 시절의 추억과 느끼던 감정까지 고스란히 함께 담아 공연의 감동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것 같다. 여행 스케치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20년이 훌쩍 넘은 그 시절에 대한 추억을 꺼내 볼 수 있는 일이 너무도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그날 여행스케치 공연의 완성은 나와 아내의 행복했던 시간이지 않았을까. 결국 모든 추억과 감동의 중심에는 그 시절 가장 소중했던 사람이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조금씩 빛이 바래도 추억이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 건 그날의 감동과 감정을 고스란히 담았던 사진, 노래, 음악 등이 함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내가 추억을 담은 글들을 쓰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기억하고 싶었던 나의 이야기, 가족의 이야기를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하고 싶고, 느끼고 싶어서 말이다.
오늘도 내 플레이 리스트에 '여행 스케치'의 <초등학교 동창회 가던 날>이 내 귀로 들어와 마음을 적신다. 그런데 이 노래 제목은 원래 초등학교가 아니고 국민학교였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하하 그래서 난 옛날 사람인가 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개인 브런치에도 함께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