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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장주연 탈시설장애인당 서울시장후보
 김진석, 장주연 탈시설장애인당 서울시장후보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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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장애인당의 정책요구안을 설명하러 우리 당 후보들이 여·야당의 서울시장 후보 사무실을 모두 찾아다녔어요. 당내 경선 전인데, 오세훈 국민의 힘 서울시장 후보 사무실이 구의역 근처에 있더라고요. 그런데 오세훈 후보의 사무실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1층에서 돌아나왔어요.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었거든요."

서울시장 후보를 만나기는커녕 후보의 사무실로 가는 길마저 험난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직전에 해산하는 가짜정당, 탈시설장애인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김진석(54) 후보는 "이게 우리의 현실"이라고 읊조렸다. 탈시설장애인당은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서울시'를 위해 장애인들의 요구안을 정책에 반영하려고 지난 1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가 만든 위성정당이다.

탈시설장애인당은 ▲ 탈시설 권리 ▲ 장애인 포괄적 재난 지원 ▲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 이동권 ▲ 교육권 ▲ 자립생활 ▲ 의사소통 ▲ 문화예술 ▲ 발달장애인 ▲ 장애여성 ▲ 건강권 등 11개 영역의 정책요구안을 내걸고 11명의 장애인 후보를 내세웠다. 뇌병변장애인인 김진석 후보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1986년부터 28년간 사회복지법인의 장애인시설에 살았다. 한 방에 적게는 2명에서 많게는 10여 명까지 모여 살아야 했던 시설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김진석 후보는 미간을 찡그렸다. 외출이 금지되는 등 철저하게 통제된 삶을 살았던 시설의 장애인들은 답답함과 분노를 서로에게 풀었다. 식사 시간 때 서로에게 식판을 던지고 주먹다짐을 하고, 심지어는 칼부림을 하기도 했다. 시설의 삶을 경험한 김 후보는 새로운 서울시장에게 '탈시설 정책'의 필요성을 말하고 싶었다.

장애 여성의 문제를 알리고자 나선 장주연(26) 후보도 있다. 뇌병변장애인인 그는 왜 여성장애인의 목욕지원을 남성 활동보조인이 하는지, 여성장애인의 기저귀를 갈 때 왜 아무렇지도 않게 공개된 장소에서 하는지, 장애 있는 여성은 수치심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따져 묻고 싶어 후보가 됐다.

11일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김진석·장주연 후보는 "우리는 가짜정당의 가짜후보"라면서 "우리(장애인)의 현실을 직접 알리고 싶어 가짜 정당까지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탈시설이 백신"
 
 김진석 탈시설장애인당 서울시장후보
 김진석 탈시설장애인당 서울시장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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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는 취약계층에게 특히 가혹했다. 장애인거주시설에 모여 사는 장애인들은 집단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2020년) 12월 한 달간 경기 안산 평화의집(입소자 47명 중 19명 감염), 서울송파 신아재활원(입소자 117명 중 56명 감염), 경기 파주 아름다운누리(입소자 49명 중 31명 감염) 등 중대형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집단감염 사례가 발생했다.

"시설에서는 장애인들이 한 방에 뒤엉켜 살아요.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니까 한 명이 아프면 그 방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아픈 거예요. 저도 시설에 있을 때는 유행병이 돌면 다 걸렸어요. 신종플루, 아폴로 눈병 다 걸렸어요. 지금은 자립해서 혼자 사니까 코로나도 무섭지 않았어요. 내가 조심할 수 있으니까요. 장애인에게는 탈시설이 백신이에요."

김진석 후보는 집단생활을 하는 '장애인거주시설'이 코로나 발병의 가능성을 높인다고 강조했다. 장애인들에게 코로나 확진은 지나가는 감염병이 아니라 곧 죽음을 뜻한다고도 했다. 실제 질병관리청의 '코로나19 장애인 확진자 현황(2020년 12월)'을 보면, 장애인 코로나 확진자의 사망률은 7.49%로 비장애인 확진자 사망률 1.2%에 비해 6배 이상 높았다. 코로나 확진자 중 장애인의 비율은 4%였지만, 코로나로 사망한 사람 중 장애인의 비율은 21%에 달했다.

'탈시설'한 김 후보는 현재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주공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다. 낮에 활동보조인이 가사노동을 하고, 남은 시간은 그 혼자 지낸다. 20대부터 28년간 누려보지 못한 자유다. 김 후보는 "다른 장애인들에게 혼자 잘 살 수 있다고 알려주고 싶다. 탈시설 정책이 왜 필요한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서울시장이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 후보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장주연 후보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부모님, 언니·오빠와 살고 있는 장 후보는 "올해 목표가 자립"이라고 했다. 그는 "부모님은 내가 잘 살 수 있을지 마냥 걱정하지만, 사실 장애인의 자립은 가족이 책임져야 하는게 아니잖나"라고 말했다. 장 후보는 "결국 지자체를 비롯해 그 사회가 어떤 장애인정책·시스템을 갖추고 있느냐가 장애인 자립의 핵심"이라고 했다.

20대 여성, 비혼, 장애인. 장 후보는 서울에서 '젊은 비혼장애여성'으로 자립해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서울시장 후보들에게 설명하고 싶어했다.

"저는 비혼주의자이지만, 시설에 살면서 임신하고 출산할 권리를 박탈당하는 장애여성들을 많이 봤어요. 장애여성의 동의 없이 불임수술을 하고 자궁적출을 하는 거죠.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놀라지만, 저는 이런 사례를 너무 많이 보고 들었어요."

대학생 때, 장애인권동아리를 하며 다른 장애인의 삶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장 후보는 지난해(2020년)부터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립해서 살고 있거나 자립하려는 장애인들을 상담하며, 무엇이 이들의 자립을 가로막고 있는지 배웠다. 

"시설 밖에 나와 살려면, 무엇보다 안전한 집이 필요해요. 장애여성은 주거를 선택할 때 고려할 게 많아요. 휠체어로 아파트·빌라 입구에 들어갈 수 있는지도 봐야 하고요. 아무래도 버스보다 지하철을 많이 타게 되는데, 집 근처 역에 엘레베이터가 설치되었는지도 살펴야 해요."

현재 서울 은평구 구산동에 살고 있다는 장 후보는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집을 고르느라 가족과 엄청나게 애먹었는데, 정작 이사하고 보니 집 근처 구산역에 엘리베이터가 없었다"라며 "결국 매일 사무실을 오갈 때 지하철 리프트를 타는데, 그때마다 사고가 날까 무섭다"라고 말했다.

"선거법 위반? 노역 전에 서울시장 후보들 만나고 싶다"  
 
 장주연 탈시설장애인당 서울시장후보
 장주연 탈시설장애인당 서울시장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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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가짜후보'라고 소개한 이 두 후보는 11개의 정책요구안에는 '진심'을 담았다고 힘을 줬다. 이들은 서울시장의 당선을 꿈꾸지 않았다. 다만, 서울시장 후보들에게 이들이 호소한 장애인 정책이 전달되기를 바랐다. 정책집을 들고 여야 각 당의 시장후보 사무실을 찾아갔지만, 송명숙(진보당)·신지혜(기본소득당) 서울시장 후보 외에 이들을 만나준 서울시장 후보는 없었다.

서울 선거관리위원회(아래 서울 선관위)도 이들에게 엄격했다. 서울 선관위는 지난 19일 탈시설장애인당에 공문을 보내 당(탈시설장애인당) 명칭을 사용하는 게 정당법 제41조(유사명칭 등의 사용금지)·제59조(허위등록신청죄) 위반이라고 경고했다. 정당의 명칭이나 후보자의 성명을 명시한 현수막 등 시설물을 설치·진열·게시·배부하는 행위 등은 공직선거법 제90조(시설물 설치 등의 금지) 및 제256조(각종제한규정위반죄)를 어긴 거라고도 했다.

탈시설장애인당은 실제 정당이 아니라, 장애인 정책 요구안을 홍보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호소했지만, 소용 없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공식 개시일인 3월 25일 전까지 활동하다 자진해산 한다고 해도, 선관위는 법적 대응을 경고했다. 

"선관위가 끝까지 우리를 선거법 위반으로 몰아세우고 벌금을 내라고 한다면, 저는 벌금 대신 노역형을 살 생각이에요. 그런데 그 전에 꼭 좀 서울시장 후보들을 만나고 싶어요. 특히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만나고 싶어요.

얼마 전, 안철수 후보가 퀴어퍼레이드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식으로 말했잖아요. 저는 그 말이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소수자를 거부하는 것처럼 들렸어요. 우리는 살아갈 권리가 있고 존재할 권리가 있어요. 안 후보를 만나서 우리의 존재할 권리를 부정하는 건지 꼭 물어보고 싶어요.

물론 오세훈(국민의 힘)·박영선(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에게도 할 말이 많아요. 특히 오 후보는 2006년~2011년에 서울시장을 했잖아요. 당시 오 시장이 마련한 장애인 관련 정책은 장애인콜택시 정도가 전부에요. 장애인에 무지했거나 아예 관심이 없었던 거죠. 다시 서울시장을 하겠다고 나선 오세훈 후보가 지금은 장애인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관심은 생겼는지 궁금해요. 

박영선 후보가 발표한 서울시 정책에도 아쉬움이 많아요. 장애여성과 관련한 이야기가 없었거든요. 장애인거주시설에 있는 장애여성도 서울 시민으로서 권리가 있고 그 권리를 인정받아야 하는 존재잖아요. 각 후보들이 장애여성을 실제로 만나본 적은 있는지 우리의 삶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직접 만나서 묻고 싶어요."


장주연 후보가 말했다.

#가짜정당#탈시설장애인당#서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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