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유적지가 있는 마재마을에서 고개를 넘어 좌측으로 꺾어가면 능내역이라 써진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열차가 다니지 않았던 폐역이지만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중앙선 열차를 타고 능내역을 거쳐갔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지금은 KTX도 지나가고 수많은 산들을 터널로 뜷어 빠르고 편하게 갈 수 있는 중앙선이지만 예전엔 구불구불한 철로를 힘겹게 넘어갔던 걸로 기억한다. 비록 느리지만 기차는 강변에 바짝 붙으며 시시각각 한강의 아름다움을 훑으며 지나간다. 나는 창가에 앉아 한강의 모습을 지켜보며 사색에 빠졌던 추억을 다시금 느끼고 싶었다.
능내역으로 진입하는 입구는 벌써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진을 치고 (혹자는 삼각대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기차가 다닐 시절에도 이토록 붐비지 않았건만 기대치도 못한 모습에 깜짝 놀랐다. 간이역이지만 조그마한 주차장을 구비하고 있었다. 폐역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황량함 보단 가족, 연인들이 오순도순 모여 옛 추억을 되짚는 듯했다.
능내역의 간판은 녹이 슬었고,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히 자랐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옛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감성이 오지 않았을까? 작은 역 내부에는 예전 모습을 짐작케 하는 흑백사진과 하루에 4차례 다녔던 시간표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흑백사진 속에 있는 사람들은 어디서 무얼 하며 지내고 있을까? 문득 궁금증이 밀려왔다.
역의 문을 열고 철길이 지나가는 곳으로 나가본다. 이젠 기차는 다니지 않지만 철길 바로 옆에 자전거 도로가 반듯하게 조성되면서 자전거를 타고 능내역을 지나치는 바이크족들이 심상치 않게 보인다. 사람들은 저마다 철로에 서서 사진을 찍으며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다.
능내역 구석에는 우체통도 있으니 자신에게 쓰든 혹은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에게 능내역에서 느낀 감성을 적어서 보내보는 것도 좋은 일인 듯하다.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문득 과거의 좋았었던 기억을 되짚으러 노력한다. 세월은 지날수록 변화는 빨라지고 풍경들은 점점 옅어져만 간다.
속도와 시간이 중시되고, 직선화를 거쳐 낡은 역들은 시간이 멀다 하고 사라지고 있다. 이런 간이역들의 역할은 끝났지만 우리 추억의 매개체로 삼아 부디 오래도록 보존되길 바란다. 한동안 감성에 오랫동안 빠져 있었다. 이번엔 다시 한강의 하류, 팔당 쪽으로 돌아간다.
우연찮게 팔당터널로 이어지는 6번 국도가 아니라 한강과 바짝 붙어있는 왕복 2차로인 다산로를 타게 되었는데 팔당댐을 거쳐 산에 맞닿아 있는 강의 우람한 자태를 몸소 느끼니 절로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에 숙소를 잡고 해 질 녘의 광경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길 끝쪽에 자리한 팔당유원지의 수많은 카페들로 인해 그 정취가 깨졌다. 이제 다음 목적지인 남양주 시립 박물관으로 이동할 시간이다. 팔당역 바로 옆에 있는 자전거 렌탈숍들이 눈에 들어온다. 추측컨대 팔당역까지 전철을 타고 와서 남한강 자전거길을 따라 두물머리나 운길산역 쪽으로 이동하는 듯했다.
그 팔당역 바로 옆에 박물관이 나름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팔당역 부근이 꽤나 번잡해서 박물관에도 어느 정도 사람이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 기대는 입구에서부터 무너져 내렸다. 필자 말고는 일행은 한두 팀 밖에 되질 않았다. 박물관 팸플릿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텅 비어 있었다.
안내 직원에게 물어봐도 박물관 팸플릿은 없다고 하고, 남양주 관광안내 지도만 심드렁하게 내준 게 다였다. 현재 2층은 운영하지 않고 1층 전시실만 관람할 수 있다고 알려준다.
보통 어느 국가나 도시를 여행할 때마다 그곳의 대표 박물관을 한 번씩 살펴본다. 박물관마다 화려한 전시품이 있는 경우도 있고, 거대한 넓이로 사람을 기죽이는 곳도 더러 있지만 박물의 수준에 따라 그 나라나 도시의 문화적 품격을 살펴볼 수 있는 지표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남양주의 대표 박물관을 어떨지 차분하게 살펴본다.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자 "한강을 끼고 있는 군사적, 경제적 요충지, 왕실의 요람, 학문의 본고장 남양주"라는 말이 나에게 거창하게 다가온다. 특히 왕실의 요람이란 말은 확실한 것 같다. 세조, 광해군, 고종, 순종 등 수많은 왕과 왕실의 묫자리가 대거 남양주에 분포해 있으니까. 서울에서 멀지 않을 뿐더러 풍수지리상으로도 괜찮은 곳임은 확실하다. 조말생, 정약용 선생도 남양주에 마지막 안식처를 두고 그 발자취를 진하게 남겼다.
박물관을 천천히 살펴보면서 남양주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저력은 존재하지만 과연 이것을 남양주시에서는 잘 활용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박물관의 주 역할은 역사적인 유물을 보존하고 대중에게 문화적으로 기여를 해야 한다고 봤을 때 남양주 시립 박물관에서는 단지 과거의 화려했던 역사에만 의존하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대중들에게 좀 더 사랑받는 박물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음 목적지를 향해 떠난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일주일 후 작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ugzm87와 블로그 https://wonmin87.tistory.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