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목요일 시간이 난 동생들과 만나 시골집 뒤꼍 밭둑에 자라난 머위 순을 땄다. 겨우내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지켜낸 뿌리에서 여린 줄기가 초록 잎을 거느리며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머위는 쑥보다 먼저 온다.
머위장아찌도 담그고, 간장 양념에, 된장으로도 무쳐 먹는 머위는 긴 겨울을 건너온 사람들에게 특별한 맛을 선물하는 식물이다.
머위를 끓는 물에 소금 넣고 데치면 초록은 진해져 양념에 무치기 전부터 식욕을 돋운다. 머위는 쓰다. 쓴 나물이 좋아지면 나이가 든 것이라는데, 나는 대체로 쓴 음식을 좋아한다.
머위는 요리법에 따라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초봄부터 몇 차례 머위 순을 따 먹다 보면 쑥쑥 자라는 잎의 성장을 먹는 입이 따라가지 못한다.
아버지가 손수 심었던 머위
잎이 거칠어지기 전에 해두는 일이 있다. 적당히 성장했을 때 잎과 줄기를 데쳐 말리는데 머위 줄기는 두꺼워 말리는 일이 번거롭다. 이때 식품 건조기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한겨울에 말려둔 머위를 꺼내 물에 불렸다가 마른 머위 나물을 하면 또한 별미다. 말려 두었던 머위로 머위 차를 만들어 마시기도 한다는데, 아직 머위 차까지는 도전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꿈틀거리는 여름, 머위도 마찬가지다. 작은 우산만큼 커 버린 머위 잎은 이제 먹지 않는다. 줄기만 먹는다. 머위 대 먹는 시기가 오면 여름이다.
머위는 더위에 약하다. 한여름 땡볕에 축 늘어져 죽은 듯 보인다. 아침나절에 따 놓은 줄기의 껍질을 벗기는데 처음엔 멋모르고 벗겼다가 손이 새카맣게 되는 줄도 몰랐다. 살짝 데쳐서 벗기면 손도 그렇고 껍질도 잘 벗겨진다.
머위는 머위 탕으로 정점을 찍는다. 멸치와 건새우, 말린 표고버섯으로 국물을 낸 육수에 머위 대와 찧은 마늘, 불린 쌀가루와 들깻가루를 넉넉하게 넣고 끓이다가 붉은 고추와 대파로 고명 올리고, 참기름 한 방울 넣어 완성한 머위 탕은 특히 아버지가 좋아하신 음식이었다.
우리 세 자매가 그 쓴맛을 사철 즐겨 먹게 되고, 해마다 잊지 않고 연례행사처럼 봄마다 머위를 따러 시골집을 드나드는 덴 이유가 있다.
한 십여 년 전 아버지가 밭에 머위를 심어 아침마다 농산물 공판장에 낸 적이 있다. 그때 우리는 머위를 몰랐다. 가끔 장에서나 보았던 나물 정도였다. 아버지는 머위 뿌리를 밭에 심었고 그것을 본격적으로 가꾸기 시작했다. 겨울엔 비닐하우스를 지어서 관리했다. 우리가 겨울에 먹는 머위는 이렇게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머위들이었다.
평일에는 돕지 못했고 주말 아침이면 어김없이 머위 순을 따 포장까지 해서 공판장에 냈다. 시세에 따라 달랐으나 이른 봄 수요가 늘 때는 제법 가격이 나갔다. 아버지는 몇 년인가 그렇게 머위를 가꾸고 생산하고 수입을 창출하며 경제활동을 하셨다. 힘에 부쳐 더 많은 양의 농사를 지을 수 없을 때까지 머위는 우리 곁에 있었다. 아버지로 인하여 머위를 알게 되었고, 다양한 머위 요리법을 검색하며 실컷 머위에 빠져 살았다.
아버지의 손을 떠난 머위는 자라지 않았다. 저절로 자생하는 머위하고 달랐다. 관리하지 않으니 모두 죽었고 따로 아버지가 우리를 위해 심었나 싶은 머위들이 집 주변에서 자라기 시작했다.
우리 세 자매는 해마다 봄이면 머위 순을 기다린다. 이제는 안 계신 아버지를 추억하고 그리워하듯 양지바른 언덕에 앉아 머위 순을 따며 아버지를 떠올리기도 하고, 슬며시 눈물도 비친다.
머위는 봄의 시작을 알리는 전령사다. 그 쓴맛을 기억하며 사람들은 머위를 먹기 시작한다.
"요즘 입맛이 통 없더니 머위를 먹으니까 쪼매 살만하다."
"병원에서 입원하고 나온 언니가 젤로 먹고 싶은 것이 머위라더니만!"
"봄엔 머위지. 머위를 먹어 줘야 봄인가 보다 한다니께."
"머위 어떻게 먹냐고? 고추장에 무쳐 봐 기막혀!"
쓴맛에 길든 자신들의 입맛을 한껏 자랑하는 봄, 머위가 빠질 수 없는 이유다. 씁쓰름한 머위를 실컷 먹고 나면 봄 한 철이 지난다. 우리가 먹은 쓴맛의 머위, 제철에 먹어둔 머위가 한해를 건강하고 힘 있게 건너갈 수 있도록 위안을 주는 음식임이 분명하다.
작년엔가 미용실을 운영하는 어릴 적 친구에게 머위를 잘라다 주었더니, 할머니 생각이 난다고 했다.
"나는 말여, 머위를 먹어야 봄을 보낸 것 같아야. 어릴 때 할머니가 머위 순 따다 무쳐주면 고것이 그렇게나 맛나서 두고두고 잊지 않고 해마다 찾아 먹는다니까."
음식은 마음을 잇는 매개체다. 어떤 음식이든 자기만의 방식으로 먹고 기억한다. 우리 세 자매에게 머위가 그렇듯이.
딱히 머위 때문만은 아니나, 봄을 기다린다. 봄볕 쏟아지는 밭둑에 앉아 머위 순을 뜯으며 이제는 영영 봄을 맞을 수 없는 아버지를 생각한다. 씁쓰름한 머위 순 무침을 씹으며 혹여 아버지도 이런 쓴맛이 좋아 그 많은 식물 가운데 머위를 재배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머위의 쓴맛이 달게 느껴질 때쯤엔
머위의 효능은 참으로 다양한데, '머위는 인간들뿐만 아니라 곰들도 좋아하는 식물로 겨울잠에서 깨면 가장 먼저 먹는 식물'이라고 한다(나무위키 참고).
머위는 몸에 해로운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베타카로틴 성분은 나트륨을 배출시킨다고 하며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고 고혈압, 동맥경화, 고지혈증 등 심혈관질환, 당뇨 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뼈가 약해지기 쉬운 갱년기 여성이나 노인, 성장기 골격 형성에도 도움을 준다고 하니, 아이나 어른, 남녀노소 다 즐겨 먹을만한 식물임이 틀림없다.
고기를 많이 먹어 탈은 나도 식물을 먹어 몸에 탈이 나는 경우는 드물다. 아버지는 이렇게나 많은 머위의 효능을 다 알고 계셨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식이 여럿이니 당신이 좋아하고 좋은 성분이 많은 식물이어서 집 주변에 심어 놓은 것은 아닌가 싶다. 누가 일부러 뽑아 버리지만, 않는다면 계속 살아남을 식물이란 것을 알고 계셨을 것 같다.
봄에 채취한 머위가 해마다 자식들 입에 들어가기를 바라고 머위를 심어 집 주변을 초록으로 덮어 놓은 것은 아닌가 싶게 올해도 여전히 머위는 입안을 쓴맛으로 가둔다.
머위는 쓴맛으로 먹는다. 어린잎도 쓰다. 하지만 그 쓴맛을 우려내지 않는다. 쓴맛이 달게 느껴질 때쯤이면 머위의 쓴맛은 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