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에 위치한 식품의약품안전처 전경. 2017.9.28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에 위치한 식품의약품안전처 전경. 2017.9.28 ⓒ 연합뉴스
 
지난 2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대변인실 직원의 속국 발언을 사과했다. 식약처는 입장문을 통해 "한 직원이 언론사에 중국산 김치 관련 정책을 설명하면서 한국을 속국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었는데,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라며 "직원의 잘못된 발언은 식약처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중국산 김치의 위생 문제가 끊임없이 논란이 되는 가운데, 최근에는 중국인 굴착기 기사가 알몸 상태로 대형 구덩이에 들어가 배추를 절이는 동영상이 퍼져 우려를 확산시켰다. <뉴데일리> 기자가 식약처 대변인실에 전화를 걸어 식약처의 대응과 중국의 무관심에 관해 질문하는 과정에서, 문제의 속국 발언이 대변인실 직원에게서 튀어나왔다.

<뉴데일리> 기자가 '식약처가 외교부를 통해 중국 해관총서 수출입식품안전국에 문제 해결을 요청했는데도 중국이 1년 넘게 무시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취지로 발언하자 이에 대해 답변하는 과정에서 문제의 발언이 돌출했다.

3월 31일 자 <뉴데일리> 기사 <'중(中) 알몸김치' 관리책임 식약처 대변인실..."중국은 대국, 한국은 속국" 황당 발언>에 따르면, 3월 22일 <뉴데일리>와 한 전화통화에서 이 신문 기자가 "우리 정부가 보낸 공문에 중국이 회신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하자, 대변인실 직원은 "사실, 역으로 생각하면 중국이라는 나라가 선진국이면서 좀 거대한 나라잖아요"라며 "힘 있는 국가라는 말이에요"라고 한 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옛날로 치면 (한국이) 속국인데, 속국에서 우리나라(중국)에 있는 제조업소를 얘네들이 해썹(HACCP,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인증 받으라고 그러고, 관리를 대신해 줄 테니까 안전관리하라고 그러면 기분이 좋을까요? 별로 좋지 않지.
 
옛날로 치면 속국에 불과한 한국이 김치 위생관리를 요구하면 중국의 기분이 좋겠느냐고 답변한 것이다. 한국의 요구가 중국을 불쾌하게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뉘앙스의 발언이다. 중국의 무성의한 대응을 합리화해주려 했다는 인상을 풍길 만한 말을 했던 것이다.

대변인실 직원은 곧바로 실수를 인식했다. 위 기사는 "A씨는 통화가 끝난 뒤 논란을 의식한 듯 재차 전화를 걸어와 '속국' 발언과 관련해 보도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그의 발언은 보도됐고, 식약처가 사과 입장문을 내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다.

조선, 내치와 외교는 자주

김치 위생에 관한 중국 해관총서의 대응이 다소 과장되게 보도됐다 해도, 식약처 직원의 발언은 문제가 되고도 남는다. 국민 편에 서서 중국의 성의 있는 태도를 촉구해야 할 식약처 직원이 속국을 운운하며 중국의 입장을 옹호하는 것은 한국인이기에 앞서서 공직자로서도 부적절한 태도다.

또 그 직원이 말한 역사도 실제로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최근 백여 년간 잘못 퍼져나간 그릇된 역사관에 입각한 발언일 뿐이다.

한-중 관계에서 사대주의가 가장 심했던 시기는 조선시대다. 이 시기에 조선은 처음에는 명나라를, 나중에는 청나라를 상국(上國, 황제국)으로 받들었다. 이때의 조선은 신하국이나 속국 혹은 번속국으로 불린다.

조선이 속국(屬國)이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동양의 속국을 서양의 종속국(vassal state)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서양 국제법이 동아시아에 유입된 19세기 이후로 '배설 스테이트'(vassal state)가 속국이라는 한자어로 번역되기는 했지만 이는 정확한 번역이 아니었다.

속국과 배설 스테이트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1973년에 나온 저명한 국제법 교과서인 이병조·이중범 교수의 <국제법 신강>은 배설 스테이트를 이렇게 설명한다.
 
종속관계의 구체적인 내용은 종주국의 국내법에 의하여 규정되므로, 그 국내법에 의해 독립성이 인정되는 범위에서 대내적으로 본국(종주국)의 통치권을 벗어나며 대외적으로 행위능력(외교능력)을 갖는다. 종주국이 체결한 조약은 반대 규정이 없는 한 당연히 종속국에도 적용되고, 종주국이 전쟁을 개시하면 종속국도 당연히 전쟁 상태에 들어간다.
 
이처럼 근대 서양에서 발달한 종속국 개념은 종주국의 국내법에 의해 주권이 제약되는 국가를 지칭한다. 이런 유형의 관계가 한국과 중국 사이에 존재한 적은 없었다. 조선이 갖고 있던 속국 지위는 배설 스테이트와는 무관했다.

중국에서 한나라가 출현한 이래로 한국 군주가 중국 황제의 책봉을 받고 조공을 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책봉은 그저 형식에 불과했다. 중국 황제가 한국 군주를 임명하는 게 아니라, 한국에서 옹립된 군주를 외교적으로 승인하는 절차였다. 중국의 책봉을 받지 못한 한국 군주는 중국과 외교를 하기 힘들었을 뿐, 여타 국가와의 외교에서는 법적인 제약이 없었다.

또 조공을 하면 회사(回賜, 답례)가 수반됐다. 조공과 회사는 한쪽은 바치는 형식, 다른 쪽은 하사하는 형식의 물물교환이었다. 한국이 조공을 하면 대개의 경우는 중국이 훨씬 많은 회사를 했다. 일반적으로 한국이 흑자를 봤던 것이다. 이 같은 무역 구조는 중국이 한국을 동맹관계로 끌어들이는 유인책이 됐다.

실질이야 어땠든 간에 중국의 책봉을 받고 조공 형식으로 무역을 했으니, 속국의 역사를 자랑스러워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속국 지위가 한국 왕조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한중관계를 정리한 김한규 서강대 교수의 <한중관계사> 제1권은 책봉 조공 관계로도 불리는 한·중 사대관계의 실체를 이렇게 정리한다.
 
'책봉 받은 군주가 통치하는 국가'와 '책봉하는 군주가 통치하는 국가', '조공하는 군주가 다스리는 국가'와 '조공 받는 군주가 다스리는 국가'가 평등할 수는 없다. 그러나 책봉과 조공은 그 행위 주체의 국가들에게 동심원적 세계질서 안에서 각각 다른 국가적 위상을 차등적으로 제공할 뿐, 어느 특정한 국가의 주권이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처럼 평등한 국제관계가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 동아시아에서는 국력 차이에 따라 상국 혹은 속국, 황제국 혹은 신하국의 위상을 부여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속국이나 신하국의 독립성을 침해하지는 않았다. 속국은 상국의 국제적 패권을 따를 뿐, 자주성을 침해당하지는 않았다.

조선이 속국인 동시에 자주국·독립국이었다는 점은 청나라의 공식 표명에서도 증명된다. 1866년에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를 오해한 청나라 주재 프랑스 공사가 청나라 총리각국사무아문(외교부)에 '프랑스 선교사가 조선에 갈 수 있도록 비자를 발급해달라'고 요청하자, 총리각국사무아문은 "조선은 청국의 속방(속국)이지만 내치·외교는 그 자주"라며 거절했다.

같은 해에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에 침투했다가 평양 관민들의 공격을 받고 침몰하자, 청나라 주재 미국 공사가 청나라에 중재를 요청했다. 그러자 총리각국사무아문은 "조선은 비록 속국이기는 하지만, 모든 정치·법률은 그 나라가 주체적으로 결정한다"고 응답했다. 이 같은 공식 표명들은 동양의 속국이 근대 서양의 배설 스테이트와 전혀 달랐음을 보여준다.

중국에 할 말은 했다

식약처 직원은 '속국이 위생관리에 대해 요구를 하면 중국의 기분이 좋겠느냐'는 식으로 답변했다. 이 발언은 한-중 관계에 대한 그의 개인적 판단을 반영한다. 한국 왕조들이 중국에 대해 싫은 소리를 하지 못했을 거라는 인식이 깔린 답변이다.

그것 역시 실상과 다르다. 조선 건국 초기에 정도전이 명나라를 겨냥해 '전쟁도 불사할 수 있다'는 식으로 발언한 이유 중 하나는 명나라가 '해마다 3회' 하던 무역을 '3년에 1회'로 줄이려 했기 때문이다. 조공무역에서는 대체로 황제국이 적자를 봤기 때문에 무역 횟수가 줄면 조선의 흑자가 감소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정도전 정권이 정면 대항했던 것이다.

정도전을 죽인 뒤 친(親) 명나라 노선을 표방한 태종 이방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명나라에 대해 할 말은 했다. 이성계의 정적인 이인임이 조선왕실의 조상이라고 잘못 기록된 대명회전(명나라 행정법전)의 정정을 요구하고자 이방원 정권은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했다. 이방원 이후의 왕들도 마찬가지였다. 명나라가 태조 주원장의 유훈에 근거한 것이므로 고칠 수 없다고 버티는데도, 조선 조정은 2백 년 가까이 이의를 제기해 1589년에 결국 고쳤다.

숙종 때인 1712년에 백두산 정계비가 세워진 것도 한·중 간의 긴장 관계를 반영한다. 정계비가 세워진 것은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국경 문제로 인한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이 고분고분한 나라였다면 이런 갈등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은 형식상은 속국일지라도 중국에 대해 할 말을 하면서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비위생적인 김치에 대한 식약처의 소극적 대응과 중국의 무대응을 합리화하고자 과거 역사를 인용한 식약처 직원의 발언은 잘못된 역사 상식에 기인한 것이다. 그가 말한 속국은 한국 역사에 존재한 적이 없다. 그것은 근대 서양 국제법상의 배설 스테이트일 뿐이다.

#알몸 김치#식약처#속국 발언#사대관계#한중관계
댓글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