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살 때에는 주로 아파트에 살아서 나는 풀이름을 잘 몰랐다. 마당을 가꾸기 시작한 것은 캐나다 이민 온 이후 작년부터이니 내가 아는 풀이름들은 주로 영어다.
이 풀도 영어로 먼저 만났다. '
purslane.' 심심치 않게 캐나다 가드닝 동호회에 등장하는 반갑지 않은 잡초인데, 어느 날 보니 우리 집 입구에도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어딘가 틈새라도 자리를 잡으면 절대 물러서지 않는 잡초다.
쇠비름을 만나다
우리 한국 이름으로는
쇠비름이다. 그냥 비름나물이 아니고 쇠비름. 잡초류에는 어쩐지 개나 쇠가 많이 붙는 게 재미있다. 한국의 잡초가 캐나다에도 있는 게 어쩐지 반갑기도 했다. 비록 잡초지만 그래도 타국에서는 반가울 수 있다니! 나는 이 쇠비름으로 두 가지를 시도했는데, 특별한 마음으로 접했다기보다는 잡초니까 뽑는 김에 나물이라도 해 먹자는 생각이었다.
아무리 집 앞이고 약 같은 것은 치지 않는다고 해도, 주차하는 곳에서 나는 것은 별로 깨끗하지 않을 것 같아서, 드라이브웨이와 커브 정리한 것들은 째려보다가 비료 통에 버리고, 텃밭에 자란 것들만 골라 모아봤다. 양이 그다지 많지는 않았지만, 반찬 한 번은 먹지 않을까 싶었다.
쇠비름은 성질이 찬 음식이어서 날 더울 때 먹으면 좋은데.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날 수도 있으니, 소량으로 가끔 먹어주면 좋다. 특히 대장에 좋아서 장염 걸렸을 때는 특효라고 하는데, 약의 효용으로는 먹어본 적이 없다. 여기 서양에서도 잡초로 천대받다가 요새는 건강식품으로 새로이 부상 중이다. 캐나다인들이 안 반기는 녀석이지만, 사실은 암에도 좋은 풀이라고 슬슬 알려지고 있다. 샐러드로 먹으라는 추천도 있지만, 글쎄. 식감이 샐러드로는 좀 무리인 듯하다.
약간 미끈거리는 질감이 있어서 날것으로 먹기에는 별로 내키지 않지만 나물로 먹으면 만만할 것 같아서 만들어 보았다. 한국 나물은 대략 다 비슷하니 그냥 그 방식으로 했다. 물로 몇 번 씻고 헹궈서 흙을 없애고, 소금 조금 넣은 끓는 물에 잠깐 데쳐냈다. 시금치 데치듯이 하면 된다. 물이 다시 끓기 시작하면 바로 건져서 찬물로 씻어주고, 살짝 꼭 짠 다음 초고추장 양념을 만들어서 무쳐줬다.
정말 딱 한 주먹 나왔지만, 다른 반찬들과 곁들여 먹기엔 무리가 없었다. 처음에 쇠비름이라 하니 남편이 별로 반기지 않는 눈치였는데, 맛을 보더니 의외로 맛있다며 잘 먹었다. 시금치나물과 사실 별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먹고 나서 잊고 지내다가, 어느새 보니 우리 집 앞 길에 또 잡초 뽑을 때가 되어서 생각이 났다. 이웃집과의 경계선에 무성히 올라온 것을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생각난 김에 뽑아서 한 번 더 먹어야겠다 싶어서 캐러 갔더니, 뿌리가 제법 깊고 튼실하게 자라서, 나물로 했다가는 질길 것 같았다.
그래도 이왕 뽑았으니 뭐든 해보자 싶어서 일단 마당 싱크대에서 씻었다. 몇 개 안 뽑았는데도 싱크대 하나를 채울 만큼 많았다. 씻어서 건져놓고 마당에서 다른 일들을 하며 물기를 뺐다.
저녁 먹을 때가 되어서 다시 살펴보았는데, 여전히 반찬으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억세 보였다. 그렇다면 효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설탕주의지만 효소에는 설탕을 안 넣을 수가 없으므로, 당분이 없어질 때까지 발효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해서 효소를 담갔다.
흔히들 설탕과 1:1로 많이 하지만, 설탕을 그렇게까지 많이 넣기는 싫어서 양을 무게 기준으로 반만 잡았다. 그나마 다 넣지 않고 일단 2/3 정도만 쇠비름과 섞어줬다. 쇠비름은 너무 길어서 성큼성큼 썰어주어, 섞기 편하게 만들었다. 엄청나게 많다 싶었는데, 설탕에 버무리는 동안 숨이 죽었다.
그렇게 해서 2리터쯤 되는 큰 유리병에 눌러 담았다. 그리고 남은 설탕을 위에 뿌려주었다. 발효의 포인트는 곰팡이가 피지 않게 하는 데에 있고, 그래서 공기와의 접촉 차단이 중요하다. 이렇게 설탕으로 덮어주면 위쪽이 공기와 직접 닿지 않는 역할을 일단 해준다.
그러나 발효가 되면서 설탕은 다 녹아들어 가고 곧 모두 사라져서 다시금 쇠비름 윗부분이 공기에 노출된다. 쇠비름은 정말 수분이 많이 나오는 풀이었다. 돌나물과 비슷한 질감이기 때문에 수분을 많이 머금고 있는 것 같았다. 중간 사진을 찍어둔 줄 알았는데 찾아도 없는 것을 보니 아마 깜빡한 듯하다. 수분이 엄청나게 나왔고 양이 반으로 푹 줄었다. 매일 한 번씩 저어주면서 위쪽이 곰팡이 슬지 않게 신경을 썼는데, 공기층이 많아지니 신경이 쓰였다. 나처럼 깜빡하기 잘하는 사람은 아차 하면 곰팡이 소굴을 만들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리터짜리 병을 가져다가 옮겨주었더니 사이즈가 딱 맞았다. 양이 딱 반이 된 것이다.
사진으로 보면, 쇠비름이 물에 완전히 잠겨있는데, 사실은 저렇게 되지 않는다. 물은 아래에 있고 건더기는 다 위로 떠 오른다. 발효가 계속 진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에 잠기지 않으면 위쪽에 곰팡이가 생기거나 골마지가 끼기 쉽기 때문에 매일 저어줘야 하는데, 그게 보통 귀찮은 게 아니다. 이럴 때에 누름돌로 눌러주면 좋다.
발효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편리한 도구들이 시장에 나와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유리 누름돌이다. 유리병 입구 사이즈에 맞는 둥근 유리로, 위에는 손잡이까지 달려서 아주 안성맞춤이다. 그걸로 건더기를 눌러서 물 안에 잠기게 해 주면 계속 저어주지 않아도 된다.
발효는 계속 진행되기 때문에 뚜껑을 완전 꼭 잠그면 안 된다. 공기가 새어나갈 정도로 닫아준다. 날파리는 들어가지 않고, 발효 가스는 배출되어야 한다. 만일 너무 꼭 닫으면 유리병이 터져버리는 끔찍한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쇠비름의 효능을 보면 폴라보노이드와 베타카로틴과 오메가3, 비타민 C, D, E가 풍부하여 피부에 좋고, 면역성을 올려주며, 두통해소, 염증 제거, 시력 개선, 항암효과, 대장을 원활히 하여 장염, 변비 개선 등 수도 없이 많지만, 이런 자연의 음식들은 체질에 맞아야 효과가 있고, 맞지 않을 경우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몸의 반응을 살피며 조심해서 먹어야 한다. 피부에 염증이 있을 때 조금씩 발라준다거나, 배탈이 낫을 때 먹어주는 등 단기간의 국소적 사용은 특별한 해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나, 좋다고 상시 음용하거나 다량을 섭취하는 것은 언제나 조심해야 할 일이다.
이렇게 6개월 정도 발효시킨 후, 건더기를 건져내어 냉장 보관하여 음료로도 마시고, 피부에도 발라줄 수 있는 발효액이 될 테니 이제는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벌써 담근 지 한 달이 되었으니 내년쯤에는 발효가 완료되리라. 지천에 널린 쓸모 없이 보이는 잡풀도 이렇게 효용이 높으니, 세상에 쓸모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리라. 나 역시 효용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과 더불어,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것도 눈여겨 보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함께 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 https://brunch.co.kr/@lachouette/ 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