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자 '메리 크리스마스!' 카톡이 지잉지잉 울린다. 친한 편집자들이 모인 카톡방에도 트리 이모티콘과 안부 카톡이 올라왔다. 난 딸과 눈밭에서 찍은 사진을 메시지와 함께 올렸다. 그걸 본 후배 한 명이 '어머, 자매인 줄 알았어요'라는 아부 가득한 멘트를 남겼다. 난 '하하, 사회생활이 몸에 배었군'이라고 쓰고 싶은데, '베었다'인지 '배었다'인지 헷갈린다.

보통은 검색해 본 후 맞춤법에 맞는 말을 쓰는데 카톡을 주고받는 속도가 빨라 검색할 틈이 없다. 잠시 고민하다가 '에잇. 모르겠다' 하고 '사회생활이 몸에 베었군'이라고 썼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뿔싸, 틀린 맞춤법이다. 문제는 그 카톡방 구성원 대부분이 편집자라는 사실. "전 소개팅한 남자가 카톡에서 맞춤법 틀리면 매력이 훅 떨어지더라고요"란 후배의 말이 귓가에서 울린다.

편집자도 헷갈리는 맞춤법 
 
 책 <다정한 맞춤법>, 김주절 지음
책 <다정한 맞춤법>, 김주절 지음 ⓒ 리듬앤북스
 
유아프로그램 기획이나 그림책 편집 일을 주로 하다 보니 주변에 편집자가 많다. '무슨 일 하세요?'란 질문을 받으면 나도 '그림책 편집해요'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난 보통의 편집자와 달리 교정, 교열 최약체이다. 꼼꼼한 성격도 아니다. 헷갈리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열심히 외워보지만 단지 그때뿐. 원고를 수정할 때면 언제나 검색에 의존한다.

그러다 얼마 전 <다정한 맞춤법>이란 책을 읽게 됐다. 그래도 나름 편집자인지라 '너무 쉬운 맞춤법만 있는 거 아냐?'란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며 목차를 훑어보았다. 그런데 '배다'와 '베다'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는 꼭지가 있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오, 이 책은 내 수준에 맞는군' 중얼거리며 책장을 넘겼다.

첫 번째 장은 비슷한 두 단어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맞히다/ 맞추다', '당기다/ 땅기다', '매다/ 메다'와 같은, 비슷해서 헷갈리는 단어의 차이점과 활용을 알 수 있다.

예전에 수수께끼 콘셉트의 유아 책을 만든 적이 있다. 책 표지의 '정답을 맞히며 자신감을 키워요'란 문장에서 '맞히다'가 '맞추다'로 잘 못 적혀 있었다. 잘 못 쓴 후배의 문장을 수정하며 어찌나 어깨가 으쓱했던지. '맞히다'는 '적중하다'라는 의미가 있어 정답이나 표적이 있는 곳에 쓰이고 '맞추다'는 '간을 맞추다'처럼 '어떤 기준에 어긋나지 않게 하다'라는 뜻이라는 자세한 내용은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두 번째 장은 아예 없는 단어를 쓰는 경우를 소개한다. '잊히다'보다도 많이 쓰이는 '잊혀지다'는 없는 단어이고 '놀래키다'도 없는 말이다. 책에 예로 등장한 '아까 내가 너를 놀래서 많이 놀랐지?'란 문장의 '놀래서'를 자꾸 '놀래켜서'로 바꾸고 싶다. '놀래키다' 대신 '놀래다'를 써야 맞는데 그게 어색하다면, '놀래 주다'를 사용하라는 저자의 말에 다정함이 묻어난다.

<다정한 맞춤법>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다정하다는 것이다. 사실 맞춤법을 알려주는 책은 많다. 하지만 이 책은 독자가 읽다가 '에잇. 모르겠다' 하고 책을 덮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한다. 각 단어에 맞는 에피소드가 있고 쉽게 외울 수 있는 팁도 제시하고 있다.

김연경 선수가 김밥 말 때, 당근을 안 넣은 걸 알고 나중에 당근을 '꽂아' 넣은 이야기, 모델 이소라가 야식의 유혹을 물리치려고 냉장고에 누런 박스테이프를 '붙였다'는 이야기. 또 애니메이션 <나루토>에서 나오는 유명한 대사, '다섯 사람이 모이면 '반드시' 한 명은 쓰레기다'란 글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킥킥 웃는다. 간간이 유용한 정보도 많아 대체 이 저자는 뭐 하는 사람일까, 궁금해 저자 약력을 다시 훑어보게 된다.

퀴즈로 배우는 맞춤법... 이거 참 재밌네  

중간에 맞춤법 퀴즈도 있어 그 단어의 쓰임을 제대로 알았는지 스스로 확인할 수 있다. 책을 보며 웅얼웅얼 퀴즈를 풀고 있는데 남편이 옆으로 와 뭐 하냐고 묻는다. 난 다짜고짜 퀴즈를 냈다. 당연히 어려운 문제로.

"'한때 내가 저 남자한테 목을 맸지'란 문장에서 '맸지'가 맞을까, '멨지'가 맞을까?"

남편은 잠시 고민하더니 "멨지!"라고 외친다. "땡! 정답은 '맸지'야." 난 신나게 땡을 외친 후, 책에 있는 설명을 덧붙였다. 남편은 퀴즈를 맞히고 싶은지 또 내달라고 한다. 평소에 잘 삐지는 남편에게 딱 적당한 문제를 찾았다.

"'그만 삐져'와 '그만 삐쳐' 중 뭐가 맞을까?"
"그거야 당연히 '삐져'지."


난 또 '땡'을 외쳤다. 사실은 둘 다 정답이라고 하니 뭔가 억울한 표정이다. 원랜 '삐치다'가 표준어였는데 사람들이 '삐지다'를 더 많이 사용해서 둘 다 표준어가 됐다고 설명했다. 자정이 넘은 한밤중에 우리 부부는 주거니 받거니 신나게 맞춤법 퀴즈를 풀었다.
 
 <다정한 맞춤법>을 다 읽고 나니 책 옆면에 책 클립이 빼곡히 꽂혔다.
<다정한 맞춤법>을 다 읽고 나니 책 옆면에 책 클립이 빼곡히 꽂혔다. ⓒ 김지은
 
<다정한 맞춤법>을 다 읽고 나니 책 옆면에 책 클립이 빼곡히 꽂혔다. 옆에 두고 계속 읽어야지, 생각한다. 그러다 생각은 지난번 실수로 이어진다. 그때 실수는 우연인 것처럼 친한 편집자 카톡방에 '몸에 배다'(몸에 베다:X)가 들어가는 문장을 자연스레 올리고 싶다. '새해에는 운동하는 습관이 몸에 좀 었으면 좋겠어', '좋은 습관이 몸에 는 한 해가 되길' 등 관련 문장들이 퐁퐁 떠오른다. 적어도 이젠 '배다'와 '베다'를 잘 못 쓸 일은 없을 것 같다.

평소 맞춤법이 헷갈리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다정한 맞춤법> 읽기를 추천한다. 한 번 읽고 나면 나처럼 여기저기 인덱스를 붙인 후, 계속 옆에 두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다정한 맞춤법

김주절 (지은이), 리듬앤북스(2022)


#다정한 맞춤법#맞춤법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