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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0월 16일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국립헌법센터에서 조 바이든 전 부통령으로부터 2017 자유훈장을 받고 있다.
2017년 10월 16일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국립헌법센터에서 조 바이든 전 부통령으로부터 2017 자유훈장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AFP
 
2018년 1월, 존 매케인 미국 상원의원이 뇌종양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추모 행사엔 거의 모든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모였다. 조지 W. 부시,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그리고 조 바이든까지.

존 매케인과 2008년 대선에서 맞붙었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추모 연설에서 "매케인은 당이나 권력 이상의 큰 가치를 인식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40년 동안 상원에서 함께 활약했던 조 바이든 현 미국 대통령은 장례식에 앞서 열린 추도식에서 그를 '형제'라고 부르며, 두 사람의 우정을 '지나간 초당파주의 시대의 흔적'으로 정의했다.

존 매케인은 대선후보를 지낸 보수 거물이자, 베트남 전쟁의 영웅이었다. 애리조나 주에서만 30년 이상 당선되면서 '애리조나의 아들'이란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보수주의자였지만, 동시에 정파와 진영의 경계를 무색케 한 인물이었다. 선거 유세 도중 지지자가 '오바마는 믿을 수 없다. 그는 아랍인이다'라고 말하자, 매케인은 지지자의 마이크를 빼앗아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는 품위있고 가정적인 사람이며 미국 시민이다. 어쩌다보니 저와 그의 근본적 이슈에 대한 의견이 다를 뿐이다"고 말했던 장면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대선에서 패배한 후, 오바마와 '친구' 바이든을 축복하는 한편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정권의 성공에 협력할 것이라고 선언했다(훗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 이후 오바마 정부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추진했던 '오바마 케어' 폐지에 제동을 건 주인공 역시 매케인이었다. 그는 당론보다 자신의 신념을 우선시했다).

반면 2018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도널드 트럼프는 매케인의 장례식에 초대받지 못했다. 트럼프가 그간 매케인을 조롱해왔기 때문이었다. 매케인이 트럼프의 이민자 폄하 발언을 비판하자, 트럼프는 "매케인은 포로로 붙잡혔으니 전쟁 영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존 매케인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5년 동안 포로 생활을 했다). 매케인에 대한 트럼프의 조롱은 매케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이어졌다. 이 풍경은 한국 정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총성없는 전쟁'에도 예의는 필요하다
 
 지난 13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이미지.
지난 13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이미지. ⓒ 이준석 페이스북 갈무리
 
지난 13일 대한민국,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에게 '단일화'를 제안했다. 안 후보는 여론조사를 통한 국민경선 방식의 단일화 방안을 던졌다. 안 후보의 특별 기자회견은 예정과 달리 비대면으로 진행됐는데, 배우자 김미경 교수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안 후보는 "생각보다 아내의 증세가 좋지 않아 병원으로 이송 중이다. 아내가 기저 질환이 있는데 제 선거운동을 돕고 의료봉사를 하다가 이렇게 된 것 같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이날 자신의 공식 소셜미디어를 통해 "기저질환이 있으신데 코로나19에 확진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무탈하시길 빈다"면서 쾌유를 빌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전화로 위로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제1야당 대표는 잠재적인 단일화 파트너를 강하게 몰아붙였다. 안 후보의 단일화 제안 소식이 전해진 직후, 이 대표는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하는 게 아니라 역시나 했더니 역시나 한다"면서 부처 손바닥 위에 있는 손오공 이미지를 함께 첨부했다.  자신을 부처에 비유하고, 안 후보를 원숭이에 비유한 셈이다.

다른 게시물에선 "매일 자기 이름만 검색하고 계시니 세상이 본인 중심으로 돌고 단일화 이야기만 하는 걸로 보이시는 것"이라면서 날을 세웠다. "토론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할 기회 15초 나눠주는 것도 대단한 인심 쓰듯 하는 사람과 뭘 공유하냐"는 언급도 덧붙였다. 김미경 교수의 건강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우리는 정치를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부른다. 선거마다 후보들이 '네거티브 대신 포지티브를 하자'고 말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정적에 대한 네거티브는 국지전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지지자들이 독설에 열광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이다와 조롱 끝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이준석 대표는 다른 유력 정치인들에 비해 생물학적 나이가 젊고, 온라인 커뮤니티의 생리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정치가 밈(meme)과 온라인 커뮤니티의 문법을 닮아가고 있는 과정에서, 정치 뒤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잊히고 있다.

이준석 대표의 언어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우리의 정치는 트럼프보다 매케인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

#존 매케인#매케인#이준석#안철수#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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