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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 연합뉴스

새 학년 개학을 일주일 남짓 앞두고 있다. 연간 수업과 평가 계획도 얼추 세워졌고, 한 해 동안 아이들과 함께 생활할 학급 담임교사도 모두 정해졌다. 새 교무실로 이사도 마무리했고, 아이들을 맞이할 교실의 책상과 의자의 상태까지 점검과 수리를 마쳤다. 

올해는 1학년의 9개 학급 담임 중에 세 분이 여교사다. 아직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견줘 월등히 적은 숫자지만, 고등학교에서도 시나브로 여초 현상이 현실화하고 있다. 알다시피, 현재 초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중학교조차 열에 일곱여덟은 여교사다. 

학교마다 설치된 여교사 휴게실이 비좁은 이유다. 요즘 들어선 고등학교에서조차 여교사가 아닌 남교사를 위한 별도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뒤집어 보면, 절대 다수인 여교사의 편의를 위한 시설이 학교마다 기본 옵션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근무하는 곳만 해도 여교사 화장실이 학교에 달랑 두 곳뿐이다. 전체 학생과 교사 수를 더하면 얼추 800명에 육박하는 제법 큰 학교인데도 여교사를 위한 전용 공간은 그렇듯 턱없이 부족하다. 남학교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교사의 성비를 고려할 때 시설의 확충이 시급하다.

그런데, 배려해야 하는 게 '하드웨어'만은 아니다. 당장 소풍, 수학여행과 같은 단체 체험활동과 체육 행사 등을 진행하는 데에도 그들의 난감한 처지와 입장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일례로, 그들이 10대 후반의 거친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함께 공을 찰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듣자니까, 교내 체육대회에서 축구와 같은 종목을 없앤 초중학교가 적지 않다고 한다. 축구는 또래 남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종목이지만, 여교사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보니 운영이 부담스럽다는 이유에서다. 이야말로 방과 후 스포츠강사의 존재 이유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요즘엔 고등학교의 체육대회에서도 서로 몸이 부딪히는 격렬한 종목은 줄어드는 추세다. 언제부턴가 그 좋아하는 축구조차 '뛰는' 운동이 아니라 '보는' 운동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오해할까 두렵지만, 이는 교사의 성비만을 탓할 문제는 아니다. 

공격과 희롱의 대상이 된 '여성스러움'

당장 4월 초 오십 리가 넘는 무등산 둘레길을 새내기 아이들 225명과 함께 걷기로 예정돼 있는데, 괜찮으실지 모르겠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식사와 화장실 문제부터 걱정이다. 명색이 광주와 전남의 지방정부가 생색을 내며 만든 길인데, 편의 시설과 관리가 엉망이어서다. 

둘레길엔 225명은커녕 예닐곱 명 모여 앉아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조차 마땅찮다. 그냥 끼니때가 되면 걸어가다 그 자리에 철퍼덕 앉아 해결해야 한다. 미리 도시락을 챙겨오지 않으면 종일 굶을 수밖에 없다. 가는 길에 식당과 카페는커녕 그 흔한 구멍가게 하나가 없다. 

세 분의 여교사도 예외일 순 없다. 인솔하는 학급 아이들과 함께 바닥에 앉아 점심을 때워야 한다. 더욱 난감한 것은, 둘레길에 공중화장실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사전 답사하며 세어보니 출발 지점에 설치된 것까지 포함해 달랑 세 곳뿐인 데다 간격마저 일정치 않다. 

그나마 얼추 중간 지점의 간이 화장실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상태였다. 변기 주변엔 여행자들이 버린 걸로 보이는 생활 쓰레기로 덮여있는 데다 악취가 진동하여 문을 여는 것조차 두려울 지경이다. 손을 씻는 개수대는커녕 화장지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 

선머슴 같은 남자아이들도 당황스러워할 상황인데, 특히 젊은 여교사에겐 고행의 하루가 될 게 불 보듯 환하다. 일단 관련 기관에 협조 요청을 한 상태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성싶다. 바람 같아서는 그분들을 모시고 사전 답사를 한 번 더 다녀오고 싶은 생각이다.

어쩌면 이 정도는 약과일지도 모른다. 남자 고등학교에서 여교사가 감내해야 할 고충은 상상을 초월한다. 여교사들이 고등학교보다 중학교를, 남학교보다 여학교를 더 선호하는 것도 그래서일 테다. 교육청에서 '교권 조례'를 제정한 것 역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남학교에선 수업 시간 때조차 온갖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교재 연구와 수업 준비만 철저히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복장과 표정에서 말투까지 아이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게 한둘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여성스러움'이 공격과 희롱의 대상이 된 건 어제오늘은 일은 아니다. 

페미니즘이라는 용어에 대한 맹목적 반감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요즘 아이들 앞에서 꺼내서는 안 될 대표적인 금기어가 하나 있다. 페미니즘이 그것이다. 최근 들어 '페미'는 가치관과 정치적 성향을 표현하는 단어가 아니라, 그냥 욕설 중의 하나다. 친구들로부터 '페미'로 낙인찍히면 그걸로 학교생활은 끝이다.

이는 아이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수업 중인 교사에게도 '페미'인지 여부를 버젓이 질문한다. 젊은 여교사라면 아예 '페미'가 기본값이다. 그렇다고 하면 아이들로부터 일상 속에서 따돌림을 당할 테고, 손사래를 친다 해도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며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볼 것이다.

젊은 여교사는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 앞에서 '페미'의 '페'자도 꺼내지 않는다는 교사들이 대부분이다. 수업 도중 괜히 말 꺼냈다간 진도 자체를 나갈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요즘 아이들에게 페미니즘은 교육해야 할 내용이 아니라 언급하는 것조차 죄가 되는 기피 대상이다. 

한 동료 교사는 교과 내용상 어쩔 수 없이 다뤄야 한다면, 페미니즘 대신 여성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씁쓸해했다. 페미니즘에 발끈하던 아이들도 여성주의라고 하면 별다른 저항이 없다고 귀띔했다. 그들이 페미니즘이라는 용어에 대해 맹목적 반감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오십이 넘은 남교사인 나조차 페미니즘과 관련한 황당했던 경험이 있다. 한국사 수업 도중 한 아이로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도 '페미'였느냐"는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받았다. '김대중 정부는 여성부를 신설하여 여성의 지위 향상에 노력하였다'는 교과서 내용을 문제 삼은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관계를 언급하며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불식시키려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아이들은 막무가내 '예', '아니오'로 답해달라고 채근했다. 심지어 김대중 전 대통령 본인은 물론, 그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정치인들 모두 '페미'임이 분명하다고 키득거리는 아이도 있었다. 

그의 논리는 지극히 단순하다. 여성부가 현 여성가족부의 전신이고 보면, 그때를 기점으로 우리 사회에 페미니즘이 광범위하게 퍼진 것이라 단정했다. 김대중 정부의 공과 성취를 칭송하는 이들조차 페미니즘에 대한 '원죄'는 부정할 수 없다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김대중 정부의 정책을 두둔했다가 졸지에 '페미'로 낙인찍혔다. 지질하게도, 20여 년 전 당시의 페미니즘과 지금의 그것이 같을 수도 없고, 남성 혐오로 치닫는 급진적 페미니즘엔 반대한다며 아이들 앞에서 몸을 사렸다. 아이들과 척지게 되면 설득할 기회조차 없다고 여겨서다. 

하물며 젊은 여교사에게 '사상 검증'을 해야 한다고 달려드는 아이들은 상당한 위협 요소다. 얼마 전 한 여교사와 나눈 대화에서 '웃픈 고백'을 들을 수 있었다. 문항의 지문에 페미니즘 관련 내용이 나오면, 질문이 없어도 미리 '페미'가 아님을 밝힌 뒤 수업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당장 뭐라도 해야겠기에 페미니즘을 소재로 한 다양한 읽을거리를 아이들의 휴게 공간인 홈베이스에 비치할 계획이다. 일단 집 서재에 꽂아둔 책들을 열 권 남짓 가져왔고, 학년 초 학교 도서관에 관련 도서를 더 구매해 달라고 요청할 생각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 법이니 말이다. 

이번 주 첫 담임교사 모임을 앞두고, 공유해야 할 내용을 메모하다 생각이 엉뚱하게 여기까지 미쳤다. 아무튼, 남자 고등학교에서 여교사가 편안하고 당당하게 수업하고 생활할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즐거운 배움터가 될 것이라 믿는다. 어디 이뿐이랴마는 세 분의 여교사를 걱정하고 배려하는 것은 기실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다.

#페미니즘#교사 성비#무등산 둘레길#교권 조례#여성가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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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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