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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편집자말]
50을 코 앞에 둔 어느 날부터인가 '사는 게 좀 지루하구나...' 싶을 때가 종종 있다. 반복되는 일상 때문일까 싶지만, 그게 다는 아닌 듯하다. 사실 매일이 똑같지도 않다. 책 읽고 운동하고 글 쓰는 가운데 간간이 마을 공동체 활동을 하고 여러 모임에 참여하며 사람들을 만난다. 이런 일들을 하는 동안은 분명 즐겁고 보람 있는데, 왜 문득문득 고운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것처럼 나도 모르게 속이 허해질까?

또래들도 혹시 비슷한 심정이 드는지 주변에 물어보지만, 동감하는 이를 만나기는 어렵다. 대부분, 당장 큰 걱정 없는 한가로운 자의 배부른 푸념일 뿐이라는 반응이다. 뭐, 딱히 틀린 지적도 아니겠지만, 그 말이 옳다고 치부한다 해도 느끼는 감정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마음 한편에 지루함과 공허함이 예기치 않게 밀려왔다 밀려간다. 

나만 그런가 싶어 좀 외로워지려던 차에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어나더 라운드>라는 덴마크 영화를 만났다. 무료함에 빠진 중년 남자들이 일상의 활력을 부스터 하기 위해 알코올의 힘을 빌려본다는 내용인데, '역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나 혼자는 아니었구나!' 싶어 무척 반가웠다. 그리고 과연 술로 무료함을 해결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며 영화관을 찾았더랬다. 

삶이 지루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
 
   영화 <어나더 라운드> 스틸 컷
영화 <어나더 라운드> 스틸 컷 ⓒ (주)엣나인필름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마틴은 점점 수업에 활력과 자신감이 떨어진다. 급기야 입시를 앞두고 걱정된 학부모들이 긴급회의를 소집하여 역사 수업의 문제점을 토로한다. 좌절감에 빠진 마틴은 위로받고 싶지만, 가족 관계도 예전 같지 않다. 다 자란 아이들은 아빠를 본체만체하고, 부인과도 남처럼 정서적 거리가 멀어진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마틴은 나보다 상황이 더 심각했다. 권태가 이미 깊을 대로 깊어져 일상마저 위태로워 보였다. 이때 비슷한 고민을 하던 친구들이 혈중 알코올 농도 0.05% 유지 실험을 제안했고, 어느 정도 활력을 되찾는데 알코올은 분명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술이 과해지는 순간 곧 그 힘을 잃었고, 일과 가정이 깨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알코올 중독이 되어버린 한 친구는 목숨마저 잃었다. 

빛바랜 중년을 벗어나기 위해 치기 어린, 하지만 절실했던 그들의 심정이 십분 공감되어 가슴이 쓰렸다. 하지만, 역시 술은 중독이라는 치명적 결함 때문에 중년의 권태를 타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기에는 위험했다. 그렇다면 술 없이도 활력 있게 살아가는 현실의 주변 50대들은 도대체 어떤 낙으로 살고 있는 걸까?

50대 후반의 한 지인은 탁구와 기타와 사진 출사 등으로 일주일이 '순삭'이다. 오죽 바쁘면 끼니를 알약 두세 알로 때우는 시대는 도대체 언제 오는 거냐고 한탄할 정도이다. 의욕도 왕성해서 글도 쓰고 싶은데 시간 내기가 영 쉽지 않다고 한다. '탁구와 기타와 사진이 그렇게 재미있는 활동이었나?' 호기심이 일 정도로 취미 활동에 푹 빠져 있는 지인이 좋아 보였다. 

드라마에 빠진 분도 여럿이다. 하긴, 우리나라 드라마가 오죽 재미있나. 탄탄한 대본에 영상미까지 갖춘 잘 만든 드라마들이 넘치니 시청자는 즐기기만 하면 된다. 드라마를 보며 역사적, 과학적 지식을 넓히기도 하고, 다양한 인물탐구와 인생역정의 간접경험이 현실 이해에 도움이 되기도 된다. 때론 작가의 메시지가 뭉클하게 와닿기도 하고, 인생 로망의 대리 실현까지 가능하다. 이만한 즐거움을 다른 데서 찾기는 쉽지 않다.

비슷하게, BTS를 비롯해 손흥민, 요즘엔 차준환 선수까지 유명인의 매력에 푹 빠진 분들도 있다. 이분들은 평상시에는 심드렁하다가도 좋아하는 이의 이야기에는 눈빛을 반짝이며 급 생기가 넘친다. 누구는 콘서트 예매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고도 하고, 누구는 덕후 활동에 밤을 새운다고도 한다. 사실, 따분해지는 중년의 일상에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열정을 쏟는 일만큼 삶을 황홀하게 재점화할 수 있는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정신을 번뜩나게 한 책 속 구절

나도 이런저런 데에 기웃거리며 관심을 가져보지만, 뭐든 쉬이 질리는 성격이라 오래가지 않는 게 문제다. 게다가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우고 나니 자꾸 소임을 다한 은퇴자의 심정이 되어 버려 만사에 점점 심드렁해지는 것도 걸림돌이 되는 것 같다. 몸도 이런 풀어진 마음 상태를 알아차리는지 점점 더 신통치가 않다. 

그렇잖아도 얼마 전, 욕실 청소를 하다 허리를 삐끗하는 바람에 일주일 간 고생을 한 적이 있었다. 회복 전 잠시 외출을 했는데, 걸을 때 아픈 허리가 자극되어 "아이고,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내가 낸 소리지만 듣고 있자니 50 나이에 내가 벌써 노인 행세를 하고 있나 싶어 얼마나 어처구니없던지. 
  
    박혜란 <나이듦에 대하여>
박혜란 <나이듦에 대하여> ⓒ 웅진지식하우스
 
그렇게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는 중에 박혜란 님의 <나이듦에 대하여>를 읽는데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드는 구절을 만났다. 아이의 삶에만 온통 치중하고 몰두하는 젊은 엄마들을 향한 애정 어린 충고였는데, 그 속에 내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젊은 엄마들이 자신의 성장은 아예 포기한 채 자녀 교육에 남은 인생을 바치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똘똘 뭉쳐 있는 모습을 보면 나는 흐뭇한 게 아니라 가슴이 답답해진다. 앞으로도 30, 40년을 더 살아야 하는 그들이 내 눈에는 청년처럼 보이는데 그들 스스로는 자기 나이를 노년으로 셈하고 있다.

나는 아이들 교육에 목매지는 않았지만, 자녀양육을 마친 스스로를 일찌감치 노년으로 치고 있었구나 싶어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앞에 놓여 있는 긴 시간을 얕잡아 보고, 벌써부터 도전과 성장, 이런 것들을 제쳐 버린 채 지루하다느니 공허하다느니 남발하며 안락 속에 안주해 왔던 게 아닌가 싶어 가슴이 뜨끔했다. 

마음을 단단히 고쳐먹었다. 흐느적거리는 몸부터 단련하기로 하고 산행의 속도를 높이고, 아령을 들었다. 그리고 단련된 몸으로 새롭게 몰두할 일, 온 마음을 쏟아 도전할 일을 찾아야겠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지 않고 나의 성취로 단단히 손에 쥘 수 있는 그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야겠다. 혹시, 도전했다가 실패한다면? 상관없다. 도전하며 느낄 설렘, 긴장감에 더해 도전했던 경험만으로도 이미 삶은 의미 충만일 테니 말이다.

마침 여든다섯의 나이에 대학 새내기가 되셨다는 할머니의 기사가 눈에 띈다. 여든에 중졸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다섯 번의 도전 끝에 고졸 검정고시를 통과하셨다고 한다. 나이에 갇히지 않고 열정적으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주신 것 같아 어찌나 반가운지. 그녀의 멈추지 않는 도전정신과 기개에 진심 어린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나도 힘을 내본다.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
#50대 권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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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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