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계절은 우리를 가만두지 않고 기어이 밖으로 꺼내고야 만다. 이 좋은 날 집에 머물기는 모종의 죄로 작용하는 듯, 죄책감에 나가고야 마는. 지난 9일, 여의도 벚꽃 축제(9일부터 17일까지)를 거쳐 한강엘 갔다. 무려 3년 만에 열린 축제다. 반팔 차림이 어색하지 않은 따스한 봄이었다.
꽃길인 여의서로(국회뒤편)에 진입하니 인파로 도로가 가득 찼다. 도로엔 절정에 달한 벚꽃이 늘어서 있었는데, 공간을 지배한 분홍빛에 방문객들은 모두 동요된 듯했다. 다들 사진을 찍느라 초입부터 한 걸음 나가기가 더뎠다.
벚꽃나무마다 방문객들이 있었다. 한 나무 건너 다른 나무 앞에서 촬영 중이었고, 마스크에 가린 입으로 살짝 미소 짓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곧 그들 프로필 사진이 바뀌겠지. 우리 일행 또한 몇 장의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여간 아쉬운 게 아니었던 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휴대폰이 다 담을 수 없다는 거였다. 기술은 현장을 따라가지 못했다. 눈으로 보는 것이 훨씬 아름다웠다. 그건 대면의 대안인 비대면 세계에서도 마찬가지. 비로소 만났을 때 채워지는 감정이 있다.
걸으며 이름 모를 낯선이와 팔이 스쳤다. "젊음이 좋긴 좋네" 하던 노장의 혼잣말이 귀에 선명히 박히기도 했다. 그만큼 사람들과 밀접한 채 걸었다. 곁을 5cm쯤 남긴 상태였는데 문득 '용감해졌다'고 생각했다. 2년 전 2월, 서로를 바이러스 취급하던 때에 비하면 말이다.
이후로도 수많은 이들과 나란히 걸었고 누구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원래 우리가 알고 있던 서로의 거리를 찾은 듯할 뿐이었다.
나오길 참 잘했다
방향을 틀어 여의도 한강공원으로 향했다. 들놀이 하며 나른한 오후를 보내려던 심사였다. 다들 비슷한 마음이던지 공원엔 가족 단위의 방문자나 커플, 친구 사이로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이라 생각해보니 3년 전, 한강에서 봤던 그 풍경이다.
양지바른 자리를 찾아 헤매다 마땅한 곳에 자리를 폈다. 챙겨 온 주전부리를 돗자리 중간에 내며, 허기를 달래기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었다. 그제야 코와 입으로 봄 공기가 온전히 들어왔다. 푸른 잔디 냄새가 따랐다.
두 팔을 뒤로 세워 살짝 몸을 뉘었다. 내리쬐는 햇발에 눈을 찡그려야 했지만 바람의 이고 나감이 해의 뜨거움을 잊게 했다. 봄은 봄이라, 나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기대앉아 주위를 둘러봤다.
젓가락에 들린 치킨을 종이컵에 받쳐 먹거나 편의점에서 끓여 온 라면을 취식하기도 하는 모습, 이따금 맥주를 마시기도, 음악을 튼 채 수다를 떨기도 한다. 먹었고, 마셨고, 떠들었고, 모두 웃고 있다.
일상이던 것들을 2년간 잃어본 뒤, 마침내 차지한 한강 잔디 한 조각에서 본 그 입들이 참 오랜만이다. 겨우 돗자리 만큼만 허락된(그것도 먹을 때만) 노마스크 존 위의 생경한 얼굴들. 고만고만한 모습으로 웃고 떠드는 한강객을 보자니 이 순간이 벅차다.
허락된 날씨와 활동할 수 있는 자유와 우리가 모이는 것, 이 모두 얼마나 기다렸던지. 마스크만 썼을 뿐, 봄을 기다리던 우리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