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구제 대출은 피해 상황을 확인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요. 금융권 부채는 바로 조회할 수 있잖아요? 근데, 내구제 대출은 명의도용 사례도 많고 렌탈 가전 등이 재판매돼 찾을 수도 없는 경우가 많아요. 피해 회복이 너무 어려운 구조예요."
19일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아래 광주 청지트)가 10년 넘게 방치되고 있는 '내구제 대출' 문제 해결을 위한 '불법금융 근절 기금 조성사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광주 청지트는 기금을 마련한 후 불법금융 근절 및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을 촉구하고, 피해자들을 위한 지원시스템도 마련할 예정이다.
광주 청지트는 2017년부터 청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시민단체로 2018년 광주시의 청년 금융복지 지원사업을 위탁해 '광주청년드림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내구제 대출'이란 대출희망자가 휴대전화 등을 개통해 브로커에게 넘기면 브로커가 그것을 판매한 후 수수료를 챙기고 판매 금액의 일정 부분을 대출 희망자에게 주는 형태의 불법금융을 뜻한다(관련 기사 :
매달 휴대폰비 50만원... '내구제 대출'에 당했습니다 http://omn.kr/1snhe ).
본인 명의 휴대전화를 넘기고 돈을 받은 후, 매달 휴대전화요금을 납부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브로커가 가져간 휴대전화와 유심이 대포폰으로 활용돼 범죄에 활용되는 등 2차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르면 본인 명의 휴대전화를 타인에게 넘길 경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내구제 대출 피해자들은 공범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내구제 대출 피해가 심각해 지고 있다. 지난 5년간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30세 이하 청년이 10배 이상 증가했다. 내구제 대출의 주요 타겟은 청년, 무직자, 기초생활수급자 등 금융소외 계층이다.
"10년간 방법이 없다,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됐다"
광주 청지트 측은 "저희가 만나는 청년 10명 중 1명이 불법금융 피해자다. 지난 2020년 저희에게 상담받은 청년 377명 중 9%에 해당하는 34명이 내구제 대출 피해자였지만 이중 경찰에 피해사실을 신고한 청년은 2명뿐이었다"라며 "이 문제가 이야기 돼온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피해자들은 '방법이 없다, 어쩔 수 없다'는 말 앞에 놓여있다"고 진단했다.
광주 청지트 박수민 이사장은 "2017년 지역에서 상담을 하던 중 한 청년이 내구제 대출 피해를 당한 사례를 확인했다. 이 청년은 형사처벌까지 받았는데, 구체적인 피해 상황을 확인하는 것조차 어려웠다"라며 "이후 지난 6년 동안 같은 상황을 마주한 청년들에게 상담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홍보하고 안내하기만 해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개인에 대한 지원을 넘어, 정부에 책임을 물을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한 아버님께서 자녀의 내구제 대출 문제 해결을 위해 저희 단체를 찾아오셨다. 이분은 이미 통신사, 경찰서 등 관련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셨지만 자신들의 문제가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다"면서 "개인들이 홀로 피해를 감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을 지원하는 활동에만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정부와 관련 기관들에게 책임을 묻는 운동을 진행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박 이사장은 "금융감독원 불법 사금융 및 불법 금융 광고 신고 과정에서도 관련 통계를 확인할 수 없었다"며 "예방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지만 사실상 관련 통계도 없는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광주 청지트는 이 문제가 청년층과 일부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 만큼 전국네트워크를 구축해 대응할 계획이다. 불법금융 피해 해결을 위한 전국네트워크를 구성하고 대책마련을 촉구하기 위한 공동행동도 진행한다. 기금을 마련한 이후 피해자의 문제 해결을 지원하고 관련 기관 종사자 교육을 통해 전국 피해자 지원 시스템을 구축한다. 불법금융 피해 대응 매뉴얼도 제작해 배포할 계획이다.
덧붙이는 글 | 내구제 대출 피해를 받았거나 주변에 피해자가 있는 경우에는 다음 링크에서 피해사례 실태조사에 참여하면 된다. (apply.do/bq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