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과 이웃을 돌아보는 기획 '내가 몰랐던 OOO 세계'에 대한 글을 싣습니다.[편집자말] |
4학년 사회시간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편견과 차별'에 대한 수업을 할 때였다. 교과서에는 인종, 장애인, 성, 나이에 대한 차별 등 다양한 차별의 사례가 나와 있었다. 아이들과 책에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가다 아이들의 눈에는 세상의 어떤 차별이 가장 크게 보일까 궁금해졌다.
"얘들아. 너희가 생각하기에 이중 어떤 차별이 가장 심한 것 같아?"
사회에서는 젠더 이슈가 끊이질 않는데 혹시 아이들도 생활 속에서 성차별을 민감하게 느끼고 있는지 내심 알고 싶어 던진 질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들 답은 의외였다.
"어린이 차별이요. 책에는 나이 많은 사람이 차별 당하는 것만 나왔는데요. 어려서 차별 받는 경우도 많아요."
교과서에는 '나이에 대한 차별'을 설명하는 삽화로 나이가 많아서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모습이 제시되었다. 나이가 어려서 차별받는 예시는 나와 있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다른 어떤 차별보다 '어린이 차별'이 가장 와닿는 문제였다.
"어떤 차별이 가장 심한 것 같아?"
한 아이가 물꼬를 트자 여기저기서 "맞아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이들의 자세한 이야기가 듣고 싶어 질문을 이어갔다.
"어린이 차별? 너희들 차별 당한 적 있어? 노키즈존 때문에?"
"그것도 그렇고요. 그것 말고도 많아요."
아이들은 어리다는 이유로 무례함을 겪었던 자신의 경험을 하나둘 말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자기가 존중받지 못했던 일을 또렷하게 기억하며 끄집어냈다.
"친구랑 둘이 문구점에 갔는데요. 아주머니께서 문 닫을 시간 다 됐다고 빨리 고르라고 짜증내면서 말하셨어요. 가게에는 우리 말고 다른 어른들도 있었는데 그 사람들한테는 아무 말 안 하고요. 우리한테만 그랬어요."
"편의점에 엄마랑 같이 갔을 때 물건을 잘못 건드린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는 아무 말씀 안 하셨는데 제가 친구랑 가서 물건을 살짝 떨어뜨렸을 때는 화를 내면서 혼내셨어요."
"경비 아저씨요. 어른들한테는 친절하게 대답해주면서 우리가 물어보면 귀찮아 하면서 말해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아저씨와 개가 있었거든요. 제가 개를 무서워해서 뒤로 물러서니 아저씨가 그때서야 개를 안으면서 '너... 겁쟁이구나'라고 말하셨어요."
내가 몰랐던 아이들의 세계였다. 아이들의 말을 듣고 나는 무척 화가 났다. 나는 당연히 어른들이 같은 성인을 대할 때보다 아이들을 대할 때 좀 더 친절하고 선의를 베풀어 줄 거라 생각했다(그럴 거라 믿고 싶었다). 아이들은 어리니까. 절대적인 사회적 약자니까 말이다.
내가 아이들이 해준 말에 유난히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은 내가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서 더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는 혼자 동네 마트에 가서 두부 사오는 심부름을 하고, 조금 늦은 저녁 시간에 혼자 학원을 다녀오는 생활을 한다. 주말에는 혼자 외출하여 친구들과 두세 시간씩 축구를 하고 돌아온다.
항상 엄마 손을 꼭 잡고 같이 다녔던 아이였는데 어느덧 커서 이제는 엄마, 아빠가 동반하지 않는 아이의 사생활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아이는 부모의 도움과 보호 없이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해내는 것에 성취감과 재미를 느낀다. 하지만 나는 선뜻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혼자 심부름 가는 아이를 베란다 창문으로 한참 내려다보고, 예정된 시간보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걱정이 되어 아이를 찾아 집을 나선다.
그런데 아이들이 보호자 없이 혼자 다닐 때 꽤나 불친절하고 무례한 어른들이 많다고 말하는 거다. 쉽게 대항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약점을 이용해 교묘하게 함부로 대하는 어른들이 있었다(물론 그렇지 않은 어른들이 훨씬 많을 거라고 믿고 싶다!). 차별 받는다고 느낀 상황에 놓였을 때 아이들이 느꼈을 불안감과 억울함이 상상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내가 몹시 미안해졌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어? 몰랐어. 너희들 정말 화나고 억울하겠다. 어른들이 잘못했네. 선생님이 대신 사과할게."
그랬더니 아이들은 금세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아파트 장터 과일 가게 아저씨는 제가 혼자 갔을 때도 친절하게 대해주세요. 덤으로 귤도 몇 개씩 챙겨 주세요."
"맞아요. 그런 어른들도 있어요."
약자 앞에서 보이는 모습이 진짜 나
세상에는 무례한 사람도 있고 친절한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내 행동이 상대가 누구인지에 따라 달라진다면, 특히 아이들을 상대로 그러하다면, 너무 비겁하지 않나. 존중받지 못했던 경험에 대해 괜찮은 사람은 없다. 반드시 상처로 남는다.
나 또한 수업시간에 떠드는 아이가 있으면 "조용히 좀 해!"라고 뾰족한 말투로 쏘아붙이기도 했다. 만약 떠드는 사람이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었다면 나는 그렇게 섣불리 소리쳤을까? 어른에게는 하지 못할 행동을 아이들에게는 왜 그렇게 쉽고 거침없이 했던 것일까? 비겁한 어른의 모습이 나에게도 있었다.
나는 이제 아이들에게 어떤 특별하고 좋은 것을 해주려고 애쓰기보다 말이나 행동을 함부로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어른이나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가르치되 그들을 작고 어린 사람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할 것을 항상 마음에 새기려 한다. 존중 받는 경험은 그들을 행복한 어린이로 만드는 것은 물론, 차별 하지 않는 어른으로도 성장하게 할 것이므로.
나는 사람들이 아이들을 대할 때 이 문장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라면?' 그렇다면 문 닫을 시간이 되었다고 짜증내며 재촉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건을 떨어뜨렸다고 크게 화내지도 않을 것이다. 묻는 말에 귀찮아하면서 대답하지도 않을 것이다. 개를 피하는 모습을 보고 대놓고 겁쟁이라고 함부로 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약자 앞에서 보이는 모습이 진짜 자기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