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촬영상 등 3개 부문을 수상한 샘 멘데스 감독의 영화 <1917>은 전쟁의 참혹한 현장에 처한 한 군인의 고통과 의지를 다룬 명작이다. 상영시간 내내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이야기 전개나 영상미 모두 빼어나지만, 그중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부분은 '영국군과 독일군의 공중전' 신이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한 설명은 어렵지만, 주인공과 전우는 주요 군사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이동 중에 저 멀리 하늘에서 전투기들이 서로 공중전을 치르는 것을 관망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 어떠한 의외의 상황이 발생하여 터무니없게도 주인공은 함께 길을 가던 유일한 동료가 크게 다치는 상황에 처한다.
내가 해당 장면을 인상 깊게 본 이유는 바로 이 부분이 영화의 메시지가 가장 잘 함축된 장면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메시지는 다름 아닌, '나와 무관해 보이는 어떠한 폭력적 상황일지라도 어느 순간 가까이 다가와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사건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정말 눈 깜짝할 순간에 말이다.
영화는 1차 세계대전이 배경이니, 그 당시 전쟁은 전선 지역 외에 사는 이들에게는 그다지 피부로 닿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저 너머 일어나는 폭력적 사건들, 울리는 총성들. 그것들은 우리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야만은 현장에 있건 없건 어떤 식으로 그 시기 개개인들의 역사에 반드시 상흔을 남기는 것처럼, 이 순간 멀리 일어나는 폭력적 사건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야 말 것이다. 우리가 모든 폭력 앞에 예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이유 또한 바로 그 때문이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그것은 내 눈앞으로 다가오는 것이니까 말이다.
계속되는 우크라이나전... 북한에 강경한 대통령, 국민 안전 1순위여야
러시아의 침공으로 인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4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전쟁은 쉽게 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쟁은 곧 끝날 것'이라고 말하던 전문가들의 말이 무색해지고 있다. 혹시 전쟁이 일어나기 전 많은 이들 또한 이처럼 생각하지 않았을까? '설마 전쟁이 나겠어. 설마 전쟁이 나도 그것이 오래 가겠어.' 하지만 사건과 상황은 언제나 의외의 쪽으로 흘러간다.
지난 6일 윤석열 대통령은 제67회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북한의 도발에 단호하고 엄정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정부와는 다르게 북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공식화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에도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 언급으로 한차례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번 현충일은 그의 신념이 일관됨을 대외적으로 알린 자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려스럽게도 새 정부 수립 후 남북의 갈등 구조는 다시금 첨예해지고 있다. 추가적으로 윤석열 정부의 명확한 친미 노선 전략으로 인해 러시아와 중국과의 긴장 또한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집권 초기부터 외교적 전문성과 수행 방식에 대한 여러 의구심이 오가고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의 가장 핵심적 역할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그 어떠한 가능성도 최소화하는 것이 주어진 책무의 1순위에 놓여 있어야만 한다. 생명과 안전의 붕괴 극단에 '전쟁'이라는 형태가 있다면, 어떠한 타협을 하더라도 그것을 막아만 한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갈등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릇된 판단으로 그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펴보면 영화 <1917>은 비단 1917년도만을 그리고 있는 것이라곤 할 수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주변의 폭력적 징후를 예민하게 읽어내지 못할 때 발생하는 엄중한 대가를 경고하는 2022년, 바로 지금 우리를 향한 메시지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