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 시작된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의 파업이 한 달 넘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하청노동자들은 ▲임금 원상회복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실질적으로 결정권을 갖고 있는 원청 대우조선해양과 원청 대주주 산업은행이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파업 21일째인 6월 22일부터는 하청노동자 7명이 초대형 원유 운반선에 들어가 점거농성을 시작했고, 이중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은 운반선 바닥에 철판을 용접해 1㎥ 남짓한 철제구조물 안에 스스로를 가뒀습니다. 지난해 6월 시작된 노사교섭이 1년 지나도록 진전이 없자 선박에 올라 파업에 나선 것입니다.
하청노동자 파업 이후 뜸하던 언론보도는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이 7월 14일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며 "선박 점거행위는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경고하자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7월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불법상황은 종식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보도량이 더 늘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대우조선해양 파업에 대한 언론보도를 살펴봤습니다.
"합법" vs. "불법" 입장 차 뚜렷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의 선박 점거농성 시작 당일인 6월 22일부터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이 하청노조 파업을 "불법행위"라고 비판한 다음 날인 7월 15일까지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등 6개 종합일간지와 매일경제, 한국경제 등 2개 경제일간지 신문 지면부터 살펴봤습니다.
보수언론·경제지 등은 파업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사측과 정부 입장을 전하는 데 앞장섰고, 경향·한겨레는 노조가 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던 이유에 이어 정부와 산업은행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했습니다.
해당 기간 대부분 신문은 대우조선해양 파업에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동아일보가 <대우조선 하청노조 선박점거 농성에... 진수작업 중단>(6월 23일 이건혁 기자)에서 처음 관심을 보였으나 첫 문장에서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건조가 거의 마무리된 선박을 점거해 진수(進水) 작업이 중단됐다"며 파업으로 중단된 작업에 무게를 실었습니다. 한겨레가 일주일 뒤 <'1㎥ 철장' 속의 하청노동자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6월 29일 안태호 기자)에서 처음으로 파업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조선일보는 7월 2일부터 '무법천지 노조공화국' 기획보도를 하며 첫 기사에서 대우조선해양 파업을 다뤘습니다.
노조 파업에 뒤늦게 관심을 보인 측면도 있지만 기획보도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노사 상생의 해법을 찾기보다는 노조를 공격하며 노사 갈등을 부추기는 듯한 내용이 다수입니다. 이날 1면에 <협력업체 120여명 불법점거에 세계최대 독 마비>(7월 2일 김강한 기자)를 싣고 "진수작업이 전면 중단됐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협력업체 직원들이 임금 30% 인상을 요구하면서 독 내부에서 농성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썼습니다.
조선일보는 "노동계로 기울어진 운동장 탓에 한국의 노사 관계는 이미 병들 만큼 병들었다"며 노동계에 책임을 떠밀고, "불법 파업에 공권력이 느슨하게 대응한 결과 과격 파업이 반복되고 있다"는 장정우 경총 노사협력본부장의 발언을 전해 마치 공권력 개입이 해결방안인 듯 제시했습니다.
3주간 방송 보도 5건 불과
같은 기간 KBS, MBC, SBS 등 지상파3사와 JTBC, TV조선, 채널A, MBN 등 종편4사의 저녁종합뉴스는 손에 꼽을 정도로 관련 보도량이 적었습니다. 그조차도 7월 14일 정부가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에게 파업 중단을 촉구하자 방송 보도가 시작됐는데요.
KBS·TV조선·MBN이 이를 보도했고, TV조선과 MBN은 정부와 대우조선해양 입장에서 노조 파업을 부정적으로 전했습니다. 특히 TV조선은 방송사 중 대우조선해양 파업 소식을 가장 많이 다뤘는데 3건 모두 사측과 정부 입장 위주로 보도했습니다. TV조선 <"점거 농성은 명백한 불법"... 공권력 투입?>(7월 14일 박상현 기자)에서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점거농성에 대한 정부의 메시지는 단호했습니다" "조선소 점거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강력 대응을 예고했습니다"라며, 이를 "경찰 투입과 같은 강경 대응의 사전 조치"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런 보도는 KBS와 사뭇 다른데요. KBS는 <점거 농성 장기화... 정부 "중단해야">(7월 14일 홍성희 기자)에서 하청노동자 노조의 농성 상황과 요구사항을 전하며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의 담화문에 대해 "정부가 오늘 처음 입장을 냈지만, 뾰족한 대책 없이 불법행위라며 중단을 촉구했습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대통령 발언 이후 보도량 '급증'
해당 기간 미미했던 언론 보도량은 윤석열 대통령의 관련 발언 이후 급격히 늘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7월 18일 오전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조합 파업 사태와 관련해 "법치주의는 확립돼야" 하고 "산업 현장의 불법 상황은 종식돼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정부는 당일 오후 추경호 경제부총리를 포함한 5개 관계부처 장관 명의로 발표한 공동 담화문에서 "이번 불법점거 사태는 대우조선해양 및 협력업체 대다수 근로자와 국민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고, 한국 조선이 지금껏 쌓아 올린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는 무책임한 행위"라고 밝혔습니다. 여권 역시 이번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며 비판에 나섰습니다.
하청노동자 파업에 무관심하던 언론은 윤석열 대통령 발언이 나오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경향신문·중앙일보는 이전 20일간 보도보다 7월 19일 하루에 낸 보도량이 더 많았고, 무보도로 일관하던 방송도 7월 18일 당일 1~3건씩 보도하며 주요 이슈로 다뤘습니다.
중앙일보‧매일경제‧한국경제, 관계부처 장관 사진 1면 게재
특히 윤석열 대통령 발언 다음날인 7월 19일 경향신문·조선일보·중앙일보·한겨레·매일경제·한국경제 등은 지면 1면에 해당 소식을 전했는데요. 각 언론의 논조는 이번에도 크게 갈렸습니다.
조선일보는 <윤 대통령, 긴급 장관회의 지시 경찰청장은 헬기 타고 거제로>(7월 19일 최경운·김동하 기자)에서 "윤 대통령이 취임 이후 특정 현안에 대해 긴급 관계 장관회의를 지시한 것은 처음"이라며 "이상민 행안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는 19일 오전 헬기를 타고 경남 거제로 내려가 대우조선해양 상공에서 현장 상황을 파악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강조했는데요.
점거 농성이 시작된 지 20여 일이나 지나 뒤늦게 관심을 보인 대통령과는 다르게 급박히 정부가 움직이는 듯 보도했습니다. 동아일보는 4면에 <5개 부처 장관 "대우조선 파업 엄정대응" 공권력 투입 경고>(7월 19일 전주영·이건혁·신동진 기자)를 싣고 "윤 대통령의 긴급장관회의 소집 지시와 이어진 담화는 정부의 마지막 경고 카드라는 분석이 나온다"며 "공권력 투입을 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고 분석했습니다.
반면 한겨레는 <윤 대통령 "산업현장 불법 종식" 대우조선 '경찰력 투입' 긴장감>(7월 19일 박태우·박종오·배지현·박수지 기자)에서 윤 대통령 발언에 대해 "하청노동자 파업 중재커녕 압박"이란 소제목을 달고,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정부 관계부처 합동담화문을 발표하며 "'불법'이라는 단어를 12번 언급했다"고 강조했습니다.
1면에 쓰인 사진 역시 중앙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는 관련 부처 장관들의 모습을, 한겨레는 파업에 참여한 시민의 모습을, 경향신문은 정부와 노조 둘을 모두 배치해 차이를 보였습니다.
중앙일보, '쌍용차' 언급하며 강경 대응 주문
보수언론은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강압적인 공권력 투입을 주문했습니다. 중앙일보는 헬기와 기중기 등을 동원해 폭력진압에 앞장선 경찰의 쌍용차 사태 진압까지 거론했습니다. 중앙일보 <사설/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 법과 원칙 따라 엄정 대응을>(7월 19일)은 "대우조선 하청노조의 점거농성은 합법의 틀에서 벗어났다"며 "쌍용차 노조의 긴 투쟁의 결과를 대우조선 하청노조도 모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신문은 "하청노조의 점거는 명백한 위법"이라며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하기 바란다"고 주문했습니다.
매일경제 역시 <사설/국민 돈으로 살린 대우조선, 노조가 사지로 몰고 정부는 엄포만>(7월 19일)에서 "하도급업체 노조가 사지로 몰아가고 있는데도 정부는 엄포만 놓을 뿐 사실상 방관하고 있다"며 정부에 "한심하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는 변죽만 울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모든 채널을 총동원해 불법 점거를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경향·한겨레 "하청 구조적 문제 살펴야"
이와 달리 한겨레 <사설/조선업 생태계 붕괴 위기, 하청노동자 파업 탓만 할 건가>(7월 19일)는 "하청업체들에 협상 여력이나 자율성이 없다는 건 업계에서는 다 아는 사실"임에도 대우조선해양과 산업은행은 "하청업체들에 교섭을 떠밀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사태를 방관해오던 정부와 여당이 한날 파업노동자들을 공격하며 강경 대응 방침을 내비친 것"이라며 "강경 대응이 아니라 적극적인 중재, 나아가 조선업 생태계를 되살릴 수 있는 근본 대안을 내놓는 것"이 정부의 할 일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경향신문 <사설/하청구조는 놔두고 대우조선 파업 불법 규정한 윤 대통령>(7월 19일) 또한 정부가 사안을 표면적으로만 살펴 "파업 사태의 책임을 노조 탓으로 돌린 것"이라며 "조선업의 70%인 비정규직, 다단계로 쪼개진 하청구조, 저임금 등 구조적인 원인"은 외면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는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의 경제적 손실과 조선업계에 미칠 부정적 영향만 강조할 뿐, 대우조선해양과 실질적 주인인 산업은행이 책임을 회피하면서 사태를 악화시킨 점은 모른 체했다"며 "파업을 빌미로 민주노총을 때리면서 국면전환을 노리는 게 아니냐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노동자 파업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한겨레 <1㎥ 감옥투쟁 '하청' 절규에도... 대우조선·대주주 산은 '모르쇠'>(7월 11일 신다은·방준호·안태호·전슬기·조윤영 기자)는 "원청인 대우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 지분 55.7%를 보유한 최대 주주 한국산업은행, 정부와 여당은 사태 해결에 손을 놓고 있다"며 "사내 하청노동자의 실질적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원청이 대화에 임하지 않는 것은 사용자로서 단체교섭 의무를 지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의 발언을 실었습니다.
경향신문도 <사설/대우조선 하청노동자 농성 불법 규정한 정부, 대화로 풀기를>(7월 14일)에서 대우조선해양은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해놓고도 이번 파업은 하청업체의 노사 문제라며 방관하고 있다"며 "대우조선이 하청업체의 도급단가(기성금)를 올려 임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산은이 결단해야" 하고, "정부도 파업의 불법성만 강조하지 말고 대화로 문제를 풀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저임금·특수고용·하청 노동자일수록 교섭의 힘은 더 작고, 이들의 불안정한 근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와 노력은 더욱 필요합니다. 저임금-중노동을 당연시하며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일터로 돌아올 수 있게 중재하는 정부의 역할이 절실한 시기입니다.
* 모니터 대상 : 2022년 6월 22일~7월 19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서울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 TV조선 <뉴스9>(평일)/<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뉴스7>(평일)/<뉴스센터>(주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 미디어오늘, 슬로우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