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순방에 나선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설에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격화하는 모양새다.
펠로시 하원의장은 일본, 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를 차례로 방문하는 동아시아 순방에서 대만을 '잠정적인 방문국'으로 잡고 있다.
지난 29일 그는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한 듯 출발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보안상의 문제로 절대 언급하지 않겠다"라며 함구했다. 펠로시 의장은 지난 4월에도 대만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에 감염되면서 보류했었다.
대만 외교부도 "펠로시 의장 측으로부터 방문 여부에 관한 정보를 받지 못했다"라며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라고 말을 아꼈다.
만약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방문하면 미국 현직 하원의장으로는 1997년 당시 공화당 소속이던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 이후 25년 만이다.
시진핑, 바이든에 "불장난하면 불에 타 죽는다" 경고
중국 정부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7일 정례 브리핑에서 "펠로시 의장의 방문은 "중국의 주권과 영토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중미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미국이 중국의 이익에 도전한다면 단호히 대응할 것이고, 그 모든 책임은 미국이 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28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 회담에서 "중국은 대만 독립과 분열, 외부 세력의 간섭을 단호히 반대한다"라며 "(대만 문제로) 불장난하면 불에 타 죽는다"라는 강도 높은 표현으로 경고했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대만을 중국 영토로 보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한다면서도 "대만 해협의 상태를 일방적으로 바꾸거나 평화와 안정을 해치려는 시도에 강력히 반대한다"라고 맞섰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펠로시의 대만 방문에 대해서 "군에서는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보는 것 같다"라고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면서도 "펠로시 의장이 결정할 문제"라면서 선을 그었다.
중국은 장외전까지 펼치고 나섰다. 중국의 대표적 관변 언론인 후시진 전 <환구시보> 총편집장은 트위터에 "펠로시 의장이 탄 전용기가 미군 전투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대만을 방문할 경우 영공 침입으로 간주하고 중국군이 '격추'할 수 있다"라는 글을 올렸다가 트위터 측으로부터 삭제당하기도 했다.
미국 '서열 3위' 펠로시, 대만 방문 여부가 주목받는 이유
미국 고위 인사의 대만 방문이 처음은 아니지만, 중국은 펠로시 의장의 방문 가능성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미 CNN 방송은 "펠로시 의장은 대통령과 부통령에 이어 미국의 서열 3위 공직자로서 평범한 국회의원과는 정치적 위상이 다르다"라며 "이런 이유로 중국이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펠로시 의장은 줄곧 중국의 인권 탄압을 비판해왔다. 초선 의원 시절인 1991년에 베이징 톈안먼(천안문) 광장을 방문해 톈안먼 사태 희생자를 추모했고, 2019년에는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서로의 정치적 목표를 위해 이 문제를 불필요하게 키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AP통신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은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5월 대만이 공격당할 경우 군사 개입할 것이라는 발언보다 덜 위협적"이라며 "당시에도 중국은 이를 강력히 규탄했으나, 군사적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시 주석의 정권 연장을 노리며 올가을 당 대회를 개최할 예정인 중국 지도부가 반미 정서를 결집하기 위해 강경 대응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다.
민주당을 이끄는 펠로시 의장도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부진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는 자세를 보여줌으로써 반중 표심을 끌어모으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