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헌화
회사 반차를 냈다. 그리고 흰 국화 한 송이를 샀다. 그 길로 신당역으로 향했다. 신당역 10번 출구 앞에 마련된 작은 추모 공간. 거친 바람에 시민들이 올려 놓은 국화들이 이리저리 굴러 다녔다. 쪼그리고 앉아 흩어진 국화들을 한 군데 모았다. 그리고 내가 사 온 국화를 그 위에 살며시 올려 놨다. 인생 첫 헌화였다.
누군가가 마련해 놓은 메모지 한 장을 뜯어 꼭꼭 적었다. '죽지 않고 집에 갈 권리.' 그 한 마디를 적는 데 코끝이 시큰해졌다. 커다란 대자보 위엔 이름 없는 시민들이 적어 놓은 메모지가 한 가득이었다. 그중 한 메모지를 읽고 금세 눈물이 났다.
'수천 송이의 꽃을 놓는다 해도 당신이 걸었을 앞날보다 아름다운가.'
28살. 이제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세상에 첫 발을 내 디뎠을 그녀. 언젠가 신당역을 지나다 스쳐 지나갔을 수도 있는 한 명의 역무원. 그녀의 유가족이 말했던 것처럼, 어떻게 바로 도심 한 가운데서 목숨을 잃어야만 했을까. 스토킹 당하던 그녀를 지켜야 했던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었던 걸까.
2년 전, 내가 겪은 스토킹
출근길 버스에서 처음 읽었던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기사. 바들바들 떨리는 두 손을 맞잡았다. 눈물이 나려던 걸 꾹 참았다. '스토킹'은 내게 너무나 무거운 단어다. 그녀의 죽음이 그저 남 얘기처럼 들리지 않았다.
2년 전, 여섯 살 많은 남자친구에게 헤어짐을 고했을 때였다. 그의 심각한 감정 기복이 이별의 이유였다. 그러나 당시엔 몰랐다. 그 때가 광기어린 집착의 촉발점이 되리란 걸. 헤어진 다음 날부터 하루에 수백 번씩, 1·2분 간격을 두고 전화가 걸려 왔다. 친구의 전화기를 빌렸는지 다른 번호로도 걸려왔다.
문자도 수십 통씩 날라왔다. 문자 내용은 나를 공포로 몰기에 충분했다. 문자를 차단하니 메일로도 연락이 왔다. '별 것도 아닌 니가 감히 나를 차' '죽여 버릴거야, 밤길 조심해' '이 동네 좁아. 언제 어디서 널 만날 지 몰라...' 그는 연애 당시 나를 몇 번 차로 집에 데려다 준 적이 있었다. 집 위치는 당연히 알고 있는 터였다.
두려움은 곧 현실로 다가왔다. 퇴근 후 귀가하니 그의 자동차가 우리 집 앞에 주차 돼 있었다. 곧바로 눈물이 터져 나왔다. 다리가 덜덜 떨려 주저 앉았다. 새벽까지 인근 놀이터에 몸을 숨기다가 그의 차가 빠져 나갈 때쯤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날부터 무려 한 달 넘게 그의 차가 우리 집 근처를 뺑뺑 도는 일이 이어졌다.
그가 우리 집에 불을 지르고 내 가족과 나를 살해하던 꿈을 꾼 다음날, 그를 경찰에 신고했다. 다행히 신고한 다음 날부터 그의 차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트라우마는 오랫동안 남았다. 지금도 그의 차량과 비슷한 차량만 봐도 심장이 쿵 내려 앉고 손이 떨린다. 그리고 집에 귀가할 땐 누군가와 반드시 통화해야 하는 버릇이 생겼다.
스토킹 피해, 내 옆에서 일어나고 있다
대학교 동기인 영희(가명) 역시 전 남자 친구에 의한 스토킹 피해자다. 그녀도 남자 친구에게 헤어짐을 고하자 마자 집착어린 연락이 시작됐다.
수십 통의 전화와 문자는 기본이었다. 연락의 대부분은 '숨을 끊어 놓겠다'라는 내용이었다. 연락처를 차단하면 바로 다른 번호로 연락이 왔다. 하루에도 누구의 것인 지 모를 번호의 전화를 받으며 영희는 종일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그녀가 어학연수를 떠난 다음에도 공포어린 연락 세례는 이어졌다. 해외 전화로까지 걸려왔다. '귀국만 해봐. 죽여 버릴거니까.' 영희는 이 문자를 받고 인천 공항에 도착하기 전 호신용 스프레이를 구매해야만 했다.
그는 영희가 다니는 독서실은 물론 학과 강의실, 단골 식당까지 술을 먹고 찾아 왔다. 하루는 그녀가 살던 오피스텔의 1층 보안 문이 고장난 틈을 타 그녀의 집 문까지 칼을 들고 찾아왔다. 3시간 넘도록 쾅쾅 두드리는 발길질과 고함소리가 이어졌다. 경찰을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친구 품에 안겨 내내 울었다.
무려 4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그의 연락이 온다고 한다. 영희가 내게 가장 먼저 신당역 살인사건 기사 링크을 공유해주며 말했다.
"그때가 생각났어. 그래서 눈물이 너무 많이 나더라. 왜 우리의 귀갓길은 늘 안전하지 않은 걸까?"
스토킹 범죄, 이젠 끝내야
스토킹 범죄는 생각보다 가까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전 애인, 회사 동료, 그저 일면식 없는 낯선 이에 의해서 말이다. 내가 스토킹을 당했을 때 가장 두려웠던 건 '보호받지 못할 것이란 확신'이었다. 신고한다고 해도 업무량이 많은 경찰들이 24시간 '그 사람'을 감시·감독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왜 사과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도망쳐야만 할까. 내가 이직할 회사를 서울에 잡고 서둘러 상경한 이유엔 '그 사람'을 다시 길에서 만나는 일을 완전히 피하기 위함도 있었다. 살고 싶었고,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서울에서도 그와 비슷한 얼굴의 사람만 봐도 눈물이 났다. 설마 서울까지 올라와 나를 쫓고 있을까. 어디선가 나를 해치려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까.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이후 한 서울시의원이 말했다. "좋아하는데 안 받아주니 여러 폭력적인 대응을 남자 직원이 한 것 같다"고. 수백 통의 연락을 넘어 칼로 자신의 감정에 대한 복수를 하는 게, 왜 덤덤히 언급되는 이별의 한 과정이 됐나. 상대의 감정을 받아줬더라면 그 역무원도, 그리고 나도 그 '폭력적인 대응'을 피할 수 있었을까.
내 귀갓길이 안전했으면 좋겠다. 그저 하루 일과를 끝내고 무사히 집에 들어가 사랑하는 가족들 품에 안겼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겐 소소할 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매일의 바람이자 소원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두려운 귀갓길을 걷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우리 사회가 좀 더 '당연하게' 그리고 '정상적으로' 바뀌어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