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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준하 대표는 모든 작업을 직접 손으로만 하려던 계획을 접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처음 목표인 ‘생태적 대장장이’를 수정한 것은 아니다.
박준하 대표는 모든 작업을 직접 손으로만 하려던 계획을 접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처음 목표인 ‘생태적 대장장이’를 수정한 것은 아니다. ⓒ <무한정보> 황동환

도전, 모험, 패기, 정열, 자신감, 신념, 희망 등의 말마디가 잘 어울리는 시기가 있다. 가본 적 없고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이끌리며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안타깝게 비춰질 수도 있지만, 실패나 실수에도 손 털고 일어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청년'은 그렇기에 아름답다. 

돌아보면 언제나 존재했다. 부모님,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 학생들 사이에서 튀는 아이들 말이다. 도전과 모험을 감행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새로운 세상을 향한 희망의 빛을 보기도 한다. 

기존 질서와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기성세대에 새로운 자극을 주는 '청년'이 예산에서 대장장이로 등장했다. 지난 7월 '마더스틸'이라는 상호로 사업자등록을 마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박준하(29)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그의 대장간은 계곡 깊숙이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충남 예산군 신양면 시왕리 끝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간신히 교행이 가능할 정도의 마을길을 따라가면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지역의 '꼼지락협동조합'이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이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스물아홉 청년의 고향은 경북 영주다. 초·중·고 학창 시절은 대구에서 보냈다. 그런데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다. 대학 진학도 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는 '학벌'에 적응한 이들에게는 평범하지 않은 이력이다. 하지만 이런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딱히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학교가 학생들을 대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별다를 것 없는 결심이었다.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조차 안 가겠다고 했는데,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가 있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생각하면, 차라리 공업고등학교에서 기술을 배우는 게 훨씬 나았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에선 당당함을 넘어 주위의 시선과 세간의 평가에 괘념치 않는 모습마저 보였다.
 
 박 대표가 화덕에서 달궈진 쇠를 두드려 칼날의 형태를 잡고 있다.
박 대표가 화덕에서 달궈진 쇠를 두드려 칼날의 형태를 잡고 있다. ⓒ <무한정보> 황동환

그는 자퇴 후 농사를 지을 생각이었다. "돈없이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유기농을 배우러 영덕에 갔을 때 농기구들이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대장간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순간이다. 

농사를 짓든, 밭을 매든, 혹은 땔감을 구하기 위해 지게를 지고 산으로 향하든, 농촌지역 어디서나 필요한 농기구를 눈여겨봤다. 그렇다고 곧바로 시작할 순 없었다. 준비가 필요했다. 군복무후 2017년부터 부여 한국전통문화교육원에서 2년 동안 철물기초과정과 심화과정을 밟았다. 이때 기술을 연마하면서 머릿속을 지배했던 생각은 '생태적 대장장이'였다.

박 대표는 "교육기관과 현장과의 괴리는 크다. 이걸 일단 배우고 나서 대장간에 들어가 도제식으로 배워 놓으면 충분히 나도 대장장이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당시 내 생각을 지배하고 있던 건 '어떻게 하면 돈없이 자급자족이 가능할까'였다.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만들겠다는 포부가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대장간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과 무관한 생각이었다"고 회상했다.

강력한 프레스나 각종 기계장비가 대장장이의 수고를 덜어주고 대량 생산을 통한 가격경쟁력을 생각하면 필요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그가 원한 건 기계의 조력을 최소화하고 오직 자신의 손과 몸만으로 필요한 일체의 '도구들'을 창출해 내는 것이었다. 이를 '생태'로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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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의 주문으로 제작한 부엌칼. ⓒ 박준하
 
"앞으로 어디서 살까 고민하던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던 중 안동 지인이 예산 '꼼지락협동조합' 이승석 대표를 소개해줬다. 마침 대장간을 운영하겠다고 건물도 지어놨고, 장비도 마련해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즉시 이 공간을 보러 왔는데, 공간도 넓고 채워나갈 수 있는 여지도 있어 마음에 들었다"며 정착하게 된 사연을 들려줬다. 

4년 전 이곳에서 거의 맨 몸으로 대장간을 시작했다. 어차피 '생태적 자립'을 목표로 설정했으니, 쇠를 달굴 수 있는 화덕과 망치·집게 정도면 충분했고, 기계나 장비없이 우직하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생각이었다.

그는 "대장간 일은 편향된 노동이다. 망치질을 한 손으로만 하기 때문에 몸이 상하는 문제가 있었다. 기계가 없으니 생산성이 떨어졌다. 구현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주문한 상품의 제작시간이 한없이 걸리면 그것도 스트레스였다"며 "내가 이 일을 즐기면서 몸 상하지 않고, 오래 일을 지속하려면 처음 가졌던 생각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했다"고 생태적 자립이라는 당초 방향을 선회한 이유를 설명했다.

"내가 사용할 도구를 외부에서 찾기 어렵다. 작업별로 필요한 망치, 집게, 금형 등의 도구는 직접 만들어야 한다. 원하는 작업을 위해 스스로 필요한 도구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대장장이다. 스스로 필요한 도구를 만든다는 것은 내가 작업범위를 정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자급자족과도 일맥상통한다."

박 대표가 말하는 대장장이의 매력이다. 그는 이제 어엿한 '마더스틸'이라는 사업체 대표가 됐다. '청년 대장장이'라는 자신을 향한 세간의 관심에서 '실력'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박 대표는 자신의 대장간을 활용해 학생들의 체험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박 대표는 자신의 대장간을 활용해 학생들의 체험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 박준하

지난 5년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용접사로, 사회적기업 청년활동가로 일하면서 돈을 모아 기계를 샀다. 그러면서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다양한 실험도 했다. "사업자등록증을 낸 것이 올해 7월이다. 두 달 밖에 안 됐다. 이제 뭔가 해볼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다고 판단해 촛대, 향꽂이, 접시, 부엌칼, 호미를 상품 아이템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플리마켓, 축제현장에서 10분 안에 괭이 하나를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도 구상 중이다. "올 가을이나 내년 봄, 축제 시즌이 시작될 때 현장에서 저를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 이왕에 이윤 추구가 목적이기에 돈을 벌고 싶긴 하지만,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한 값싼 제품과는 질이 다른 수제품이란 점을 알려나가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어떤 장인이 되고 싶은지 묻자 "경계가 모호한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 장인과 작가 양쪽 특성을 다 지닌 사람이고 싶다"며 "그동안 터득한 기술로 예술성이 가미된 상품들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대장간은 뙤약볕 내리쬐는 한여름 무더운 바깥공기가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로 풀무질로 인한 화덕열기로 가득찬 곳이다. 이곳에서 꺼질 줄 모르는 창작열정으로 젊음을 불태우고 있는 박 대표의 손에서 탄생할 작품들이 우리의 시선을 어떻게 사로잡을지 사뭇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대장장이#대장간#대장간 체험#마더스틸#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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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군 지역신문인 예산의 참소리 <무한정보신문>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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