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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21년 5월 호수돈여자중·고등학교 정문에 걸린 ‘개교 제122주년 기념’ 현수막.
지난 2021년 5월 호수돈여자중·고등학교 정문에 걸린 ‘개교 제122주년 기념’ 현수막. ⓒ 임재근
  

대전광역시에 있는 학교 중에서 개교가 가장 빠른 학교는 어디일까? 삼성초등학교는 1911년 회덕공립보통학교로 개교했고, 신탄진초등학교는 1908년 사립신흥학교 설립을 개교로 보고 있다. 삼성초등학교는 2011년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고, 신탄진초등학교는 이보다 빠른 2008년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1906년에 일본인 학생을 위해 설립된 대전소학교는 해방 후 원동국민학교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했지만, 학생 수 감소로 1980년에 폐교되었다. 그런데 이들 학교보다 개교가 빠른 학교가 있다. 바로 대전 중구 선화동에 위치한 호수돈여자중·고등학교(아래 호수돈여학교)다.
    
호수돈여학교는 올해 개교한 지 123주년을 맞이했다. 학교는 대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지만 대전에 정착한 것은 1953년이다. 그전까지 호수돈여학교는 개성에 있었다. 미국 남감리회 홀스톤(Holston) 연회 소속 여선교사인 캐롤(Carroll)은 1899년에 고려의 옛 도읍지인 개성에 왔다. 이후 쌍소나무집으로 불리는 초가를 사들여 주일학교 형태로 수업을 시작했다.

1904년 정식학교로 인가받을 당시 개성여학당이라 하였고, 1908년에 교명을 호수돈여학교로 변경했다. 이때 교명에 등장한 호수돈은 홀스톤을 한자음으로 표기하면서 好壽敦(호수돈)으로 정했다. 1941년 일제에 의해 교명을 '명덕'으로 변경했으나 1954년 다시 호수돈으로 변경했다.

호수돈여학교가 대전에 정착한 것은 한국전쟁 때문이었다. 학교는 해방 후 38선 이남에 있었다. 이후 학생과 교사들은 남하해 서울, 부산, 조치원 등으로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다시 개성으로 되돌아갈 일이 여의치 않자 당시 강기순 교장 등은 새 보금자리를 물색했고, 대전제일감리교회의 도움으로 대전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대전에서의 첫 둥지는 원동에 틀었다. 1953년 4월 20일 명덕여중으로 개교했고 바로 교명을 호수돈으로 개명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1954년 2월 27일 자로 교명을 명덕에서 호수돈으로 바꾸었다. 1958년에는 신축 교사를 낙성하고는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호수돈여학교의 역사 속에는 분단과 전쟁의 상처가 함께 녹아 있다. 38선이 개성 송악산을 가로지르면서 해방 후 호수돈은 38선 이남에 속해있었다. 하지만 한국전쟁 발발로 개성 지역의 휴전선은 그보다 아래로 그어졌다. 원래 이름인 호수돈을 되찾았지만, 원래 있던 개성으로는 되돌아가지 못하고 대전에 정착하게 되었다.
    
호수돈여학교와 직선거리로 500여 미터 떨어진 대전근현대사전시관 기획전시실(옛 충남도청사)에는 호수돈이 오랜 기간 자리했던 개성과 관련된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바로 '개성 만월대 열두 해의 발굴전'이다.

2007년부터 2018년까지 남북이 함께 진행한 고려 궁성 개성 만월대 발굴의 성과를 공유하는 전시이지만, 기자는 전시장에 걸려 있는 1950년대 개성 의사진 속에서 호수돈의 옛 모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해당 사진은 1957년에 개성 시내의 자남산의 관덕정에서 촬영한 사진 4장을 파노라마로 연결했다. 좌측으로는 개성의 남대문에 인근에서부터 우측으로는 송악산까지 볼 수 있다.
   
 그림  좌측이 본관, 우측이 대강당 건물이다.
그림 좌측이 본관, 우측이 대강당 건물이다. ⓒ 호수돈백년사
 
 1957년 자남산의 관덕정에서 촬영한 개성 시내 모습. 노란색 원 속에 건물이 호수돈여학교의 건물이다. 좌측이 본관, 우측이 대강당이다.
1957년 자남산의 관덕정에서 촬영한 개성 시내 모습. 노란색 원 속에 건물이 호수돈여학교의 건물이다. 좌측이 본관, 우측이 대강당이다. ⓒ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사진에서 개성 호수돈여학교의 건물을 발견했다. 본 관과 대강당의 모습이 확인된다. 남대문에서 배천이라는 하천 옆으로 이어지는 남대가(南大街)를 만월대 방향으로 따라 올라가면, 현재 개성의 민속려관 입구를 막 지난 곳에 호수돈여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만월대와도 불과 1k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제강점기 호수돈여학교를 다녔던 모윤숙은 학창 시절 만월대를 다녀와서는 다음과 같은 시를 쓰기도 했다.
 
만월대
숨진 영화, 넘어간 기둥이로다
옛 왕비 들던 술잔은 어디 가고
시골머슴이 애끊는 읊조림에
덧없는 가을풀이 옛일을 우는고?
젊음도 인생도 이러한가?
섬돌위로 끌리던 비단치마들도
구름과 바람이 다 안아 갔는가?
고려왕이여! 일어나시라
횐 옷 입은 천만 사람의 옛 어버이시여
일어나 다시 한번 큰 웃음 웃으시라
맥없는 이 땅을 모른 채 누웠으리까?
 
더 놀라운 것은 지금도 학교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는 어떤 용도로 활용되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앞서 소개한 1934년 건축된 본관과 1949년 건축된 대강당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1920년 건축된 소강당과 1909년에 건축된 옛 본관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성 시내에는 호수돈여학교의 건물뿐 아니라 다수의 한옥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유는 한국전쟁 당시 개성이 휴전 회담 장소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휴전회담은 1951년 7월 10일부터 한 달간 개성 시내의 내봉장에서 진행되었고, 1951년 10월 25일부터는 개성에서 10여km 떨어진 판문점으로 옮겼다. 휴전회담 진행으로 개성은 전쟁 당시 폭격 피해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보존된 개성의 수많은 문화유산은 '개성의 역사 기념물과 유적'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2013년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2021년 3월 3일에 촬영된 구글 지도 사진. 지금도 개성의 호수돈여학교의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건물 이름은 기자가 표시했다.
2021년 3월 3일에 촬영된 구글 지도 사진. 지금도 개성의 호수돈여학교의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건물 이름은 기자가 표시했다. ⓒ 구글
 
 1916년 개성지도. 아래쪽 원은 남대문이고, 남대가를 따라 북상하다보면 왼편으로 호수돈여교가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1916년 개성지도. 아래쪽 원은 남대문이고, 남대가를 따라 북상하다보면 왼편으로 호수돈여교가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 임재근
  
우리의 일상이 분단, 전쟁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연관성이 없는 게 아니라 너무 무디어진 것은 아닐까? 큰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대전에서 진행되는 개성 관련 전시에서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찾아보고, 남북이 함께 진행한 고려 궁성 개성 만월대 발굴의 성과를 살펴보면서 조속한 남북관계 회복을 기원해보면 어떨까?

지도와 항공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는 개성을 언젠간 직접 가볼 날도 함께 꿈꿔보자. 개성 만월대 열두 해의 발굴전 대전 전시는 10월 15일까지 진행된다. 전시 관람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가능하고 월요일은 휴관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통일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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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교육연구소장(북한학 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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